2007년 1월 22일 월요일

홍루몽 1~3권을 읽고...

 
홍루몽 1 - 10점
조설근 외 지음, 안의운 외 옮김/청계(휴먼필드)
 

 나에게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인내하는 과정이자, 하나의 도전이다. 방송국의 프로그램을 보면 느낄 있듯이 같은 시대를 살아도 나이에 따라서 쓰는 언어가 조금씩 다른데, 정신과 정서가 다른 시대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비록 한글로 쓰여졌다고 해도 다른 세계를 접하는 같이 낯설다. 익숙하지 않은 단어가 출연하면 영어 원서를 읽을 모르는 단어가 튀어 나올 때의 당황스러움과 별차이가 없다. 그나마 한국의 고전은 교과서를 통해서 익숙해져서 인지 다른 나라의 고전을 읽는 만큼의 어려움은 덜하지만, 다른 나라의 고전을 접할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문체나 단어의 선택을 좌우하는 번역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래서 번역으로 원작의 맛을 얼마나 살리고 지금의 독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느냐는 것은 어려운 문제로 보인다. 익숙하지 않은 번역 때문에 내가 포기했던 작품이나 읽어도 내가 읽었는지 모르는 작품이 있었다. 삼국지가 시대의 여러 유명작가들에 의해 계속 번역되어 나와도 작가의 관점이나 시점에 따라서 그리고 작가의 문체에 따라서 주는 느낌이나 감동이 다른 처럼, 원서를 바로 실력이 안되는 내가 고전을 읽을 때는 가장 먼저 꼽는 것이 번역이다. 작품을 선택 했을 때는 작품에 대한 많은 찬사나 문학적 평가가 중요했지만, 작품을 받았을 때는 이상 문학적 평가나 찬사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내가 권을 끝까지 있을 정도로 수월하게 읽혀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읽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느끼고 감동을 받고 생각할 꺼리를 준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쉽게 읽히지 않으면 이상 나에게는 소용없는 책이 되고 만다. 그렇게 쌓여 있는 책만 꽂이 칸을 차지하고 있고 대다수가 고전이기에, 내가 고전을 읽는 다는 것은 인내하는 과정이나 도전이다. 홍루몽을 받아 들고 "내가 끝까지 권을 있을까?" 라는 두려움에 장을 넘겼다. 역시 장부터 낯설다. 역자의 서문을 통해서 책이 나오기까지의 노고와 열정을 충분히 느꼈지만, 200 이상 시간의 차이에서 나오는 문체와 정서의 차이가 만들어 내는 낯설음은 어쩔 없나 보다.  초반의 낯설음을 조금만 참고 넘기니 홍루몽에 조금씩 몰입할 있게 되었다. 이야기의 생소함과 문체의 생소함으로 작품에 몰입하는데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가씨 집안의 이야기라는데 가씨 집안의 친척도 아닌 가우촌이라는 인물과 냉자흥 같이 가씨 집안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인물들이 나와서 초반 이야기를 이끌고 가더니, 가보옥의 꿈을 통해서 가씨 집안 12인물의 삶을 노래로 설명해주는 친절함(?)까지 보여준다. 인기 있는 스릴러 영화의 스포일러들이 범인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당혹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런 친절함은 불편하다. 이런 불편함까지 뒤로하면 홍루몽 속으로 들어가는 가기는 수월해 진다. 본격적인 가씨 집안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대가족인 가씨 집안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조그만 사회의 축소판이다. 다양한 인물 군상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속의 갈등에 쉽게 공감하고 빠져든다. 가보옥과 임대옥의 밀고 당기는 애정전선은 가보옥의 애간장을 태울뿐만 아니라, 애간장까지 타게 만든다. 음욕을 절재하지 못하여 벌받고 운명을 달리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측은하기만 하다. 시대의 풍류를 눈앞에 펼쳐 놓는 것은 묘사와 한시들은 책의 다른 매력을 느끼게 해준다. 설보채를 양귀비에 비유한 묘사를 보면서 살찐 사람이 미의 기준이 였던 시대의 정서에 웃음도 난다. 회가 끝날 마다 나오는 "다음 회를 보시라" 문장에 웃기도 했지만, 얼리리뷰를 위해 받은 분량의 마지막 페이지에 가까워 나오는 문장은 홍루몽에 점점 매료되어 버린 나에게 야속함 자체였다. 홍루몽에 대해서는 내가 문학적으로 말하기고 평가하기에는 모자람 때문에 힘들다. 그러한 평가는 이미 보도자료나 미디어의 서평만으로 충분하리라. 그냥 읽어 보시라고 말하고 싶다. 그럼 페이지 페이지 넘길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홍루몽의 늪으로 빠져들어 헤어나오지 하는 자신을 있을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