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31일 토요일

어떤 이의 삶의 여행 속으로

 

 가수 이상은은 "삶은 여행"이라는 노래를 통해서 인생에 대해서 여행이라고 말한다. 인생이 힘들더라도 여행의 끝이 있듯이, 언젠가는 인생도 끝난다고. 그래서 강해지지 않으면 걸을 없다고 노래한다. 인생이라는 여행이 언제나 즐겁고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여행이 우리에게 일상에서 벗어난 자유를 주듯, 우리는 자유로이 살아가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 노래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챗바퀴 같은 일상 속에서 구속되어 살고 있다. 반복되는 일상이 권태롭기 그지 없다. 자유를 찾기보다는 현실에 안주한다. 그저 나빠지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인생의 여정은 대단히 고단하고 힘겨웠지만, 행복했노라고 스스로를 위안할 뿐이다. 자기 인생의 굴곡은 그저 평탄할 뿐인데도.

 

 인생이라는 삶의 여정에 조타수는 자기 자신임을 우리는 쉽게 망각한다. 물론 우리가 인생을 어쩔 없는 경우도 많다. 뜻하지 않는 질병으로 생사를 헤맬 수도 있고, 갑작스러운 사고로 육체에 커다란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그렇듯 인생이란 불확실성 또한 크게 존재한다. 하지만, 불확실성 속에서도 우리는 다양한 선택지를 쥐고 있다. 단지 우리가 그런 상황에 몰렸을 자신에게 그런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하나의 선택지만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인생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쉽게 잊어버린다. 운명이 자기 삶의 주인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운명이라는 것이 삶의 주인일 지도 모른다. 아빠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했던 "진희"에게는 말이다. 행복한 여행인줄 알았던 아빠와의 동행이 고아원이라는 다른 세상으로의 보내짐이 되어 버린다. 갑작스러운 아빠와의 이별은 "진희" 선택할 없는 선택 당한 것이지만, "진희" 아빠와의 이별을 준비함과 동시에 속에서 다른 여행을 시작한다. 그곳에서의 생활, 그곳에서 만난 친구와의 우정 그리고 다가올 다른 운명의 선택을. 영화 "여행자" "진희" 새로운 여행 속으로 관객들을 안내할 영화다. 실제로 한국계 입양아인 우니 콩트니 감독의 자전적인 영화라고 한다. 어린 "진희"에게 인생의 여행이란 어떤 것일까?

 

 영화 "나비효과" 시간 여행을 통해서 자신의 인생을 바꾸려는 주인공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것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바뀌지 않는다. 의도하지 않은 다른 사건들이 계속해서 주인공과 주변 사람들의 삶을 힘겹게 만든다. 반면,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시간 여행자의 아내" 시간여행이 운명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운명이라는 것은 정해져 있고, 시간 여행으로 인해서 운명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든 것이 운명인 영화다. 주인공은 어머니의 죽음도 막을 수가 없었고, 자신의 죽음조차도 피하지 못한다. "헨리" 하는 시간여행자체가 자신의 의지로 조절할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하지만, 헨리와 클레어는 운명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여행한다. 운명을 받아들이며 피할 없는 운명에 저항하지 않지만, 속에서 그네들 나름의 인생의 여행을 한다. 운명의 끝을 알고 있는 이의 삶의 여정은 어떤 것일까?

 

 하지만, 인생이 여행이기 위해서는 끝나지 않아야 한다. 살아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여행을 수가 있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인생의 끝은 인간이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자신의 인생에 시작도 끝도 선택할 수가 없다. 삶의 여행 속에서 운명보다 극적이게 다가오는 것은 여행의 끝을 결정하는 운명이지 않을까? 컴백 콘서트를 앞두고 갑작스럽게 죽음이라는 운명을 맞이한 마이클 잭슨의 소식은 그를 조금이나마 좋아했던 사람들에게는 크나큰 충격자체였다. 그래도 잭슨은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삶의 마지막 여정은 기록으로 남겨져 있으니 말이다. 죽음이라는 운명은 피하지 못했지만, 그는 살아 있는 동안 삶의 여행은 아름다웠다. 영화 "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인간의 기록이자, 그를 기억하는 이들을 위한 영화다. 영화는 죽음이라는 운명보다, 그저 인생의 여행을 아름답게 빛냈음을 보여주지 않을까?

 

 인생의 여행이라는 것은 시작도 끝도 보이지 않는다. 지도가 있는 것도 아니요, 나침반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하늘의 북극성처럼, 인생에 북극성이 있어서 방향을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인생은 힘들다. 우리가 가야 목적지가 어딘지도 가는 길도 쉽게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른 이의 인생 여행에 관심을 가지는 또한 이것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여행이 자신의 길잡이가 되어 주거나 또는 위안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어떤 이의 삶의 여행이 각자의 지침서가 되어줄지는 없지만, 운명에만 자신의 여행을 맡기지 않은 이들의 삶은 우리에게 스스로 미지의 삶의 여행 속으로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힘이 되어 주지 않을까?

은빛연어의 미투데이 - 2009년 10월 30일

이 글은 은빛연어님의 2009년 10월 30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2009년 10월 30일 금요일

은빛연어의 미투데이 - 2009년 10월 29일

  • 법관들 대가리에는 상식은 없고, 정치적 이해관계만 있는가?(미디어법, 헌재, 법관) [ 2009-10-29 17:41:17 ]
  • 잭슨 형님 이런 모습은 살아서 무대 위에서 보여줬어야죠. ㅠ.ㅠ(me2movie 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 [ 2009-10-29 20:51:21 ]
    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
    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

이 글은 은빛연어님의 2009년 10월 29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2009년 10월 29일 목요일

은빛연어의 미투데이 - 2009년 10월 28일

  • 웃기고자 만든 영화. 웃기긴 한데. 그 웃음이 조금은 강하지 않아서 아쉽다. 올해 나온 7급 공무원에는 조금 모자란 듯한 느낌이.(me2movie 청담보살) [ 2009-10-28 23:05:02 ]
    청담보살
    청담보살
  • 영화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 새롭기는 하나. 어려운 용어의 남발하는 상황에서 보지 못했던 영화에 대한 글은 쉽게 이해를 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이나, 자신의 지적능력을 너무 과시하는 책이라는 느낌이. 조금은 쉽게 써줬으면….(me2book 진중권의 이매진 Imagine) [ 2009-10-28 23:22:49 ]
    진중권의 이매진 Imagine
    진중권의 이매진 Imagine
  • 내일은 마잭슨 행님의 마지막 모습을 보러 go go go.(me2movie 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 [ 2009-10-28 23:25:24 ]
    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
    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
  • 비겁한 경제학자들은 이번 금융위기를 블랙스완이라고 말하며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한다. 과연 이번 금융위기가 블랙스완일까? 이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 블랙스완은 개뿔. 냉정한 곰들은 이미 금융위기의 시작을 예측했고, 경고까지 했다. “패닉”이라는 책도 그것을 보여준다.(me2book 상식의 실패) [ 2009-10-28 23:31:37 ]
    상식의 실패
    상식의 실패
  • 어쩔 수 없이 민주당을 응원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정치구조와 풍토가 맘에 들지 않지만, 양산에서 선전에 박수를 보낸다. 그래도 조금은 이겼으면 더 좋을 것을 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10.28 재보선, 양산, 재보선,) [ 2009-10-28 23:41:29 ]
  • 정치꾼들은 이래서 역겹다. 전정권에서 만들자고 했던 “고위공직자수사처”를 그렇게 반대하더니, 이제는 생각을 바꿔서 만들겠단다. 하긴 도덕성 자체가 쓰레기인 인간들이 그런 쇼라도 해야 국민들을 속이지 않겠는가?(이재오, 역겨운 정치꾼,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정치쇼,) [ 2009-10-28 23:49:24 ]
  • 비슷한 제목을 가진 2권책 “미디어 모노폴리”와 “미디어 독점”은 미디어법이라는 이슈를 다루고 있다. “모노폴리”는 미국에서 쓰여진 책으로 미국미디어 상황을 무섭고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독점”은 한국의 상황을 비롯한 미국, 이탈리아 등을 포괄해 종합적으로 보여준다.(me2book 미디어 독점,미디어 모노폴리,둘다 강추,미디어법) [ 2009-10-28 23:59:13 ]
    미디어 독점
    미디어 독점

이 글은 은빛연어님의 2009년 10월 28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2009년 10월 27일 화요일

은빛연어의 미투데이 - 2009년 10월 27일

  • 우리는 게공선의 비참한 노동자들. 책 ″게공선″을 읽고. 자본이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을 때, 노동자의 삶이란 비참함 그 자체였다.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지금도 많은 빈곤국의 아이들은 배움의 기회를 잃은 채 힘든 노동의 현장으로 몰리고 있듯, 과거 산업혁명 당..(게공선 리뷰 책) [ 2009-10-26 23:04:19 ]
  • 강렬하지도 시시하지도 않다. 그저 미지근하다. 너무 이상적이라서 현실감이 없어서일까?(me2movie 굿모닝 프레지던트) [ 2009-10-26 23:51:30 ]
    굿모닝 프레지던트
    굿모닝 프레지던트
  • 이 책 뭐랄까? 창조성에 관한 책이라기 보다, 창조적 인물 7명의 평전에 가까운. 장단점에 대한 명확한 평가가 빛난다고 할까? 창조성에 대한 가드너의 연구나 분석은 기억에 잘 남지 않는다.(me2book 열정과 기질) [ 2009-10-27 00:03:42 ]
    열정과 기질
    열정과 기질
  • 영화 ″하늘과 바다″를 보고…. 마케팅이 덜 된 것인지, 내가 이 영화에 대해서 아는 정보라고는 배우 장나라가 오랜만에 영화에 복귀하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에 대한 관심이나 호감도는 높은 편이 아니였다. 그런데 대종상후보 발표가 있은 후 조금씩 잡음이..(리뷰 영화 유아인 장나라 하늘과 바다 현쥬니) [ 2009-10-27 01:27:18 ]

이 글은 은빛연어님의 2009년 10월 26일에서 2009년 10월 27일까지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영화 "하늘과 바다"를 보고....

 

 마케팅이 것인지, 내가 영화에 대해서 아는 정보라고는 배우 장나라가 오랜만에 영화에 복귀하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에 대한 관심이나 호감도는 높은 편이 아니였다. 그런데 대종상후보 발표가 있은 조금씩 잡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지원이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을 가지고 시작된 잡음은 장나라에게 불통이 튀었다. 아직도 개봉도 하지 않은 영화 "하늘과 바다"에서 몇몇 부문에 후보에 오르면서 문제가 것이다. 이것을 보고 몇몇 팬들은 과거 상의 권위를 떨어뜨렸던 나눠먹기 행태의 기억을 떠올렸는지, 잡음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장나라나 영화제작사 측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사건은 노이즈 마케팅의 역할을 하면서 영화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같은 사람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그렇게 관심을 나의 관심을 끌었다고 해도, 영화에 대한 기대나 호감도는 높아지지 않았다. 사실 내가 영화의 시사회에 참여하게 것은 영화에 대한 호기심이나 관심이 아니라, 장나라의 무대인사가 있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다. 지방에 사는 촌놈에게는 배우들을 가까이에서 기회가 적기 때문에 배우를 직접 보겠다는 목적이 앞섰다.

 

 그런 목적으로 극장에 앉아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가 시작되고 스크린에 장나라의 연기하는 모습이 비췄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장나라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일까? 영화의 시작과 등장해 연기하는 장나라의 모습이 연기가 아니라, 머리 속의 기억된 장나라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초반 장나라가 연기하고 있는 캐릭터에 대한 설명조차 없으니, 같은 관객들에게는 장나라가 연기하고 있는 캐릭터와 실제 장나라의 모습과 구분하기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영화의 내용에 몰입하는 것이 방해를 받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실제 장나라와 영화 "하늘"이라는 캐릭터가 구분되기 시작한다. "하늘"이의 상황과 성격 등이 영화 속에서 조금식 조금씩 열리면서 실제 장나라는 "하늘"이라는 캐릭터에 묻혀 버린다. 어느 순간엔가 스크린 속에 장나라는 사라져 버리고 "하늘"이라는 캐릭터만 명확하게 남게 된다.

 

 "하늘" 영화를 주로 이끌어가는 "바다"라는 캐릭터에 대한 몰입은 쉽지 않다. 쥬니의 조금은 부족한 연기력이 어색해서 그런지 가끔씩 거슬린다. 특히 반항하는 모습이나 때의 모습은 아쉬움이 크다. 그래서 영화를 이끌어가는 힘은 조금씩 약해진다. 영화를 보면서 강혜정, 배종옥 주연의 "허브"라는 영화가 문득 생각났는데, "허브" 다운버전이라는 생각을 나게 만든다. 강혜정과 배종옥이라는 연기파 배우들이 영화 "허브" 끌어가는데 강력한 힘이 되는 쌍두마차였다면, 영화 "하늘과 바다" 이끄는 쌍두마차는 장나라와 쥬니이다. 그런 쥬니의 힘이 떨어지니 영화의 힘이나 느낌은 "허브"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드라마 "최강 칠우" 출연하면서 주목 받았던 유아인도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에서 보여줬던 연기의 반복적인 모습이다. "결혼 못하는 남자" 비해서 조금은 거친 역할이기는 하지만 드라마 이미지를 깨지 못하는 같다. 만약 쥬니와 유아인이 장나라를 조금 뒷받침 했다면 영화는 조금 빛나지 않았을까? 그러지 못해서 영화의 전체적인 느낌은 드림업이나 페임과 같은 류의 하이틴 영화라는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랄까? "하늘" "바다" 그리고 "진구" 자동차를 타고 가다 도로 한가운데 벌어지는 앙상블은 영화의 압권이다. 소음과 음악이 조화를 이룬 음악과 영상은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닫힌 생활을 하던 "하늘" 세상을 향해서 나아가면서 속에서 조화를 이루어가는 과정을 아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인데, 소음과 음악의 앙상블은 서로 다른 명의 캐릭터 "하늘","바다" 그리고 "진구" 조화되어 가는 과정을 같이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에 여운을 남기기 위해서 필요한 장면이 되었어야 했다. "하늘" "바다" 대학 축제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장면을 통해서 감독은 영화의 여운과 감동을 크게 만들려고 했지만, 영상이나 카메라 워크는 미숙해 보인다. 비슷하게 콘서트나 공연 장면으로 끝나는 다른 영화들에 비해서 확실히 힘이 떨어져 보인다. 그래서 감동이나 여운은 크게 남기지 못한다. 오히려 영화 엔딩과 함께 무대에 등장한 장나라와 노래가 여운을 남겼다. 

 

2009년 10월 26일 월요일

우리는 게공선의 비참한 노동자들. 책 "게공선"을 읽고.

 

 자본이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을 , 노동자의 삶이란 비참함 자체였다.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지금도 많은 빈곤국의 아이들은 배움의 기회를 잃은 힘든 노동의 현장으로 몰리고 있듯, 과거 산업혁명 당시에도 다수의 어린이들과 여성들은 힘든 노동에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하루에 14~16시간을 일하면서 그들은 월급을 받았다. 그렇게 비참한 생활을 견디며 힘든 노동을 해도 그들에게는 그런 비참한 생활을 벗어날 희망이 없었다. 산업혁명 당시 노동자 어린이의 평균 수명이 17세였을 정도로 그들은 삶을 위한 노동이 아니라 죽음을 위한 노동으로 몰렸다. 그런 비참함에 분개한 많은 지식인들은 모든 노동자가 인간으로써 제대로 살아가기를 열망하며, 자본에 대항해왔고, 그런 과정과 많은 희생을 통해서 지금의 우리는 형식적으로나마 법이라는 보호막 아래서 인간다운 권리를 당연하게 주장할 있는 환경을 얻었다.

 

 하지만, 자본은 그렇게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과거 만큼은 드러내 놓고 악랄함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많은 노동자와 시민들이 쉽게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그들의 목소리와 힘을 강화시켜왔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 천명했던 것을 기억해본다면 자본의 막대한 힘이 우리 사회에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 쉽게 이해할 있다. 뿐만 아니라, 2mb정권의 통치백서가 전경련에서 만든 전경련 백서라는 사실을 본다면, 자본권력이 정치권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을 있다. 그렇게 시나브로 자본은 사회의 모든 권력과 의식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장악하기 시작했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나 배려보다는 시장과 자본의 원리가 사회와 인간관계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자본에 의해서 삶의 터전을 잃고, 누군가가 자본에 의해서 목숨을 잃어도, 우리는 안타까워하기 보다는 자본의 원리와 시장의 원리를 들이대면서 "객관적"라는 말을 쉽게 가져다 붙인다. 사실 "객관적"이라는 말이 마치 대단한 진리인 것처럼 숭상하지만, 이면에는 내가 당사자의 입장이 아니라 제삼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라는 말일 뿐이다. 제삼자의 입장이라는 것이, 마치 자기가 심판이나 판단자가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어 균형을 가지고 판단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데, 사실 착각일 뿐이다. 기본적으로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라는 것이 균형을 가질 없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이다. 사람은 균형을 가지고 중립적인 관점을 가지려 노력할 수는 있어도, 쉽게 관점을 가질 없는 존재들이다.

 

 "객관적"이라는 말에 숨겨진 다른 의미는, 이미 개인들은 너무 파편화가 되어 있다는 말이다. 공공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이 우선하며, 결국에 자신의 이익에 우선하는 것이 공공의 이익이라는 것이다. 시장과 자본의 원리, 경쟁의 원리 이면에는 "소비자의 선택권" 확대라는 다른 논리가 숨어있다. 논리는 노동자나 시민의 모두가 소비자이기 때문에 마치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처럼 위장하고 있지만, 사실 자기 개인의 선택권을 중시하는 논리일 뿐이다. 자기는 것을 사고, 자기는 좋은 것을 사고 싶다는 이상의 논리는 숨어 있지 않다. 그렇게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면서 시민과 노동자는 파편화되면서 이기적으로 변했다. 옆에서 누군가가 쓰러지고, 사라져도 자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본척한다. 나만 아니면 상관없다는 이기심의 발로로, 사회의 빈곤층이 늘어나고 중산층에 탈락한 사람이 늘어나고, 빈부의 격차가 커져도 상관이 없다.

 

 그렇게 자본은 파편화된 개인을 하나하나 공격하면서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사회 안정망이라고 불리우는 법과 복지제도 그리고 노조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비정규직의 확대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정규직이 고용은 줄어들고 값싸게 고용하고 쉽게 해고할 있는 비정규직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지금의 비정규직을 18세기 산업혁명 당시 어린이와 여성 노동자에 비유한다면 과할까? 물론 그들과 비유하는 것은 과하다. 하지만, 정규직과 자본가들의 처지와 비교해본다면 비정규직은 21세기 새로운 노예제도라는 말에 이의를 달기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이들을 보호해야 정부 그리고 노동부는 해고대란설을 흘리면서 비정규직법을 개악하려고 발버둥까지 쳤다. 노동부 장관이라는 작자가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노동연구원의 원장이라는 작자는 헌법이 보장한 노동권에 대해서 공격하기 시작했다. 미국만 헌법에 노동권이 명시되지 않았을 , 많은 선진국들은 노동권을 헌법에 명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척하면서. 하지만, 거기에 분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미 파편화된 개인들은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만 아니면 되기 때문이다.

 

 자본의 공격에 그렇게 개인은 점점 파편화 되어감은 물론이고 자본에 종속되어 간다. 삶은 점점 팍팍해지면서도 다수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자본에 기대를 건다. 하지만, 자본은 결코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자본의 공격에 가장 취약한 젊은 세대마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이제 사회에 진출하는 젊은 세대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이나 보호막이 없는 상태이기에 처음부터 자본의 공격에 무참히 당할 밖에 없고, 당하고 있다. 88만원 세대라는 말의 중심에 그들이 있고, 비정규직의 중심에 그들이 있음에도 그들은 저항하지 못하고 있다. 기성세대들이 쳐놓은 그물 안에서 허우적거릴 뿐이다.

 

 일본에서는 그런 현실을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인지, 1920년대에 노동자들의 처절한 삶을 그린, 소설 "게공선"이라는 책이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영화까지 만들어져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 소개될까지 되었을 정도였으니, 소설 "게공선" 대한 열풍은 상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무엇이 책을 그렇게 주목 받게 만들었을까? 읽어보면 문학적으로 그렇게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되지 않고, 기존의 일본 소설과 달리 문체도 상당히 건조하고, 특정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도 아니라 딱딱한 느낌까지 드는 ""임에도 불구하고.

 

  책에 묘사된 노동자들의 삶이나 환경은 정말 처절할 정도로 지독하게 묘사되어 있다. 생지옥이랄까? 현실의 환경과 비교해서 봐도 심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심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런 묘사에 동질감을 느끼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현실의 모습이 비록 조금은 다르기는 해도 자본의 폭력과 잔인함은 차이가 없음을 보여줌이 아닐까? 부자가 되겠다는 열망과 사랑으로 자본을 향해 쓰였던 콩깍지가 이제 벗겨지면서 보게 자본의 실체를 책을 통해서 제대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책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현실을 깨닫고 저항하기 위해서 조금씩 변해가고 몸부림 치는 과정을 통해서, 그들이 자본의 실체를 보게 과정과 같음에 쉽게 공감하게 만든다. 자신들의 생각이 변해가는 과정과 속의 노동자들이 변해가는 과정은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과정을 차례로 따라가보면, 425명의 사람을 태운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구조 신호에도 생산량의 손실이 생긴다는 이유로 구조를 포기하는 장면이 있는데, 장면 이후에 "자본주의는 마땅히 이윤에 관한 일이라면 금리가 내려 돈이 넘쳐나기만 한다면, ' 그대로' 무슨 짓이라도 한다."라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배의 구조에는 무심했던 배가 풍랑으로 잃어버린 6명의 선원을 태운 자신의 똑딱선을 찾아 나서는 내용이 있는데 이유는 "인간 대여섯 마리는 아무것도 아니였지만, 똑딱선이 아까웠기 때문이었다."라고 설명한다. 국가를 위한다는 명분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돈벌이' 위해 하나도 남김없이 파헤쳐졌다. 더군다나 그것을 교묘하게 '국가적'으로 부강해질 있는,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결부시켜서 감쪽같이 합리화했다. 빈틈이라곤 없었다. '국가' 위해서, 노동자는 '뱃가죽이 등에 붙어''맞아 죽어'나갔다."라는 문장은 아직도 애국이라는 말에 환상이 위선임을 꼬집어 준다.

 

 바로 위의 문장도 마음에 들지만,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만 특히 마음에 드는 설명이나 묘사는 어선 노동자들 자신들을 구원해 것이라고 믿었던 해군선박이 결국에는 게공선 감독관과 선장의 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장면이다. 거기서 노동자들은 "우리에겐, 우리 말고는, 같은 편이 없어. 이제야 알았다.""우리 군함 좋아하네, 허풍이나 떠는 부자들의 앞잡이잖아. 국민들과 한편? 웃기고 자빠졌네, 엿이나 먹어라!"라고 하는데, 국가가 국민을 위한다는 환상을 완전히 무너뜨려 버린다. 아직도 이런 환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국가만을 보고 있지만, 결국에 국가라는 존재는 힘이 있는 존재를 위해서 움직인다. 지금 힘은 자본이라는 것을.

 

 이러한 내용들은 쉽게 공감이 가는 것은 저자의 상상력과 묘사실력이 뛰어나서라기 보다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자본의 본성은 변하지 않음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자본은 행패는 모습을 달리할 결코 인간이라는 존재를 위해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본은 자본을 위해서 움직일 뿐이다. 책이 8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독자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는 것도 바로 때문이다. 아직도 자본에 콩깍지가 쓰여서 열열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상 우리는 여전히 게공선의 노동자로 현실을 뿐이다.



게 공선 - 8점
고바야시 다키지 지음, 양희진 옮김/문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