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29일 수요일

유럽 88만원세대의 자기고백. 책 "퍼킹 베를린"을 읽고...

 


 

  , 등록금 때문에 사채를 끌어 대학생 딸을 살해하고 아버지가 자살했다는 슬픈 기사가 떴다. 기사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사채"라는 사회악에 대해서 분노를 표현하지만, 다른 문제 높은 대학등록금 문제에 대해서는 그렇게 분노를 표현하지 않는다. 대학생들과 그들의 부모들은 대학등록금 때문에 허리가 정도로 힘겨워하면서 아우성인데도, 다른 이들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외면한다. 지금은 나와 성관 없는 일일지는 몰라도 직간접적으로 높은 대학등록금 때문에 감내해야 기회비용을 생각한다면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 누구도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런 피해가 현재 자신의 눈앞에 가시화 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문제에 대해서 분노를 표시하지 않는다.

 

  때문일까? 가난한 대학생들과 그들의 부모들이 아무리 문제를 제기하고 분노를 표출해도,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야 정치권과 정부는 모른 , 문제를 외면해 버린다.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대통령 선거 때는 너도나도 반값 등록금 정책을 제시하더니, 당선되고 나서는 말을 바꿔 그런 말을 한적이 없다고 우기기까지 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문제는 다수의 학생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서 침묵하는 것이다. 불합리하고 더러운 사회에 그저 굴복하고 안주하려는 것인지, 원래부터 자의식과 문제의식을 상실한 무늬만 대학생인 것인지 정확히 수는 없지만, 결국 이러한 상황의 직접적인 피해를 받는 당사자들이 침묵하면 수록 1차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은 바로 그들 뿐이다.

 

 반면, 높은 대학 등록금의 문제에 당당하게 나서는 사회의식을 가진 소수의 대학생들은 힘이 없다. 여대생들이 삭발을 해가면서까지 높은 등록금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해도 돌아오는 것은 경찰이라는 공권력을 통한 억압 뿐이다. 삭발하면서 그들이 흘리는 눈물에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다수는 가지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돈에 대한 욕망을 키운다. 그래서 사회의 구조적 문제는 전부 외면한 , 현실에 일어나는 문제의 모든 책임을 개인들에게 돌려버린다. 모든 문제는 개인의 책임이고 개인이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강준만 교수는 대한민국을 "각개약진공화국"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대학등록금에서 시작된 문제, 결국에는 사회문제로 번져간다. 엄청난 등록금을 쏟아 붙고 졸업해도 기다라는 것은 잠재적 실업이고, 대학시절 빚으로 마련한 등록금은 그들의 숨통을 서서히 조여온다. 빚을 갚기 위해서 또는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알바나 임시직을 전전하게 되고, 경제적 강자들에게 핍박을 받으면서도 함부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극단적으로 현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자살을 하기도 한다. 다른 쪽에서 경제적으로 강자인 30 남성들은 경제적 약자인 20 여성들을 룸메이트라는 이름으로 이상한 동거로 유혹한다. 남녀가 사랑을 해서 하는 동거가 아니라, 경제적 강자의 성적욕망을 해소와 경제적 약자의 주거문제해결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형태 외에도 어쩔 없이 자신의 성을 팔아야 하는 여성들도 늘어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물결이 거쳐간 나라가 거의 없듯, 젊은 세대들이 처한 상황은 나라마다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88만원세대가 있듯 유럽의 국가마다 700유로세대니 800유로세대니 하는 식으로 젊은 세대들은 힘겨운 현실에 직면해 있다. 우석훈 박사의 "88만원세대"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그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이라면, "퍼킹 베를린" 여성의 자기고백으로 자기가 처한 현실과 사회가 처한 현실을 보여준다.

 

 비록, 성을 팔아서 생활하는 저자의 이야기가 세대의 일반적인 이야기가 없겠지만, 감추지도 부끄러워 하지도 않는 담담한 자기고백은 어떤 사회학적 분석보다 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쉽게 공감하게 만든다. 어떻게 보면 독일에서도 유학생, 일찍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대학생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만들어낸 극히 일부의 상황일 수도 있겠지만, 성인이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부터 하는 서양적 가치관에서 본다면, 과거에 비해서 젊은 세대들이 스스로 독립된 생활을 하기가 힘든 사회적 경제적 여건에 더욱 관심을 가질 있는 길을 열어준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녀도 높은 물가와 집값 그리고 낮은 수입으로 쉽게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과 비교해 본다면 우리가 처한 환경과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느낄 있을 것이다.



퍼킹 베를린 - 8점
소니아 로시 지음, 황현숙 옮김/프로네시스(웅진)


2009년 4월 24일 금요일

나를 긍정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계획서. 책"31일 습관"을 읽고

 


 사람은 쉽게 변하기도 하고, 쉽게 변하지 않기도 한다. 어리석을 정도로 드센 자존심 때문에 쉽게 변하지 못하면서도,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아주 하찮은 계기로 인해 자존심 버리고 변하기도 한다. 저마다 사람을 변하게 하는 계기와 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예측하는 것이 어렵기는 물론이거니와 강제로 변화 시키려 하는 또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자신을 변화시키거나 바꾸지 못하는 사람들은 한숨을 내시며 한탄만 한다.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거나 바꾸려 하는 사람들은 상대방과 갈등하고 충돌하게 된다. 아무리 과학적인 근거와 객관적인 근거와 논리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대상(자기 자신이든 타인이든) 설득하고 자극해보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금연문제를 예로 들어보면, 코메디언 이주일이 흡연으로 인한 폐암으로 사망을 했을 , 한국 사회에서는 금연열풍이 불었다. 흡연의 폐해를 이주일의 죽음으로 건강의 중요성을 깨달은 사람들이 금연을 결심하고 실천에 옮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에 성공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흔히 흡연자들은 금연에 성공한 사람은 아주 지독한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비하하듯 말한다. 만큼 금연이 어렵기도 하거니와 다른 한편으로는 금연의 실패로 인해 무너진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한 변명이다. 금연실패에 대한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보다, 성공한 사람을 비하하면서 실패에 대해서 스스로를 합리화 해버린 것이다. 반면 어떤 이들은 담배 냄새를 싫어하는 자식들 또는 애인의 한마디에 금연에 성공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성격이 더러워서 그런지 많이 부정적인 성향이다. 학창시절에는 부정적인 성향이 강해서 그런지 사람을 대면하면 무조건 상대방의 단점부터 찾는 이상한 습관이 강하게 형성되었다. 그로 인해서 받는 스트레스가 심하고, 대인관계에도 많은 문제가 생기는 같았다. 그래서 결심했던 것이 "사람의 단점을 보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자."였고, 나중에는 "사람의 장점을 찾아 보자." 변했다. 결심과 실행의 의지가 강했던지 오래지 않아서 사람의 장점부터 보기 시작했고,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사람의 단점을 거의 보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이 단점을 지적하면 비로서 그것이 단점으로 보인다. 그렇게 "사람의 단점부터 보는 습관" 고쳤지만, 부정적인 성향은 쉽게 고쳐지지 않고 남아있다.

 

 부정적인 성향을 고치기 위해서 "긍정" 관한 많은 책을 통해서 기운을 전해 받기도 했지만, 안의 내면 깊은 곳에 여전히 남아 있는 "부정"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긍정" 생각하는 것이 습관화 되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주변이나 사회의 "부정" 사건과 환경들로 인해서 안의 "부정" 쉽게 되살아 난다. 과거보다는 "부정" 기운이 많이 약해졌다고는 생각하지만, 완전히 "긍정"적이지 못하고 "부정" "긍정" 회색지대에 지금 놓여 있는 상황이다. 지금도 여전히 "긍정"적으로 나를 변화시키려 꾸준히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가 않다. 너무 막연하게 "긍정" 사람이 되자고만 해서 그런 것이거나 아니면 인간이 사는 세상에 너무 부정적인 것이 많아서라고 추측만 뿐이다. 후자의 것은 나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한 핑계일 뿐이지만.

 

 사람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계기, 변화하려는 강한 의지, 그리고 체계적인 계획과 실천노력이 필요하다. 계기는 목표의식을 명확하게 해주고, 의지는 변화의 과정에서 흔들리는 자신을 잡아 준다. 체계적인 계획은 변화의 과정에서 목표를 향한 방향을 명확히 해주고 실천의지를 북돋아 준다. 거기에 실천노력은 강력한 타성에 젖어 타성으로 회귀성을 약화시켜주기 위한 지난한 과정을 견뎌내는 힘이요 원동력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강력한 계기를 가지고, 초반에는 강한 의지로 변화하려고 시도는 많이 한다. 하지만, 계획과 실천 노력이라는 면이 부족해서 결국에는 실패에 머물고 만다. 어떻게 보면 내가 완전한 "긍정"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아직 회색지대에 머물러 있는 것도 계획과 실천노력이라는 부분이 부족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막연하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라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계획이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실천노력을 이끌어내기에도 부족하다. 계획과 실천노력이 부족함으로 인해서 결국에는 계기와 의지마저도 희석되어 버리고, 스스로 변화하지 못한 것이다.

 

 "31 습관"이라는 책은 "긍정"으로 변하기 위한 체계적인 계획이라는 부분에서 매력적인 책이다. 31 동안의 과정과 과제가 짜여져 있다는 점도 물론 있지만, 책의 마지막에 끼워져 있는 32장의 트레이닝 카드가 매력적이다. 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긍정"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좋겠지만, 실천을 위한 과제는 여러 페이지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분량도 아니고 1~2문장이면 되는 것이기에 굳이 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실천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트레이닝 카드를 가지고 다니면서 실천하는 것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휴대하기도 좋다. 내용보다 체계적인 계획과 실천노력을 있는 트레이닝 카드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31일 습관 - 8점
나시다 후미오 지음, 이동희 옮김/전나무숲

2009년 4월 23일 목요일

영화 "7급 공무원"을 보고

 

 어떤 기대치를 가지고 영화를 보느냐에 따라서 영화에 대한 만족도와 평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150만이라는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는 영화 "그림자 살인"이란 작품은 기대를 반하는 작품이었다. 작품성과 함께 내용도 짜임새 있을 같아서 상당한 기대를 하고 극장에 들어섰지만, 예고편 이상의 흥미를 자극하지 못하는 그저 그런 작품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영화의 완성도가 그렇게 떨어지는 것은 아닌데, 포장지만 화려하고 내용물을 일없는 상품이랄까? 때깔은 깔끔하니 보기는 좋으나 내실부분에서 부족한 그런 작품이었다. 만약 처음부터 기대 수준이 낮았다면 영화 "그림자 살인" 보통 수준이라는 평가를 내릴 있었겠지만, 관심을 끄는 출연배우들과 매력적인 예고편은 이미 기대 수준을 높여 놓은 상태였다.

 

 영화 "7 공무원" 기대 수준은 김하늘이 이전에 권상우와 호흡을 맞췄던 "동갑내기 과외하기" 정도였다. 여자 주연배우가 김하늘이라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영화의 느낌이랄까 분위기는 "동갑내기"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영화 "7 공무원"에서 원한 것은 아기자기하면서도 짜임새있는 로맨틱 코메디였다. 영화 보는 내내 유쾌하고 즐겁게 있기만 한다면 충분하다는 것이 영화를 보기 전에 내가 정해 놓은 가이드라인이었다. 그래서 머리를 굴리면서 영화의 흐름을 쫓아갈 필요도 없이 그저 스크린에 비춰진 영상의 흐름에 눈을 고정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는 기대를 배반했다. 생각했던 기대치 이상으로 짜임새 있는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장르의 영화 중에서는 "달콤 살벌한 연인"이란 작품을 최고로 치는데, 작품만큼은 아니더라도 "동갑내기" 뛰어넘는 재미와 이야기의 짜임새를 갖추고 있는 같았다. 과장된 오버액션이 넘쳐나는 작품도 아니라,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충분히 공감하고 웃음을 유발하기에 쉽게 공감하면서 영화에 몰입할 있게 만든다. 신비감으로 알려지지 않은 국정원 요원들을 중심으로 첩보물 형식을 차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정원 요원이라는 요소보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어쩌면 그래서 쉽고 재미있게 있는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2009년 4월 14일 화요일

입시전쟁의 기원과 역사 그리고 현재. 책 "입시전쟁 잔혹사"를 읽고....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죽어야 정신을 차릴까? 해마다 200여명의 아이들이 입시로 인해서 죽어간다는 것은 알기나 할까? 아무리 언론에서 청소년 자살률이 OECD국가 1위라고 떠들어도 귀에 읽기일 뿐이다. 대중들과 언론은 연예인들의 자살에는 슬퍼하고 애도를 표하면서, 피우지 못한 꽃봉오리들이 그냥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다. 귀하지 않은 생명이 어디 있고, 안타깝고 슬프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중국의 교육체제와 입시문제를 비판한 신세대 작가 "한한", 자신의 자전적 소설 "삼중문"에서 "죽은 책을 공부할 뿐만 아니라 죽도록 공부하다가 공부로 인해 결국 죽게 되다니. 아마도 중국에서 실연으로 인해 자살하는 사람의 수가 줄어드는 것은 마음 약한 사람은 이미 고교 입시와 대학 입시의 문지방을 넘지 못하고 거의 죽어서 그런 모양이었다."라고 했다. 우리 나라에서 젊은 베르테르 처럼 실연으로 자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처절한 입시전쟁에서 생존했다고 해서 자살자의 수는 줄지 않는다. 오히려 자살자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08  사망원인 통계연보" 보면, 2007년에 37시간마다 10 청소년 1명이 자살로 사망했지만, 성인은 81분마다 자살로 사망한 것으로 나온다. 가장 아름다운 시기여야 10 청소년 시절에는 치열한 입시전쟁을 견뎌야 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약육강식의 생존 전쟁을 견뎌야 하는 정글 같은 사회의 단면인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나이가 들수록 늘어나는 자살자의 수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를 나타내는 바로미터 임에도 불구하고, 자살을 흔하디 흔한 사건으로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일 정도로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경쟁에서 낙오한 사람들의 종착역은 죽음이어야 이유가 없음에도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문제의식을 가지 않는 사회, 그런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사회, 우리 나라는 언제부터인가 그런 곳이 되어 버렸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기에 우리 사회는 이렇게 변해 버린 것일까? 아니 우리는 이렇게 변해 버린 것일까? 지독할 정도로 치열한 경쟁에 스스로를 몰아 넣으면서 자초한 망국적인 현상을 아닐까. 자살하는 사람이 자신이 되었을 , 주변과 사회에 도움을 구하지 못하는 현실과 냉대 어린 시선은 우리가 지금 자살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현실이자 시선이다.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우리는 여전히 타인의 죽음에 무관심하고 냉정하기만 우리는 죽음의 방관자를 넘어서 죽음의 생산자가 되어 버렸다.

 

 선진국 콤플렉스와 서양 콤플렉스로 지독할 정도로 치열한 경쟁으로 스스로를 몰아 넣으면서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2 국가로 머물러 있다. 권력자들은 우매한 국민들을 향해 선진화라는 아젠다를 설정하고, 어리석은 우리들은 권력자들의 허황된 거짓말을 믿으며 경쟁만이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요 힘으로 믿는다. 순진한 국민들은 그렇게 서로를 죽일 듯이 경쟁에 매달리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권력자들의 부정부패에 실망하고 한탄만 뿐이다. 유전무죄와 권력 앞에 관대하기만 불평등한 앞에 분노하기 보다는 권력과 돈을 가지지 못한 스스로를 원망하고 자기 자식만은 돈과 권력을 가질 있도록 교육이라는 도구에 매진한다.

 

 역사적으로 조선시대부터 있어온 입시부정과 권문세가 자손들의 족집게 과외, 그리고 조선 말기의 부정부패가 넘치는 과거시험을 통한 매관매직의 행태는 지금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교육문제의 과거이기도 하고, 현재이기도 하고, 미래이기도 하다. 계절에 맞게 바꿔 입는 옷처럼, 시대마다 교육의 옷만 바뀔 교육 문제의 분질, 사회문제의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 그렇게 탄생한 조선말기의 지도층들의 행태에 분노한 영국의 여행가 이사벨라 비숍은 "개혁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아직도 단지 계급, 약탈자와 피약탈자로 구성되어 있다. 면허받은 흡혈귀인 양반계급으로부터 끊임없이 보충되는 관료계급, 그리고 인구의 나머지 4/5, 문자 그대로의 '하층민' 평민계급인 것이다. 후자의 존재 이유는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에게 피를 공급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조금 과장되어 생각 하자면, 지금 우리의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자신들만의 권력유지을 유지하기 위해서 국제중, 특목고, 그리고 사악한 사립대학이 공조를 이뤄서 돈으로 약탈자와 피약탈자를 구분지어 버린다. 자율이라는 이름을 앞세우지만, 책임을 지지 않는 방종으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수호 많은 약탈을 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피약탈자 자신들이 약탈 당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 단지 권력과 돈을 가지지 못한 자신을 탓할 뿐이다. 어떻게든 자신이나 자식들이 약탈자가 있도록 힘쓸 뿐이다. 철저하게 계급 상승만을 꿈꿀 , 불합리와 모순에 저항하고 싸우려 하지 않는다. KBS 오락 프로그램 "1 2" 출연자들이 복불복게임을 하면서 "나만 아니면 !"라고 외치듯, 자신과 자식들만 피약탈자가 아니면 되는 것이다.

 

 "험난한 역사를 겪어온 한국인들은 '승자독식주의' 저항하려 하기보다는 '승자독식체제' 또는 근처에라도 참여하는 쪽으로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켰다. 그래서 중앙정부도 아무 문제없다는 정부 인사에서 그러한 '승자독식주의' 유감없이 실천하였다."라는 강준만 교수의 지적은 그런 현실을 냉철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역사에부터 학습한 피약탈자들은 계급상승을 이뤄줄 있는 방법을 스스로 학습한 것이다. 그래서 자식들에게나마 이런 자신의 계급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 치열한 입시 경쟁으로 가족들을 몰아 넣는다.

 

 스스로가 원한 것도 아닌, 어른들과 사회에 의해 강제된 입시전쟁 속에서 아이들이 배운 것은 지식이나 지혜가 아니라 "승자독식사회"라는 현실과 냉혹한 경쟁 뿐이다. 아이들의 개성을 죽이고, 아이들의 자존의식마저 말살하고 있는 지금의 교육체계 안에서, 입시경쟁과 약육강식이라는 맹목적인 믿음으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오히려 강화시켜나간다. 그렇게 죽어있는 교육을 받으면서 우리는 스스로 학습하는 법도 배우지 못하고, 스스로 비판하는 법을 배우지 못함으로써 약탈자들에게 계속해서 약탈만 당할 뿐이다. 언젠가는 자식들이 약탈자가 되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임계치에 도달한 많은 아이들은 자살을 택하고, 입시 전쟁에 생존해 성인이 이들도 그런 한계에 좌절하며 다시 자살을 택하는 것이 현실임을 망각한다.

 

 문제의 근원이라고 있는 교육과 입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저자는 SKY 소수정예화를 주장한다. 그렇게 해서 한국 엘리트 시장의 독과점 체제를 해체하자는 것이다.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개인적으로 의문이다. 모자란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SKY 인문사회분야와 과학과 공학위주로 개편하고, 지방국립대에도 서울대 만큼의 지원으로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것도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법대나 상대 같은 곳들은 해체해버리면서 학문중심의 대학으로 변화하면, 권력과 돈으로 연결되는 학연주의와 학벌주의는 희석되지 않을까? 뿐만 아니라 등록금 천만원 시대에 지방국립대에 대한 대폭적인 지원으로 교육의 질을 향상하는 동시에 등록금을 공짜로 한다면, 충분히 유명 사립대와의 경쟁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잡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으로써 지방 인재들의 유출을 어느 정도 차단하고 지방의 경쟁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것만으로 한국 사회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교육문제와 입시문제를 해결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는 특정 분야나 요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에 시선으로 접근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말로만 "교육은 100년지 대계"라고 하지 말고, 1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회전체의 문제로 차근차근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사회전체에 커다란 의제를 던져야 때라고 본다. 매년 입시전쟁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81분마다 죽어가는 우리 어른들을 위해서.

입시전쟁 잔혹사 - 8점
강준만 지음/인물과사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