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7일 토요일

"부인"하고 "외면"하고 싶은 사실들에 대한.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3월 4주.

 

 케이트 윈슬렛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진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 " 읽어주는 남자" 보면, 나치전범 재판 장면이 나온다. 방청을 미하엘이 그곳에서 소년시절의 첫사랑 한나를 대면되는데, 뜻밖에도 한나가 나치전범으로써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한나와 같이 재판을 받던 사람들이 모든 책임을 한나에게 떠넘기면서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부인한다. 한나는 자신의 책임 이상으로 범죄를 저지를 것처럼 몰리지만,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 자신의 범죄를 시인하게 되고 징역형을 언도 받는다. 소년시절 한나를 사랑했던 미하엘은 한나가 문맹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버리고 갑자기 사라진 한나에 대한 미움 때문인지 한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장면에서 우리는 "외면" "부인"이라는 행위를 직면하게 된다. 하나는 미하엘이 한나에 대해서 외면과 부인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나와 같은 전범들이 자신의 행위를 부인하고 한나에게 죄의 책임을 돌린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한나를 외면하는 것이다. 여기서 미하엘의 부인과 외면의 경우는 개인적 이해관계에서 파생한 문제로, 행위로 인한 피해나 책임은 미하엘과 한나에게만 해당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하지만, 재판을 받는 전범들과 한나 사이에서 일어난 "부인" "외면"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차원에 해당하게 된다.

 

 그래서 "부인" "외면" 대해서 많은 사회학적 연구들이 이루어진 것을 있다. 스탠리 밀그램은 그런 행위의 기저에 "권위에 대한 복종"이라는 말로 그런 인간의 심리를 설명한다. 자신이 했던 행위는 명령에 따랐을 잘못이 없다고 "부인"하는 것이다. 한편, 부인의 심리학에 대표적인 연구자 스탠리 코언은 자신의 저서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 통해서 "부인" "외면" 대한 총체적인 연구결과를 보여준다. 책은  많은 심리학적 연구를 통해서 인간은 심리적으로 "부인" "외면" 잘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가 말바꾸기를 하면서 자신의 행위나 말에 대해서 부인하고 외면하는 정치인을 비난하지만, 결국 우리도 그런 상황에서는 쉽게 "부인" "외면"이라는 수단을 활용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예로 많은 사람들이 "용산사태" "쌍용의 파업사태"에서 일어난 철거민과 노조의 폭력행위에 대해서는 비난 하면서, 거기에서 일어난 경찰의 폭력행위에 대해서는 암묵적으로 "부인"하는 행위를 있다. 법과 절차에 따라서 신중하게 행사되어야 공권력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불법적인 행위에서 대해서 당연한 행위라는 식으로 경찰의 잘못을 "부인"하고 "외면"해버린다. 이런 식의 "부인"행위가 일상적일 뿐만 아니라, 누구나 그렇게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부인" 피해자(유대인 학살 같은 사건의 피해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모르거나 관심이 없던 사실이 또는 사건을 바로 직시하면서 사실을 알아야 필요를 느끼게 된다. 우리가 "부인" 했거나 "외면"했던 사실에 대해서 정확히 알기 위해서라도.

 

 그러기 위해서 영화라는 도구는 그런 사실을 관객들에게 전달해주는 좋은 도구 중에 하나다. 다큐멘터리 영화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은 우리가 알고 싶지 않거나 부인하고 외면했던 사실들에 대해서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뿐만 아니라, 실화는 아니더라도 영화 카메라에 잡힌 다양한 사회상들을 통해서 우리가 몰랐던 세상을 있다. 영화라는 것이 결국은 우리가 사는 사회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기에.

 

 

 "영화가 끝난 마음이 무거울 수도 있지만, 회피하지 말고 현실을 마주하길 바랍니다. -미야자키 아오이"," 역할을 맡은 것은 내게 사명감이자 책임감이었습니다. -츠마부키 사토시", "촬영이 끝난 귀국해서 아이들을 보는 순간, 평화를 기원하게 되었습니다.-에구치 요스케". 영화 "어둠의 아이들" 출연했던 배우들이 영화에 대해서 말이다. 그들이 보고 것은 사실이 아니라 연기일 뿐인데도,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받은 사실에 대한 충격이 크다는 것을 그들의 말로 느낄 있는 작품이다.

 

 영화의 내용을 잠깐 살펴보면. 태국 주재의 신문기자 난부 히로유키(에구치 요스케) 태국에서 일본 아이가 불법장기이식 수술을 받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취재하면서, 그것이 살아 있는 아이의 심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회 복지센터에 일하게 오토와 케이코(미야자키 아오이) 불법 장기매매 뿐만 아니라 소아 성학대 인신매매가 행해지는 태국의 현실을 알게 된다. 영화의 내용도 조금은 충격적이지만, 일본 영화인데 주로 태국에서 촬영되어 색다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영화의 원작이 양석일의 소설이기는 하지만, 소설 또한 취재를 통해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10 전의 소설이기에 지금 사실과 다를 있다고 생각할 있겠지만, 사카모토 준지 감독은 영화를 준비하면서 동남아시아 아이들을 돈으로 사서 학대하는 사람들이 정보를 교환하는 인터넷사이트를 보고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소설이 나오고 10년이 지난 지금에 여전히 이러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본과 태국의 먼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동남아시아에서 일어나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특히 성매매 문제) 우리 또한 일본과 같은 가해 국가 중에 하나라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무거운 마음으로 봐야 작품이다.

 

 

 인간의 잔혹성 때문인지 멸종 동물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거기에 온난화로 인한 생태계 교란으로 그런 현상은 점점 가속되고 있다. 그래서 인지 멸종 동물을 위해서 전지구적 움직임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같다. 최근에 카타르 도하에서 진행된 "유엔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무역에 관한 협약"같은 것도 그런 일환의 하나다. 하지만, 회의의 결과는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회의에서 가장 주목 받은 것은 "대서양 참다랑어" 수출금지 안건 이었다. 최대 소비국인 일본의 결사저지에 막힘으로써 안건은 부결되어 버렸다. 지금 국제적으로는 참다랑어가 주목받고 있지만, 다큐멘터리 영화 " 코브 - 슬픈 돌고래의 진실" 일본에서 일어나는 잔혹한 돌고래 살상을 보여준다.

 

 일본의 작은 어촌 마을인 다이지에서는 매년 2 3천마리의 야생 돌고래가 포획된다. 그곳은 세면이 바다로 막혀있고 깎아지는 절벽과 날카로운 철조망으로 외부인의 접근을 철저하게 막고 있다. 전설적인 돌고래 조련사 였던 ' 오배리' 중심으로 구성된 팀은 다이지에 잠입해 참혹한 현장을 촬영하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바로 영화다. 영화를 보면서 상업적 포경이 금지된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없지 않냐고 "부인"하고 "외면" 있지만,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혼획(우연히 다른 그물에 걸려 어획되는 ) 가장 많은 나라이고 많은 상업적 고래 고기집이 영업하는 나라라고 한다.

 

 이러한 사실로 문제를 삼기에는 부족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혼획되어 잡힌 고래의 상당수는 의도적인 포경에 의해 잡힌 것으로 보여 진다고 하니 일본의 다이지 만큼은 잔혹하지 않겠지만, 도덕적 책임을 벗어날 없는 상황이다. 최근에 방한 영화의 감독 루이 시호요스는 " 영화 내용은 일본 뿐만 아니라 미국, 한국, 중국의 문제"라고 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영화에 관심을 가져야  이유를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이 아닐까?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로 대치 중인 우리와 북한. 이런 대치 속에서 많은 희생자들이 나오고 있다. 전쟁으로 생사조차 알지 못하는 많은 이산가족은 물론이고, 폐쇄적인 강압적인 통치 안에서 굶주리고 억압 받고 있는 북한 주민들이다. 굶주림과 억압을 견디다 못해 북한을 탈출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는 사람들. 사람들의 현실은 지금 우리가 쉽게 느끼거나 없다. 가끔 시사 프로그램에서 보도되기는 했지만, 그들이 탈출하는 여정에 대한 자세한 사정은 말로만 알려질 직접적으로 수가 없었다.

 

 차인표가 오랜만에 영화의 주연으로 나왔던 영화 "크로싱" 탈북민의 절절한 사연과 탈북 과정을 진실하게 그려냄으로써 많은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영화는 아버지 용수, 어머니 용화 그리고 아들 준이로 구성된 가족의 이야기다. 용화가 갑자기 폐결핵에 걸리자, 간단한 약조차 구할 없는 북한의 형편 때문에 용수는 중국으로 넘어가서 돈을 벌이를 시작한다. 하지만, 불법노동현장이 발각되면서 용수는 돈을 모두 잃어버리고 쫓기게 된다. 어느 인터뷰만 해주면 돈을 받을 있다는 이야기에 인터뷰에 응하지만, 그것이 가족과 헤어지는 길이 된다. 용수가 떠난 용화가 죽음을 맞이하고 준이는 무작정 아버지를 찾아 나서게 된다.

 

 실제로 탈북 경로를 담기 위해서 중국, 몽골에서 해외촬영까지 작품이다. 최대한 사실성을 부각시킨 작품으로 북한 주민들의 현실과 탈북자들의 현실을 같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지금 우리도 경제적 위기로 인해서 자신의 삶도 급급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탈북자와 새터민 사람들에 대해서 "부인"하고 "외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직면했을 많은 사람들은 북한주민들에 대한 연민과 동정을 보내고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하지만, 최근에 우리사회에서 일어나는 새터민들에 대한 차별은 다른 문제가 되고 있다. 중국동포보다 못사는 나라인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로 왕따 당하는 새터민 출신의 아이들은 우리 안에 다른 "부인" "외면"기제를 보여주는 거울이지 않을까?

2010년 3월 20일 토요일

은빛연어의 미투데이 - 2010년 3월 20일

이 글은 은빛연어님의 2010년 3월 20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화해와 통합을 위한 여정. 영화 "인빅터스"를 보고.....

 

 개인적으로 스포츠를 정치에 이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국민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려는 저열한 정치행위 중에 하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선수 개개인의 피와 그리고 선수를 도와주는 가족과 코치 그리고 기타 여러 사람의 결과물이 합쳐져서 나온 경기의 결과를 가지고 마치 그것을 자신의 지도력 때문이라고 선전해대는 그런 인간들을 보노라면 역겹기 그지 없다. 특히 mb같은 인간이 그렇다. 이런 인간들은 국가대항 스포츠 경기를 가지고 국민들의 화합을 이끌어 있다는 저열한 생각을 한다.

 

 모든 국민이 마음으로 뭉쳐서 국가대표를 응원하는 것을 보면 그것으로 사회 전반에 화합이 나타날 있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분명 스포츠 경쟁으로 많은 국민들이 화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그런 화합된 모습을 다른 분야나 사회적 통합으로 이루어 가기 위해서 중요한 것을 망각한 것이다. 손에 권력을 다른 손에 돈을 폭압적인 권력자가 외치는 화합이란 다름 아닌 굴복을 뜻하는데, 인간으로써 가지는 존엄성 앞에서 누가 쉽게 굴복을 것인가?

 

 그런 인간은 입으로 화합을 이야기하면서도 굴복을 강요하거나 아니면, 화합이라는 뜻을 모르고 함부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건 바로 경쟁이라는 신앙적 사상에 매몰 인간이 보여주는 단적인 특징이다. 상대를 이겨 눌러서 자신의 말에 복종하게 만드는 그것이 경쟁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화합이라는 말로 미화했다고 한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화합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스포츠를 활용한 저열한 화합을 추구하는 권력에 따르지 않는다. 국가 대항전이 끝나면 그것으로 끝인 것이다. 동력이 사회적 통합이나 화합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만델라는 영화를 통해서 스포츠를 통한 화합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사실 남아공의 경우 흑백으로 불리는 인종 갈등이 극에 다른 곳이다. 지금도 인종 분쟁이 발생하고 있는 곳이기는 하지만, 만델라가 당선되기 전후의 상황을 보면 우리나라의 맹목적인 지역감정 이상의 잔인함을 보여준다. 영화에서는 초반부에 만델라가 차가 지나갈 한쪽 편의 흑인 아이들은 환호하고 반대편의 백인 아이들은 신기하다는 듯이 보며 코치에게 만델라는 테러리스트라는 말을 듣는 장면을 통해 남아공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정치적 상황 속에서 당선된 만델라의 시대적 과제는 이렇게 분열된 사회의 통합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아무리 만델라가 화해의 제스처를 한다고 해도 쉽사리 화해와 통합이라는 시대적 정신은 쉽게 구현되지 않는다. 반대로 자신을 지지했던 흑인들은 지난 핍박을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강해서 오히려 대결적 상황은 확대될 상황이 크다. 여기서 만델라는 스포츠를 통한 방법을 선택하게 되고 영화는 과정을 찬찬히 보여준다. 물론 여기까지는 mb 저열한 독재자들이 추구하는 수법과 동일하다. 결국 만델라도 스포츠를 활용한 화해와 통합이라는 잘못된 방법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만델라는 실천하는 지식인이었다. 그는 스포츠만으로 국민들을 현혹시키는 술수를 쓰지 않았다. 영화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스포츠를 통한 화해와 통합이 아니라, 만델라가 화해와 통합을 위해 스포츠 외에도 어떤 일들을 하느냐다. 만델라는 Mb처럼 온갖 권력과 돈을 마구 휘두르면서 화해와 통합을 외치지 않았다. 만델라는 스스로 자신의 권위나 권력을 낮추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측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호원에 백인을 포함시킨 것이나, 흑인들에게는 백인 억압의 상징인 럭비팀의 유니폼이나 이름을 함부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남겨둬 백인들의 반감을 희석시킨다. 결국 만델라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기 보다는 내려놓는 방법으로 화해와 통합이라는 시대적 화두에 대해서 응답한 것이다.

 

  그래서 영화에서 보여지는 만델라의 진정성과 럭비를 통한 화해와 화합의 과정은 진정성을 보여진다. 뿐만 아니라, 흑백 경호원들의 융화과정은 남아공의 갈등과 화해과정의 축소판으로 보여줌으로써 뜬구름 잡는 것과 같을 있는 화해와 통합이라는 것을 쉽게 보여준다. 스포츠를 이용한 정치 행위에 반감을 가진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 만델라의 정치적 선택과 행위를 공감하고 이해할 있게 만들어준다. 영화는 스포츠를 통한 화해와 통합이 아니라, 원수를 사랑한 만델라의 관용적인 정신을 주목해서 봐야만 스포츠를 활용한 정치에 대해서 이해할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원수를 사랑한 만델라라는 이미지를 럭비팀 주장이 만델라가 수감되었던 교도소를 체험하는 과정을 통해서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결국 영화는 스포츠를 통한 화해와 통합의 과정이 아니라 권력을 내려놓고 원수를 용서와 관용으로 대한 인간이 보여준 여정을 스포츠를 통해서 보여진 것일 뿐이다. 영화 전체적으로 본다면, 특정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럭비라는 스포츠, 만델라, 경호원 같은 다양한 이야기를 한번에 담으려고 해서 그런지 그다지 매력을 풍기지 않는 같다.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이름에는 미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모자란 작품이라고 함부로 말할 없는 평범한 작품인 같다.

 

fun과 지루함 사이의 청춘들. 책 "연꽃도시"를 읽고.

 

 "한한"이란 중국 작가를 알게 것은 우연히 집어 들고 읽은 "삼중문"이라는 소설 때문이다. 신문이나 다른 정보 루트를 통해서 작가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냥 중국 소설을 읽고 싶다는 생각에 이것 저것 고르다 표지 날개 쪽에 나와있는 저자의 이력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서 읽었다. 중국에서 뜨고 있는 신세대 작가라나. 소설 한편으로 중국에서 대단한 부를 획득했을 뿐만 아니라, 문화 아이콘으로써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라고 하니. 우리나라 작가로 비교해 보자면 "귀여니"정도 될까? 작가 모두 10 시절에 발표한 소설이 인기를 끌고 대중들의 환호를 받았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귀여니" "한한" 비교하면, 실제로는 먹을지도 모르겠다. 평론가들과 대중의 고른 지지를 받는 "한한" 10 소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귀여니" 비교했으니. "귀여니" 작품은 소녀적 감수성과 판타지만을 충족시켜준다면,  "한한" "삼중문" 같은 경우는 중국의 교육시스템을 비판함을 물론이고, 학창시절 감수성 예민한 10대들의 고민과 생활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거기에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책의 곳곳에 펼쳐 보이는 중국 고전 문구와 재기 넘치는 해석은 "한한"이라는 작가가 평범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있다. "삼중문" 그의 데뷔작이라서 그런지 조금은 정제되지 못하고 투박한 문체들이 조금 눈에 띄는데, 속의 10 주인공의 방황과 고민들과 어우러져 오히려 신선한 느낌을 주기까지 한다.

 

 "삼중문" 작가의 10 시절 현실과 고민에 대해서 작품이라면, "연꽃도시" 20대의 현실과 고민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시나브로 흘러가는 시간이라는 흐름에 작가는 자기가 있는 시간 속의 현실을 작품을 그려내고 있는 같다. 어쩌면 당연한 거겠지만, 자기 자신이 속한 세대의 이야기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많이 고민하고 이야기 있는 것이 세대의 당사자들이니까. 그래서 작품에 중국의 20대들은 작품에 공감해 열광하고, "한한"이라는 인물을 하나의 아이콘을 만들어 버렸는지 모르겠다.

 

 "연꽃도시" 중국 20대들의 무기력함과 방황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소설 속에서 풍겨지는 느낌이 참묘하다. 어딘 모르게 유쾌한 같으면서도 우울함이 동시에 풍긴다. 만약 책이 목적을 잃고 방황하는 청춘들의 고뇌가 담겨있다면 어두운 책이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우울할지언정 무겁지 않게 자신 세대의 고민과 상황을 이야기한다. 풍요로운 세대답게 생존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인생의 행복에 대해서 고민하는 세대이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행복이라는 말로 책에 나오는 청춘들을 이야기하기에는 부적합한 같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fun이요, 그들이 견디지 못하는 것은 지루함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속에 일어나는 행위들은 인생의 커다란 목표가 아니라 fun위한 것들일 뿐이다.

 

  책은 조지 오웰이 "1984" 통해서 미래 사회가 감시와 통제의 "빅브라더"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구 민주사회가 춤추며 꿈길 속을 헤매다 스스로 망각 속으로 빠져들어 나란히 속박당하게 되리라고 확신했던 헉슬리가 생각한 사회를 보여준다. 정신이 황폐화되면서 즐거움에만 매몰된 인류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Fun에만 매몰하는 소설 속의 20대들은 바로 그런 존재들의 모습인 것이다. 정신의 황폐화, 즐거움의 추구. 모든 것은 결국에 지독한 물신주의와 탐욕이 결합해 만들어낸 정신의 황폐화 결과이자 과정인 것이다. 결과들이 이제 20대를 중심으로 아래로 동시에 확산되고 있으며, 한한은 그런 사회의 모습과 인간상을 "연꽃도시"라는 가상의 도시를 통해서 정말 매력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너무나 지금의 현실을 통찰한 한한의 소설은 우울함과 재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것 또한 fun 추구하는 20대의 성향을 반영한 작가의 뛰어난 계산된 결과로 보인다. 그렇다면 책은 우울함과 재미에 빠져 희망은 없는가? 개인적으로 책은 그렇게 희망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소설에 마지막까지 주요인물들은 그렇게 변화를 일으키거나 성찰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전반에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그들이 쉽게 성찰하거나 변할 요소가 없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한은 인간의 생존본능이 어떤 것인가를 마지막에 보여준다. 목적이 없어도,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도 살기 위해서 행동에 나서는 그런 인간의 모습을. 어쩌면 그게 인간에게 가장 희망적인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연꽃도시 - 8점
한한 지음, 박명애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