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2일 목요일

인간, 잔혹한 차별의식에 대한 영화. 영화 "디스트릭트 9"을 보고

 

 "죽음의 밥상"이라는 책에서 저자 피터 싱어는 동물과 가축을 잔혹하게 다루는 우리를 보고 종차별주의자라고 말한다. 생존을 위해서 육식을 하는 것은 어쩔 없으나, 과정에서 일어나는 비이성적이고 잔인한 행위는 인간이 아닌 종에 대해서 전혀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공장식 가축산업에서 생산성을 중시하다 보니, 가축이 누려야 깨끗한 환경이나 행복권 같은 것들이 완전히 무시되고, 그런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가축들이 저질의 육류가 되면서 다시 인간에게 피해가 돌아오는 악순환을 일으킨다.

 

  우리나라를 뒤흔들었던 광우병이나, 구제역 그리고 조류독감까지 모든 것이 인간이 다른 종들을 차별하면서 만들어낸 결과물인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이런 차별의식은 다른 종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같은 종에도 무수히 발생한다. 여전히 세계의 곳곳에서는 흑백갈등을 비롯한 인종갈등이 상존하고 있고, 평화와 관용을 주창하는 종교 사이에서도 차별로 인한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영화 "디스트릭트 9" 인간의 잔혹한 차별의식을 멋지게 그려낸 작품이다. SF영화라는 형식을 띠고 있기는 하지만, 다큐 형식으로 만들어져, 누군가가 만들어낸 가상의 판타지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감을 극대화되어 있다. 거기에 남아공이라는 배경을 생각해보고 영화를 본다면, 영화의 명확한 주제의식은 쉽게 느낄 있을 뿐만 아니라, 매력적으로 그리고 있는 감독의 놀라운 연출력에 감탄하게 된다.

 

 영화는 인간과 외계인의 갈등을 보여주지만, 사실 인간의 잔혹한 차별의식을 보여준다.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특정한 구역에 그들을 가둬놓고 무자비한 폭력으로 때로는 생명까지 위협한다. 이면에서는 온갖 생체실험의 도구로 외계인을 이용하기도 한다. 거기에 붙은 다양한 명분들이 붙기는 하지만, 결국에 인간의 이익을 위한 이기심 때문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앞에서 이야기한 전세계적 문제를 제외하고도 우리사회 내부에 있는 다양한 인간의 이기심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주변에 있는 아파트라고 해도 집값의 차이로 서로 갈등한다. 가난한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보낼 없다며 갈등하기도 하고, 어떤 지역에서는 인문계고가 아니라 실업계고라는 이유로 아이들을 무슨 범죄자 취급하며 학교의 이전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안의 구별 짓기를 통해서 나와 아닌 이들을 무자비하게 차별한다. 마치 그것이 당연하다는 이유로.

 

 그렇게 보면 많은 인간들은 종차별주의자나 차별주의자가 아니라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며 탐욕적인 동물이다. 그렇게 자신의 탐욕을 갈구하며 자신의 탐욕에 미치는 다른 인간에 대해서 무시하거나 차별해 버린다. 우호적이었다가도 상대가 자신과 다른 차이가 발생한다면 다시 차별해 버린다. 영화 속에서 "비커스" 그런 존재가 되는데, 처음에는 자신이 직접 차별을 일삼다가도 나중에 자신도 인간에게 차별 받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영화는 인간의 가지고 있는 잔혹한 차별의식의 피해자가 언젠가 당신이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비커스" 영화의 종반부까지 자신은 외계인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외계인 "크리스토퍼" 도와주는 이유는 자신의 변화를 원래대로 회복시켜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유 때문에 협력하고 나중에는 갈등하기도 한다. "비커스" 자신의 목적 하나만을 추구한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은 우리 인간의 내부에 남아 있는 선함을 보여준다. 비커스는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외계인 "크리스토퍼" 돕게 된다.

 

  영화는 분명하게 주제의식과 결말을 보여준다. 인간의 잔혹한 차별의식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차별의식의 대상이 언젠가 우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지독한 이기심으로 무장한 인간은 어떤 종보다 무서운 존재가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무수히 많은 인간의 잔혹함을 본다. 그러나 우리는 많이 침묵하거나 방관한다. 피해의 당사자가 자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영화 마지막에 보여준 "비커스" 선함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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