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 19일 금요일

청소년에게 하고픈 말....

 

 웬지 모르게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많다. 내가 방면에 일하는 것도 아니고, 아직 학부모도 아닌데 청소년 문제에 관한 기사나 이슈가 있으면 관심이 간다. 두발자유를 외치며 거리에 촛불을 들고 나왔던 그들이 자랑스럽고, 체벌반대를 외치며 당당하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외치던 그들이 사랑스럽다. 하나의 인격체로써 자신들의 자아와 정체성을 찾아가려는 그들의 노력에 자부심이 생긴다. 언제나 그들의 올바른 소리를 들으면 즐겁다. 그들이 학생이라는 이유로 불합리하게 받는 억압에 대해서 저항하는 것을 힘이 되어주지 못하고 마음으로만 그들을 응원하는 것이  미안하다. 내가 그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는지는 내가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들에 대한 나의 외사랑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나 그들의 당당하고 올바른 목소리에 힘이 되어주고 싶다.


 누가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고 했던가? "공부" 사전적 의미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이라는데… 학생이 배워야 것은 학문과 기술뿐이란 말인지… 학생의 본분을 다르게 정의한다. "배움"이라고…. 학문과 기술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학생은 자신에 대해서도 배우고 타인에 대해서도 배우고, 세상에 대해서도 배우는 나이라고….. 짜여진 교과에서 짜여진 수업시간에 짜여진 규정대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에 열린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고 배워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짜여진 교과서, 짜여진 수업과 규정은 학생을 공부시킬지는 몰라도 배움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영어 단어를 많이 알고 적게 알고의 차이나 미분 적분 식이나 알까? 자신에 대한 성찰이나 고민없이, 세상에 대한 성찰이나 고민없이, 타인에 대한 성찰이나 고민없이 학교에서 배운다는 것은 어른들이 만들어낸 세상에 사육 당하는 것이다. 사회의 시스템 때문에 비록 자신의 삶에 대해서 주체적이기는 힘들지 몰라도 정신마저 주체적이지 못한 것은 좁은 닭장에서 시간되면 모이나 먹고 알이나 낳는 사육 당하는 닭이랑 차이가 뭘까? 사회가 학생들을 청소년들을 입시라는 치열한 경쟁으로 내몰았기에 이런 기류에 편승해 사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는 정신마저 세뇌 당한 학생들을 보면서 정신마저 사육하는 세상과 사육 당한 청소년들에 분노가 솟는다. 그리고 사육 당하는 청소년들, 앞에 보이는 그들의 미래에 대해 측은한 감정이 든다. 잘나가던 판사인 조관행이란 작자나 비리에 물러났던 군산의 판사들이 그들의 모습이 아닐까…. 소위 앨리트 층의 비리에 관대한 쓰레기 세상에 길들여진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세상의 불합리에 세상의 불의에 행동하고 싸우지는 못하더라도 세상의 불합리에 세상의 불의에 분노하고 바꾸려 고민하는 것이 학생들의 청소년들의 특권이라 생각한다. 니체가 말하는 "낙타의 정신(자기를 버리고 타인이나 전통적 가치에 철저히 복종하는)" 정신에 깃든 학생과 청소년이 늘어만 가는 같아서 한숨만 나온다. "어린아이의 정신(정신과 육체가 참된 자기로서 통합된)" 아니더라도 "사자의 정신(낙타의 정신에 철저히 복종하는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해 철저히 부정하는)" 그들에게 깃들었으면…….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만큼 완벽한 말이 있으랴… 세상에 대해서 세상의 불합리를 바꾸려는 야망을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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