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 4일 수요일

경제인 특별 사면 기사 vs 워싱턴 타임즈 김승연 기사

 썩어 빠진 경경인들은 정의를 모른다. 윤리경영과 준법경영을 한다고 우기지만 도대체 몇 몇 기업이 윤리경영과 준법경영을 해왔는지 모르겠다. 실정법을 교묘히 피해가면서 상속을 하고, 카르텔을 형성하면서 자기들의 이익을 극대화 해왔던 그들의 형태가 아직도 지속적으로 진행 중인데 그들이 말하는 윤리경영과 준법경영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정부의 비호아래 독과점적 시장 지배력을 행사하면서 국민의 고혈과 땀을 짜먹으며 커왔던 기업과 그 경영인들이 과연 특별 사면을 요구할 수 있단말인가?

 그들의 잘못은 모두 잘못된 관행과 실정법 탓으로만 돌려버리고 진심어린 반성이나 사과는 전혀없다. 자신들의 성과는 자신들의 것이요 자신들의 잘못은 모두 남 때문이다. 사법처리까지 받았던 두산의 박용성은 자숙의 기간도 없이 보란듯이 경영일선에 복귀한다. 연예인의 사생활의 문제나 사채광고에 출연한다는 이유로 죽일듯한 비난을 퍼부어대는 사람들도 쓰레기들의 귀환에는 관대하다. 오히려 경제상황과 기업의 운명을 운운하는 저질스러운 협박과 거짓말 앞에서 침묵하거나 동조한다. 쓰레기가 경영해야 기업이 잘돌아간다는 집단사고와 최면으로 인해 돌아오는 기업의 단합과 횡포는 어찌보면 우리가 만든것이다. 범죄자가 죄값을 치루지도 않은 상황에서 돈앞에 굴복하는 사법의 정의를 보면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당연하게 인식하는 썩어빠진 노예근성의 발현 앞에서 우리사회의 정의는 돈이 되어 버린지도 오래다. 조그만 절도죄를 저지를 사람을 보면서 편견어린 시선으로 그들을 대하면서 몇 억씩 해쳐먹은 쓰레기들에게 관대한 모순은 누가 만든것인가?

 쓰레기들이 국가발전을 위해 기여하는 것은 사회정의를 우선 세우는 것이다. 쓰레기가 만들어낸 공해의 경제가 아니라 사회정의 아래서 공정한 경쟁과 꿈을 그리고 희망을 펼치고 만들어 갈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그들이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사면되어서는 안되고 죄값을 모두 치뤄야 한다. 불법이 통하지 않음을, 불법의 댓가가 엄정함을, 사회의 정의가 살아있음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인식하고 몸으로 느끼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사회에 가장 필요한 국가발전의 과제다. 법과 사회 정의를 위해서 경제5단체는 닥치고 제대로 된 윤리경영과 준법경을 펼치는 것이 국가발전에 이바지 하는 것이다.

 한국의 부패지수에 가장 이바지하는 것이 개개 공무원의 부패가 아니라 무분별한 특별사면의 결과라는 사실을 아는가? 오늘 경제인 사면 기사와 함께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를 보면 우리 사회의 불공정함에 대해서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례적 실형선고"라는 말로 권력과 돈 앞에 약했던 우리 사회의 정의를 단적으로 보여주지 않던가?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