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14일 월요일

우리에게 사회적 자본이 필요한 이유. 책 "나 홀로 볼링"을 읽고.

 

 각개약진 공화국과 좀비의 탄생

 

 강준만 교수는 한국사회의 특징을 "각개약진 공화국"이란 말로 표현했다. 자세히 설명하면, "공적 영역과 공인에 대한 불신이 워낙 강해 사회적 문제조차 혼자 또는 가족 단위로 돌파하려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국사회에는 모든 분야에서 각개약진 성향이 나타나는 것은 아닌 같다.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 파업이라도 할라치면 기업이나 정부의 반대를 위한 반대, "경제가 어려워 진다. 귀족 노조의 파업이다." 마녀사냥 헛소리를 마구잡이로 신뢰하며 불타는 애국심으로 노동자들의 기본권 행사에 대해서 비난을 퍼붓는다.

 

 한국민은 공적 영역과 공인에 대한 불신이 워낙 강하다는데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기업과 정부를 향해서 그렇게 신뢰를 보내면서 자신들의 동료들을 억압하는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런 비난의 기저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기에 "각개약진"이라는 특성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일까? 노동자들이 서로 연대하기 위해서 만든 노조라는 조직이 자신들의 각개약진 성향에 맞지 않아서? 어짜피 각개약진하는 마당에 누군가 연대를 하던 말던 무슨 상관이라고.

 

 아니면 노조라는 연대를 통해서 자신들의 권리를 찾아가는 노동자들을 보고 배가 아파서? 이게 중요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보통 노조의 힘이 강한 곳은 대기업에 고용된 노조이고, 그들의 연봉 또한 일반 노동자에 비해서 높은 편이다. 하지만, 그들의 연봉이 과연 귀족이라고 불릴 정도로 높은가? 사실 그들의 연봉이 과장된 측면이 많다. 사측과 정부가 퍼트리는 거짓정보를 같은 이익을 추구하는 쓰레기 언론이 가세하면서 부풀려진 사실이라는 것이다. 보통 사측은 퍼트리는 평균연봉이라는 것도 실제로 노동자들이 받는 연봉이 아니라 인건비를 직원수로 나눈 것이다.(참고 나무님 블로그)

 

 결국, 강준만 교수가 말한 한국사회의 특징인 "각개약진" 노동자의 권리 앞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때만큼은 그들이 불신해야 대상에 대해서 신뢰를 보내고, 그들이 신뢰를 보내야 대상에 대해서는 저주에 가까운 불신을 보낸다. 그렇게 배가 아프면 그들도 노조를 조직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찾아서 나서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는 발상의 전환은 하지 못하고, 정부와 기업이 퍼트리는 거짓정보를 맹신하며 그들이 원하는 생각 없는 좀비가 되어간다.

 

 착취 당하는 좀비

 

  좀비들은 성공을 돈으로 계산하고, 많이 버는 것이 최고의 삶의 목표다. 그래서 도덕적 결함은 그냥 묻어버리고 벌어준다면 좋다고 살랑 살랑 꼬리를 흔든다. 그런데 벌어준다고 하는 인간이 추구하는 정책이나 목표는 좀비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와 정권 딴나라당이 추구하는 것은 전경련을 비롯한 경제 5단체, 강남으로 대표되는 집단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것이다. 정권의 출범에서 시작해서 정책의 지침서가 것도 전경련에서 발행한 백서라는 것을 우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경제 5단체들의 구성원이 누구인고, 강남으로 대표되는 집단의 특징이 무엇인지 알아둔다면 쉽게 우리가 좀비이고, 그들에게 어떻게 조종당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가 있다.

 

 예를 들면, 종부세가 세금폭탄이라고 하지만 2% 국민들 외에는 아무 상관 없는 세금이다. 오히려 세금이 있음으로써 재정이 약한 지방자체 단체들은 많은 재정을 확보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수도권에 있지 않는 지방의 식민지인들에게 경제적 관점으로 봤을 , 더욱 이익이 되는 정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에서 종부세의 반대여론이 높았다는 기이한 현상을 보면, 경제적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참정권을 행사한 이들의 논리에 심각한 모순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 세종시의 경우도 그렇다. 기본적인 발상은 거대한 블랙홀이 되어버렸을 정도로 비대해진 수도권으로 인해서 지방은 점점 낙후되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출발했다. 뿐만 아니라, 계속 비대해지는 수도권에 인구가 몰림으로써 혼잡도와 오염도가 증가하고 그럼으로써 오히려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이유가 포함되어 지역균형발전 정책이 추진되고, 세종시 계획이 만들어 것이다.

 

 그런데 지방 식민지를 식민지화 시키고 황폐화 시키는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서 충청민을 제외한 다른 지방에서는 반발이 심하지 않다. 오히려 어떤 곳은 수정안을 지지하는 여론을 높을 정도니 얼마나 좀비 같은가?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당연한 아니냐고? 국가를 얼마나 생각했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지. 당신들은 공적 영역과 공인에 대해서 불신해 각개약진하는 좀비들이 아니던가? 자신의 이익도 생각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국가의 이익을 생각한다는 것도 우습다.

 

 좀비와 사회적 자본

 

 지방은 식민지이고, 가지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좀비로 변해버린 현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이 무엇인지도 생각하지 못하고, 소수의 권력자와 재력가들에게 끌려 다니는 것일까? " 홀로 볼링" 아주 재미있는 분석으로 이유를 설명해 준다. 사회적 자본이라는 관점에서 사회적 네트워크와 유대의 붕괴를 설명하는데,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논문이 처음 발표되었을 , 클린턴 대통령이 직접 저자를 백악관에 불러서 이야기를 들었다고 정도니 처음 발표 되었을 때부터도 상당히 설득력을 갖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 홀로 볼링" 저자의 논문을 보강해서 후에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그럼 우선 사회적 자본이라는게 무엇인지 알아야 되지 않을까. 사회적 자본이란 "개인들 사이의 연계, 그리고 이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네트워크, 호혜성과 신뢰의 규범" 가리키는 용어를 말한다. 사회적 자본은 포괄적 호혜성을 바탕으로, 사회에 정직과 신뢰라는 가치를 확신시킨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사회적 자본이란게 미국 사회에서 점점 붕괴되고 있다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많은 전문가들이 이유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 홀로 볼링"이라는 제목은 사회적 자본이 붕괴되어 가면서, 개인화 되어가는 미국인의 삶의 단편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책은 비단 미국의 모습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모습도 보여준다. 그렇게 좀비가 우리들은 스스로가 사회적 자본을 붕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 5단체와 노조

 

 사실 노조보다 사악한 사회적 자본은 소위 말하는 경제 5단체다. 그들은 기업의 이익을 대표하는 집단들로 파워가 날로 커져서 지금은 정치에도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한다. Mb정권의 통치백서가 전경련에서 발행한 백서라는 사실을 보더라도 mb정권의 출현과 함께 이미 경제5단체들은 막강한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튼튼한 기반을 다졌다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각개약진 하는 노동자들을 향해서 없는 공격을 붙는다. 정부와 경제 5단체의 거짓말과 선동 그리고 같이 죽자는 도둑놈 심보로 노조라는 사회적 자본을 스스로 망가뜨린다. 결국, 기득권층의 사회적 자본은 튼튼하고 강력한 반면에 가난한 노동자나 서민들의 사회적 자본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크루그먼은 노조의 붕괴를 분배정책의 붕괴로까지 설명할 정도인 것을 보면, 노조라는 사회적 자본이 가지는 커다란 성격과 의미에도 불구하고 좀비들을 스스로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결국 스스로 좀비들은 자신의 이익을 부정해 버린다. 이상한 거시적 담론으로 국가의 이익이라는 대먹지도 않은 논리와 주장을 따름으로써 결국 스스로가 하류를 지향하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점점 하류화 되면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점점 종속되어간다. 정부를 신뢰하지 않아서 각개약진하는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거시적인 경제적 결정이나 정책에 대해서는 정부와 경제 5단체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노예가 되어가는 것이다. "노예제는 사회적 자본을 무너뜨리는 시스템"으로 우리는 스스로가 사회적 자본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결국 경제 양극화는 물론 사회적 자본의 양극화도 야기하면서, 우리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그리고 사회적 자본이라는 관점에서도 모두 가지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사회적 자본과 88만원 세대 그리고 44만원 세대

 

 그래도 아직까지는 이런 붕괴의 현상이 기성세대에게는 크지 않다. 그들은 그나마 기존에 가지고 있는 다른 사회적 자본이나 경제적 기득권을 여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여전히 경제5단체와 mb 사탕발림에 일말의 기대나 희망을 가지고 견디고 견딜만하다. 하지만,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는 젊은 세대들은 전혀 그런 사회적 자본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그들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가장 약한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정권과 경제단체들이 가장 기본적으로 연봉을 삭감한 것도 그들이 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그런 파괴적인 행위에 대해서 어떠한 저항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오히려, 직장이라도 구한 것이 어디냐는 자조적인 소리를 하면서 점점 현실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있는 공간이나 힘을 잃어버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우석훈 박사 같은 사람들은 그들이 명랑하기를 꿈꾸면서 사회적 자본을 건설을 제안했고, 당사자 운동을 제안했다. 20 스스로가 그들을 보호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당당하게 요구할 있는 그런 것이 필요하다는 시각에서 시작된 주장은 결국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적 자본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20대는 성인으로 자기결정권을 가진 하나의 인격체로 취급 받고 있고, 그들이 사회적 자본을 형성할 있는 능력이라도 있는 반면, 법의 사각지대라고 있는 10대들은 20대보다 44만원 세대라고 불리는 현실을 본다면, 착취의 수직화는 점점 강해지고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20대에서 사회적 자본으로 이런 폭력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사회적 구조는 고착화 밖에 없어 보인다.

 

 사회적 자본의 효과(경제와 정치)

 

 그럼 도대체 사회적 자본이 어떤 효과를 가지기에 사회적 자본, 사회적 자본이라고 반복해서 말하는 것일까? 책에서는 사회적 자본의 효과에 대해서 다양한 예들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경제와 정치적 관점에서 사회적 자본의 효과에 대해서 알아보면. 사회적 자본이 약한 지역에서는 정치의 무관심이 확산된다고 한다. 투표율의 저조, 권력 감시 기능의 약화, 권력의 독주, 민주주의 파괴, 정치 무관심과 혐오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한다. 결국 정치라는 것도 자기이익을 실현하는 도구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익 실현을 위한 정치적 반영의 길이 막히게 되어 버린다. 결국 사회적 자본이라는 것은 정치분야에서는 자기이익을 실현시키는 수단이요, 권력의 독주를 막으며 민주주의를 지키는 행위인 것이다. 사회적 자본이 약해진 지역에서는 이런 효과가 급속하게 줄어들었다.

 

 경제적으로 사회적 자본은 좋은 효과를 발휘한다. 흔히 경제는 경쟁을 통해서 많은 발전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회적 자본이 갖추어진 지역에서는 오히려 수득이 높았다고 한다. 경쟁이 아니라 사회적 자본을 바탕을 협동으로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 했을 뿐만 아니라, 효과도 마을 사람들에게 골고루 흘러가 마을 전체가 풍요로운 경제혜택을 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효과는 주거환경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되는 범죄가 감소하고, 주변환경도 쾌적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효과들로 각개약진하는 좀비들 보다 단단한 사회적 자본을 형성한 사람들이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보다 많은 이득을 얻는다는 것을 있다.

 

 사회적 자본의 효과(교육과 )

 

 사회적 자본은 교육에서도 효과를 발휘한다고 한다. 실제로도 PD수첩에서 취재해 보여줬던 작은 학교이야기들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있는 효과들이다. 자세히 설명하면, 사회적 자본이 튼튼한 학교에서는 학부모의 참여가 높으며, 후원금도 많아져 학교 환경 개선에 좋은 역할을 한다. 그러면서 학생의 비행이 줄어든다고 한다. 이런 학교들은 결국 학업성취도도 높은 편이고, 아이들의 학교 만족도 또한 높다. 특히 작은 학교에서 사회적 자본의 효과가 높다고 하는데, 작은 학교는 사람의 대면기회를 높이고, 책임 기회를 장려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PD수첩에 소개된 작은 학교들을 보면 이런 주장은 상당히 근거가 있으며 설득력도 높아 보인다. 결국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교육의 문제는 성적경쟁몰두와 촌지와 같은 비리, 학부모와 교사와 학생들 사이의 불신으로 인한 사회적 자본 붕괴의 단면이라고 수도 있겠다. 결국 우리가 교육을 개혁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사회적 자본의 회복 또는 강화가 아닐까?

 

 개인 삶의 측면에서 사회적 자본 또한 많은 영향을 발휘한다. 사회적 끈을 가진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경제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된 환경에 있는 사람은 빈곤할 경향이 높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들은 우리가 이미 경험적으로 충분히 있는 것들이다. 이런 경험이 나쁜 방향으로 작용하면서 학연과 지연 같은 것에 집착하는 사회현상을 충분히 있다. 일부러라도 사회적 끈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인간관계가 이해관계로만 얽히는 현상이 일어나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살문제에서 사회적 자본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살론을 에밀 뒤르캠은 "자살이란 구성원 통합을 예측하는 지표"라고 했다. 결국 우리 사회의 높은 자살률과 각개약진이라는 단어를 조합해 본다면 에밀 뒤르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을 반대로 생각하면 사회적 자본은 행복지표를 상승시킨다는 말도 된다.

 

 우리 사회와 사회적 자본

 

 점점 사회가 삭막해져 가고, 삶의 점점 빠듯해지는 상황에서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조금씩 극단주의적인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같다. 상대방에 대한 논리와 이유가 없는 분노를 맹목적으로 표출하는 집단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면서 묻지마 살인이나 범죄 같은 잔혹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고, 사회에 대한 민심은 점점 흉흉해지는 같다. 지난 정치심리학 분야의 연구들은 "공동체, 직업, 단체와 단절된 사람들은 극단주의를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 속한다." 보여준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가 사회적 자본을 포기함으로써 많은 문제에 자신을 던져 놓은 꼴이 것이다. 이제 우리는 토크빌의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협력 행위에 의해서 감정과 생각이 새로워지고, 마음이 넓어지며, 이해 능력이 계발된다.") 다시 생각해 필요가 있지 않을까.

 

 ps> 마지막의 번역자의 글을 통해서 사회적 자본에 비판적인 내용도 잠깐 소개하고 있다.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같은 사람들에게도 조금은 균형을 잡아줄 있는 정보, 사회적 자본에 대한 저자의 주장이 모두 옳거나 완벽하다는 것이 아니라는 정보를 역자는 제공해 조금은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도록 도움을 준다.

 

나 홀로 볼링 - 10점
로버트 D. 퍼트넘 지음, 정승현 옮김/페이퍼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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