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1일 금요일

전형적인 패턴의 한계를 가진 영화 하지만 장쯔이는 매력적인. 영화 "소피의 연애매뉴얼"을 보고

 

 "여자는 남편을 만나야 한다." 말은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가부장적 문화가 남아 있는 곳에서는 보편적인 말인가 보다. 영화의 초반부터 이런 대사를 "소피" 독백으로 읊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그런 말을 읊어대는 여성들을 보고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뛰어난 알파걸들이 남성들을 압도하는 세상이라고 해도 대다수의 많은 여성들은 다양한 차별 속에서 힘겨워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 현실 속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한계와 좌절감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잘난 남편을 만나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심정은 공감한다. 물론 그들이 느끼는 만큼은 같이 공감한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지만, 남녀 불평등을 없애기 위한 다양한 여성우대정책에 반발하는 찌질들과 언제든지 논리적 대결을 있을 정도로 공감한다.

 

  영화의 주인공인 소피는 그런 생각을 가진 전형적인 여성상을 나타낸다. 그렇다고 그녀의 주변인물들 또한 그렇게 모범적인 설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소피의 친구 2명이 서로 상반되는 여성상을 보여준다. 친구는 결혼에 필요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남편의 재력이라는 관점에서, 다른 친구는 능력 있고 자유로운 연애관을 소유하고 있지만  사랑에 대해서는 쿨한 성격의 친구로 설정되어 있다.

 

 소피는 친구의 중간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능력 있는 남자가 사랑과 행복의 전제조건이라는 생각에서는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그녀를 차버린 제프에게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도 행복의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소피가 사랑한 것은 스스로가 행복의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사랑한 것이지 제프라는 사람을 사랑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소피가 보여주는 실연의 슬픔은 영화 속에서 그렇게 가슴 아리지 않다. 제프를 향한 소피의 복수가 결국에는 사랑을 되찾기 위한 복수가 아니라 자신이 느낀 불행과 슬픔이라는 감정을 그대로 되돌려 주겠다는 한계를 보이는 것도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행복의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사랑한 소피의 한계와 같은 것이다.

 

 자아에 대한 명확한 인식 이전에 여성이라는 생물적 존재를 먼저 인식함으로써,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인식은 여성이라는 존재에 가려져 버린다. 그래서 소피와 같은 여성들은 자아를 통해서 찾아야 하는 행복을 누군가에게 의존해서 찾으려 한다. 그것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불리는 것들로 스스로가 만들어낸 인계철선과 같아서 진정한 사랑이 다가와도 조건에 벗어나면 쉽게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 또한 우리네 사랑의 모습이다. 영화 소피의 변화도 복잡하고 다양한 에피소드로 얽히게 되는데, 소피가 변화하게 되는 것은 그러한 조건들 보다 자신의 자아를 조금씩 찾아가기 때문이다. 결국에 소피가 보여주는 사랑은 전통적으로 여성 스스로를 억압하고 있는 가치관들을 하나하나 깨어 버리면서다.

 

 사실 이런 과정이나 주제는 이런 류의 영화의 전형성이랄까? 여성의 자아 찾기 그리고 진정한 사랑 찾기 같은. 그래서 영화가 주는 새로움이라는 것을 찾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식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소피역을 맡은 장쯔이의 매력적인 연기는 그런 식상함을 충분히 상쇄한다. 영화 속에서 소피의 다른 고든이라는 인물이 소피에게 "예의도 없고 천방지축이고 ~ 그런 당신을 사랑한다"(대사가 기억이 나지만)라는 대사가 공감이 정도로 장쯔이는 매력적으로 소피를 연기한다. 반면, 영화 소지섭의 모습은 기대 이하로 다가온다. 소지섭이 맡은 제프라는 인물이 우유부단한 바람둥이인데, 소지섭이 영화에 차지하는 역할이나 모습은 제프라는 역할만큼 우유부단하다. 꿔다 놓은 보리자루 같이 영화와 어울리지 못하는 같아 안타깝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