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10일 일요일

세상을 향한 다양한 시선을 위해 "박노자의 만감일기"

박노자의 만감일기 - 10점
박노자 지음/인물과사상사

 

 나는 '똘레랑스' 믿지 않는다. 많은 노동운동가와 좌파 정치인들이 경험했던 프랑스의 똘레랑스 문화를 찬양하면서 우리 사회의 반노조 성향을 비판하지만, 프랑스의 모습이 진정한 똘레랑스라고 믿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프랑스의 모습은 차별받았던 이민자들의 불만이 폭발한 소요사태였다고 생각한다. 겉으로는 똘레랑스라고 말하지만 내부에서 피부색깔로 서로를 구분 지어 차별하며, 프랑스 백인들만의 기득권과 특권을 지키려고 안달하는 모습이 바로 본질이다. 인권이 발달한 유럽에서는 강력한 법과 사회적 합의에 따라서 피부색에 따른 인종차별을 드러내고 수는 없을지 몰라도, 한계선을 넘지 않을 만큼의 지능적이고 비열한 술수로 차이를 차별로 표현한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무엇이 올바르고 무엇이 그른지를 알고 있더라도, 표현하는 과정에서는 감정이 우선시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박노자도 똘레랑스를 좋게만 보지 않는 듯하다. 그는 책에서 "화려한 똘레랑스의 저변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 대한 거의 무한한 불신, 공포,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자기중심적 무관심이다."라고 했다. 박노자의 말대로라면 타인에 대한 깊은 이해로 관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중심적 무관심이 관용으로 보인 것일 뿐이다. 점점 개인주의화 되어가는 우리사회도 똘레랑스가 널리 퍼질 사회가 날은 얼마 남지 않았나 보다. 우리사회의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많은 문제점으로 우리를 우민화 해왔듯이, 개인주의화도 나름의 단점이 있으니, 어떤 사회가 인간다운 사회일까?


 "한국전쟁은 통일전쟁이다"라는 발언으로 마녀사냥 당한 강정구 교수의 문제를 보면 우리 사회의 전근대성을 있었다. 한국이나 북한이라는 국가적 체계와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적 체계를 떠나서, 학자로써 중립적인 입장으로 객관적으로 한국전쟁을 본다면 분명히 한국전쟁은 통일 전쟁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다양한 관점이나 시선을 인정하지 않고 북한과 대치하는 관점에서 "통일전쟁"이라는 발언은 그를 사회의 적이나 암적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그럼 "통일전쟁"이라는 말보다 "침략전쟁"이라는 말이 중요한 이유는 뭘까? "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을 했는지 했는지 진위논란이 있는 이승복 사건 같은 반공사상의 고양시킬 것이 많이 필요하단 말인가. 이미 반공 사상에 대한 교육은 거의 사라져가고 남북화해와 교류라는 말로 대결로 인한 갈등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는 마당에 말이다. 하지만 우리사회의 많은 다수는 서로의 마음을 준비가 아직은 안되어 있다. 겉으로는 화해와 교류를 속으로는 상대를 침략자로 규정하고 칼날을 갈고 있으니. 물론 북한의 핵을 보면서 그들에 대한 적대감이나 위기의식을 가질 있을지 몰라도, 학자가 연구를 통해서 발표한 내용에 대해서 학문적 잣대가 아니라 법의 잣대와 여론몰이로 매장하는 것이 과연 정당할까?


 국기에 대한 맹세를 거부한 교사를 두고 온라인 토론을 적이 있다. 태극기가 국가라고 생각하는 맹목적인 애국주의자들을 보면서 불쌍한 생각이 앞선다. 2002 월드컵 당시에도 신성한 태극기를 패션으로 만들고 즐겼던 현상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생각난다. 많은 젊은이들에게 패션이나 즐거움의 도구가 되면서 때만큼 태극기가 대접받았던 적이 있었던가? 태극기에 국가가 강제로 의미를 부여한다고 해서 모두 그런 의미로 인식하고 신성시하는 것이 아니다. 강제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강요하는 것보다, 자발적으로 태극기에 의미를 부여하며 자기 것으로 만드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은가? 당시에 천조각에 불과한 것에 대해서 애국과 신성함을 누군가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고 했었다. 천조각이라는 말에 발끈하며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태극기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저 천조각일 뿐이다. 부모님이 나에게 이름을 붙여주시고, 다른 누군가가 나를 이름으로 부르기에 나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태극기에 이름과 의미를 붙여주기 전에는 분명 태극기도 천조각이었을 뿐이다. 천조각을 신성시 하던 하던 개인의 자유일 뿐인데 극우주의자들은 이분법적 시각으로 함부로 재단해 버린다. 뒤에 일본에서 기미가요를 제창할 일어서지 않았던 교사를 처벌했다는 뉴스가 들려올 때에 일본의 극우주의부활을 염려했으면서, 우리의 모습은 바로 보지 못할까? 글로벌 사회에서 국적을 마음대로 바꾸기도 하고, 나라 나라 옮겨가면서 사는데 태극기가 가지는 애국의 의미와 신성함을 강요할 있을까?


 지금까지는 박노자의 만감일기 중에서 내가 그와 쉽게 소통할 있었던 생각과 이야기, 그리고 생각들이다. 나도 처럼 사회적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박노자 만큼 많은 지식을 보유한 것도 아니고 뛰어난 솜씨와 논리를 가진 것도 아니라 중간에 포기했던 이야기들이다. 박노자의 글을 통해서 용기를 얻었는지 모르겠다. 만큼의 뛰어난 글은 아니지만, 사회에 대해서 과감 없이 말하는 모습이 나를 많이 자극한다.


 박노자가 세상을 보는 시선과 잣대 모두가 나와 같을 수는 없지만 "이런 시각도 있구나" 기발함이랄까? 또는 내가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이랄까? 처음에 거부감이 들었던 그의 시선도 이제는 점점 적응이 되어간다. 그가 풀어 놓은 많은 이야기들을 보면서 내가 과거에 가졌던 시선이 아직도 우리사회에 만연함에 더욱더 안타깝다. 국가에 충성하고 애국을 강요하는 국가주의가 바탕이 되어 만들어낸 충견들이 우리 사회는 너무 많은 까닭일 것이다. 많은 이들이 사회의 다양성을 외치며 강조하지만, 애국과 충성이라는 이름 앞에서 다양성이 차별의 대상이 되는 대한민국이, 언젠가는 변화하리라는 희망으로 박노자의 일기를 읽어본다.

박노자의 만감일기 상세보기
박노자 지음 | 인물과사상사 펴냄
인간 박노자의 사적이면서도 사회적인 통찰의 기록 <박노자의 만감일기>는 '인간' 박노자의 사적이고 사회적인 고백을 전해주는 책이다. 개인과 가정, 역사와 사회에 대한 사적이면서도 사회적인 궁금증과 생각을 풀어낸 인터넷 블로그 일기들을 모아 엮었다. 너무 민감하거나 너무 개인적이라서 그동안 신문, 학술지 등지에서는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박노자의 새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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