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16일 토요일

세상은 가만히 있어도 진보한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주노'라는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이것 저것 이야기를 했다. 이것 저것 이야기를 하다가 사회와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사회와 정치문제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나에 비해서, 친구는 역지사지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해가 간다면서 관용적인 태도로 세상을 대한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게 이유라는 것이 자신이 세상을 바꿀 위치도 힘도 없기 때문에 죄를 지었건 나쁜 일을 했건 이해한다고 한다. 처음에는 자신의 태도가 역지사지의 정신에 입각해서 대단히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는 처럼 이야기했지만, 친구가 말하는 이유를 보면 세상에 대한 무관심과 무기력이었다. 나의 욱하는 성격 때문에 목소리를 높여가면서 반박을 했지만, 끝까지 역지사지의 정신만을 강조한다. 자신이 대단히 관용적인 사람인 것으로 자기 위안을 삼으면서…… 그래서 내가 극단적으로 몰아붙이는 질문을 했다. 너의 어머니를 치고 뺑소니 하는 운전자를 보면서도 신고하지도 비판하지도 안겠냐며 몰아붙였다. 그랬더니 그냥 운명이란다. 내가 극단으로 몰아치는 때문에 화가 나서 그런 식으로 대답했을 수도 있겠지만, 관용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역지사지를 잘못 해석해서 자기 딜레마에 빠져 버린 것이다.

 

 관용과 역지사지의 기본자세는 타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이다. 친구는 가장 기본이 되어야 관심과 배려가 없는 상태에서 관용과 역지사지를 생각했다. 자신이 가진 무관심과 무력감에 대해서 절망하고 반성하기 보다 자기위안적인 방어기제를 찾으면서 갖다 붙인 것이 관용과 역지사지였다. 사회정의와 질서가 돈과 권력 앞에서 좌지우지되고, 좋지 않은 경제상황이 생존에 관한 고민까지 증대시키는 상황에서 지금의 20~30대에게는 사회나 정치에 대한 비판의식이 사치가 되어버린 상태의 무관심과 무력감의 표현과 같은 것일 것이다.

 

 나는 사회의 발전과 진보를 위해서 나에게 지금은 세상을 바꿀 힘이 없더라도 사회와 정치에 대한 비판 정신은 잃지 말아야 된다고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의 대답은 가관이었다. 세상은 가만히 있어도 진보한다고, 자신은 나중에 그런 흐름에 동참하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대학교육까지 받은 내가 사회의 부패와 비리가 보이지 않겠냐"며….... 부패한 사람이 처음부터 부패한 것도 아니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처음부터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다. 그들도 처음에는 부패와 비리에 대해서 비판적이다가 현실에 절망해서 순응해버린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말에 욱해서 논리적인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철학과 신념을 확고히 하지 못하고 시대에 휩쓸리는 사람들이 그렇게 변하기 때문에  "너도 나중에 부패 많이 저지르겠다" 했다. 그리고 진보라는 것이 사회와 정치에 대한 비판정신을 잃지 않은 소수의 힘에 의한 것이지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헤어졌다.

 

 과연 세상은 가만히 있어도 진보할까? 속에 나무도 그냥 두면 자란고, 아이도 태어나면 시간이 지나면 그냥 어른이 된다.  그냥 일어난 것은 진보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현상일 뿐이다. 진보는 그런 시간의 흐름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대처해서 삶의 주인 되어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냥 두는 나무보다 관리를 받으면 좋은 나무가 되고, 자신의 삶의 주체적인 아이와 수동적인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 주체적이 아이가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는 처럼.  자신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주인 되고, 자신의 사회에 대해서 주인이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고 바꾸는 것이 진보고 발전이다.

 

 우리 사회가 아직도 많은 병폐와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진보가 과연 그냥 되었던 것인가? 민주화를 위해 죽어간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역사적 성과를 보면서 그냥 있어도 세상은 진보한다고 말하는 자체는 현실을 부정하는 것임을 동시에 자신의 무관심과 무력감을 나타내는 말일 뿐이다.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이 없다면 세상은 이상 진보하지 않는다.

 

Ps> To My friend

 친구야 사람은 사람의 관심과 사랑을 먹으며 사는 것처럼 세상도 사람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단다. 무관심과 무기력에서 나온 관용과 역지사지가 아니라 관심과 배려에서 나온 관용과 역지사지를 생각해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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