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16일 일요일

정치적 담론에 길을 잃은 책 "글로벌리스트"

글로벌리스트 - 4점
김순덕 지음/민음사


 아무리
대선정국이라고 하지만 이런 쓰레기 책까지 나오다니 안타깝다. 조중동이 읊는 정치논리를 그대로 베껴쓰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얘기한다. 하긴 저자가 동아일보 편집부 부국장이니 이런 썩은 논리를 읊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만약에 그런 정치논리를 빼고 책을 작성했다면 어느 정도 괜찮은 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치논리에 매몰되어 저자는 자신이 조차도 뒤집어 버리는 우를 범한다. "대한민국 사용후기"에서 이어령 교수를 욕했던 J.스콧 버거슨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제야 조금씩 그의 의견에 수긍이 간다.  "디지로그"에서 보여줬던 그의 통찰력은 정치 앞에서는 그저 보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어령교수의 서문은 실망 자체다. 지금부터 저자의 엉뚱한 논리를 하나하나 비판해보겠다.

  책의 저자는 글로벌리제이션의 결핍이 테러를 불렀기 때문에 테러의 해결책이 글로벌리제이션의 확산이라고 한다. 웃기는 논리다. 라덴의 출신지가 어디던가? 중동국가 중에서 가장 글로벌한 국가 사우디다. 물론 나라가 아직도 왕정을 유지하고 있지만, 사우디는 다른 중동국가들에 비해서 상당히 글로벌한 국가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 국가의 귀족 출신인 라덴이 테러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라덴의 가문은 석유사업을 하는 부시가문과 밀약설이 있을 정도로 친미적이고 자유주의적이다. 그런 가문의 출신이 라덴이다. 라덴은 이미 14세에 영국의 옥스퍼드에서 연수를 했다. 당시 가깝게 지내던 여성의 스페인 일간지 코오레에서 인터뷰를 보면 “오사마 빈 라덴은 사춘기 시절 정치뿐만 아니라 특히 종교적 의무에 대해서도 특별한 관심이 없는 소년이었다”라고 했다. 당시에 이미 글로벌리스트가 되기 위한 교육과 환경을 제공받았고 생각도 종교원리주의자가 아니였음을 보여준다. 라덴이 글로벌리스트가 아니여서 테러를 일으켰는가? 아니다. 라데은 글로벌리제이션과정의 폭력과 불평등을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테러리스트가 되었다. 물론 나는 그를 옹호할 생각은 없다. 단지 과정을 제대로 보자는 뿐이다. 라덴은 그렇다 치고 다른 사람들은 그런가에 대해서 살펴보자. 평양감사도 자기가 싫으면 그만이다. 아무리 세계화가 시대의 흐름이라도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문화적 상황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힘을 앞세운 강제적인 세계화는 분명히 반발을 불러 일으킨다. 만약 당신의 집에 판매원이 당신에게 아주 유익한 제품이라며 사라고 강제한다면 당신은 그냥 말없이 사겠는가? 테러는 글로벌리제이션의 결핍 때문이 아니라 타문화와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은 폭력적인 글로벌리제이션의 확산 때문이다.


 저자는 미국이 퍼트린 민주주의의 바이러스가 미국을 공격하고 있다고 말한다. 웃기는 것은 저자가 뒤쪽에서 이라크 전쟁이 석유 때문이라는 것도 인정하고 있으면서도 미국이 민주주의 바이러스를 퍼트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얘기는 뒤에서 얘기한다. 여기서 민주주의의 바이러스만 얘기하고자 한다. 문제는 그것을 퍼트린 방식과 과정을 보지 않는가라고 묻고 싶다. 전쟁을 통해서 민주주의를 퍼트린 그들의 방식이 과연 옳은지에 대해서 말이다. 독재정권을 말살하기 위해서 독재자와 그들의 추종자만을 공격했는가? 아니다. 미국의 선택은 전쟁이었다. 전쟁의 가장 피해자는 아이들과 여자라는 것은 정확한 진실이다. 전쟁이라는 방식으로 없는 아이들과 여자가 피해를 받고 피해에 울분해서 미국을 향해 다시 공격의 화살을 들어 미국을 공격한다. 근본적인 책임은 누구인가? 미국이다. 독재자를 몰아내도록 국민들이 깨어나도록 만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군수사업과 결탁해서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저자는 주한미군철수라는 북한의 숙원을 성취시켜 주었다고 한다. 참으로 웃기는 과장이다. 평택의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이 몸으로 저지하고 했던 것이 미군의 평택기지가 아닌가? 철수할 미군이 평택에 기지를 짓다니 상당한 모순이 아닌가? 그리고 전시작전권환수에 대해서 주한 미군 사령관도 찬성했던 것이다. 그것 때문에 미군과의 관계가 나빠졌다는 결론은 일방적인 것이다. 미군이 있는 일본의 전시작전통제권은 일본 정부가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가지면 된다는 것인가?


 저자는 북한의 핵은 포기할 없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맞설 있는 수단이고 북한 주민들에게 주부심을 심어줘서 자부심으로 최악의 경제상황을 버티게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란다. 글로벌리제이션을 주장하는 사람이 이런 소리를 한다는 것은 상당히 모순이다. 글로벌사회에 편입하기 위해서 북한이 필요한 것은 글로벌 사회에 대한 신용 회복이다.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글로벌경제로의 편입조차 불가능한 상황에서 북한이 언제까지 핵을 안고 버틸까? 차리리 핵으로 글로벌 경제로 편입하기 위한 다양한 이득을 얻는 것이 북한의 지금 경제상황에서 좋은 선택이다. 체제전복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북한이 언제까지 주민을 굶주리게 하고 자부심만을 강요할 없는 상황이다. 금강산이 개방되었고 개성이 개방되었다. 있으면 평양이 개방되고 백두산이 우리 국민에게 개방된다. 과정에서 북한 주민들이 보고 듣는 것이 과연 북한정권이 강요하는 이데올리기 만일까? 많은 탈북자들이 한국에 오게 계기로 북한에 불고 있는 한류라고 한다. 학생들끼리 몰래 드라마를 돌려보면서 한국에 오기로 결심했다는 그들의 인터뷰는 개방이라는 흐름을 폭력으로 막을 없음을 보여준다. 아무리 독재정권이라고 해도 이른 상황에서 경제를 그대로 수가 없다. 불만족을 줄이기 위한 것은 빵을 주는 것이고 빵을 키우기 위해서는 글로벌 사회에 편입해야만 한다. 번째 전제조건은 폐기다. 당연히 북한은 핵을 폐기할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웃기는 것은 어떤 정부가 북한의 핵을 용인하고 북한의 편을 들어줬다고 한다. 어떤 정부가 북한의 핵을 용인하고 북한의 편을 들어줬단 말인가? 있지도 않은 사실을 혼자 날조하고 있다.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다른 것에 대해서 지독한 정치이념으로 문제의 본질 조차 자기 마음대로 흐리고 있다.


 저자는 세상에 민주주의를 전파하려는 네오콘의 이상주가 '나쁜 이상'인가 반문한다. 그래서 나는 반문한다. '이상이 좋으면 수단과 방법은 상관이 없는가?'라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범죄자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거짓말을 일삼아도 묵인하는 사회가 되지 않았는가?


 저자는 우리의 외교자주 노선에 대해서 비판한다. 미국은 북의 위협을 대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도 실은 중국을 견제할 목적으로 우리를 빼고 일본과 호주, 인도 심지어 몽골까지 협력하고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최근의 인도와 중국의 밀월관계를 본다면 이런 이야기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중국 또한 미국을 견재하기 위해서 인도를 활용하고 있는 형국이다. 결국은 국제사회의 외교나 힘의 논리는 누가 더 힘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일 뿐이다. 외교노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국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일 뿐이다.

 여기까지가 50 페이지 분량에 있는 내용을 반박한 것이다. 내용이 길어져서 나머지는 다음에 계속 비판해야 겠다. 능력이 모자라서 글을 쓰고 반박하는 것이 힘들다. 물론 책에 좋은 내용도 많이 있다. 특히 중국에 관한 이야기에는 상당한 근거와 객관성을 유지하면서도 냉철하다. 여성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부분에서는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 정확한 결론을 내려주고 있기도 하다. 여성성이 우대받는 사회이기는 하지만 여성이 중심에 서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만약 책이 경제관념에서의 좌우논쟁이었다면 상당히 괜찮을 책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책의 많은 부분이 정치관념에서의 좌우논쟁을 담고 있다. 웃기는 것은 좌우논쟁을 하는 좌라는 것이 글로벌적 시각에서는 같은 우라는 것이다. 정치적 담론 때문에 흑백논리와 좌우논리가 필요해서 나눠진 것일 뿐이지 같은 우끼리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회창과 이명박이 어느 쪽이 진짜 보수냐고 싸우는 처럼 말이다. 그래서 좌에 대해서 있지도 않은 것을 과장하거나 확대 해석해서 공격한다. 책은 너무 중용을 잃어버렸다. 있지도 않은 좌를 공격하기 위해서 말이다.


ps> 내 글을 보고 노빠니 좌파니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맘대로 생각하시라. 난 그저 중용을 지키며 문제를 보려고 노력했고 주관과 객관에 대해서 구분해서 비판하려고 했을 뿐이다. 나는 노빠도 좌파도 아니다. 만약 누군가 나를 노빠나 좌파로 규정한다면, 그것은 흑백논리에 빠진 사람들이 니편 내편 가르며 문제를 극단적으로 보기 때문일 뿐이다. 세상은 흑과 백이 아니다. 천연색의 세상에서 왜 정치와 경제를 흑과 백으로만 봐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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