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11일 화요일

점수와 시험의 노예들에게 고함

 

 다중지능이론의 주창자 하버드 대학교의 교수 "하워드 가드너" 따르면 사람에게는 음악지능, 신체운동지능, 자연탐구지능, 논리수학지능, 언어지능, 공간지능, 인간친화지능, 자기성찰지능의 8가지 지능이 있다고 한다. 생활하면서 사용하는 지능은 8가지 지능이 각자 따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적으로 작용함으로써 사람의 지적 능력이 발휘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도구로 많이 쓰는 IQ테스트나 시험은 8가지 2,언어지능과 논리수학지능만을 평가하는 도구다. 지금 사회를 시끄럽게 하고 있는 수능시험도 결국은 2개의 지능을 가지고 무한한 가능성과 다양성을 지닌 청소년들을 평가하는 도구일 뿐이다.

 

 수능등급이 발표가 1점으로 등급이 엇갈리고, 정확한 점수를 알지 못한 많은 수험생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등급제에 대한 반발이 일어나고, 수능성적에 비관한 창원의 3 쌍둥이 자매는 자살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점수 1점에 목을 메고, 사람을 시험으로 평가하고 줄을 세우고 편을 가르는 학벌사회의 병폐가 지속됨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나 고민은 없다. 그저 점수로 세우고 점수로 사람을 평가하는 방법을 강화하려는 노력뿐이다. 대학 자율화란 명목으로 대선 후보는 본고사를 자율화 하겠다고 하고, 자립형 사립학교의 설립을 통해서 성적지상주의와 학벌주의를 해소하겠다는 모순적인 공약을 제시한다. 경쟁력 강화라는 명목으로 논리수학지능과 언어지능만을 평가하려고 뿐이다. 그리고 우리사회 어른들은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의 다양한 가능성과 능력을 키울 있는 환경과 평가법을 개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냥 시험만을 강요할 뿐이다.

 

 모든 것을 시험으로 평가하는 것에 대해서 하워드 가드너는 사회가 세가지 편견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한다. 번째가 서구 지향주의다. 소크라테스 시대로부터 출현한 합리성, 논리성에 뿌리를 서구가치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합리성과 논리성만이 모른 가치문화에 뿌리를 것은 아니라고 한다. 번째는 시험 지향주의다. 이것은 손쉽게 테스트할 있는 인간의 능력이나 학습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을 의미한다. 하지만 대상이 테스트될 없는 것이면, 이상 주의를 기울일 가치가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고 한다. 번째는 최고 지향주의다. 이것은 주어진 문제를 가지 접근법으로 해결할 있다고 믿게 만든다고 한다. 가드너는 우리사회에 만연한 편견에 대해서 정확하게 지적한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우리가 잊어버리고 있는 교육의 결과 중에 하나인  '이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생각의 탄생"이란 책에서는 저자의 대학생시절 시험성적은 좋으나 응용력이 부족한 친구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실제로 그것을 '어떻게' 응용해야 할지 모른다는 이라고 말한다. 하워드 가드너도 같은 비슷한 의미로 " 개인이 교육을 통해 획득한 지식, 개념, 기술을 새로운 사례나 상황에 적용할 있을 '이해' 것이다. 추론하면 지식을 적용할 없거나 새로운 상황에 부적절한 지식을 사용하려 한다면 이해를 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했다. 우리 교육 문제 중에 하나는 시험으로 평가한 것에 대해서 다수의 학생들이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심지어 이해하지 못하면 '외워라' 강요하는 것이 우리의 교육이다. 그저 점수가 높아서 좋은 대학 간판만을 따면 되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그렇게 만들어지고 키워진 아이들이 대한민국의 인재라고 생각한다.

 

 세계화라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세계를 주름잡을 있는 인재를 찾는다. 하지만 점수와 주입식 교육으로 만들어진 아이들은 세계가 요구하는 인재가 아니다. 지금 많은 기업들이 선호하는 인재의 특성은 "창의성"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애플사의 CEO '스티브 잡스' 꼽으며, 한국에서도 2 잡스 같은 인재를 찾으려고 한다. 문제는 한국식 교육과 한국식 사고에 절어있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런 인재는 만들어 지지 않는다. 성적지상주의 학벌주의 그리고 성적으로 계층과 편을 가르는 사회에서는 창의성은 발현되지 않는다. 만약 창의성이 있는 인물이 나왔다고 해도 기존의 한국사회시스템에 반하는 인물이라면 그는 철저히 배격될 것은 보듯 뻔하다. 시험과 점수로만 사람을 평가하고 평가 받아왔던 우리들의 사람에 대한 평가기준으로는 창의적인 인재를 올바르게 평가할 없기 때문이다.

 

 얼마 시골의 음악선생님이 피아니스트 '임동창' 교육철학은 받을 만하다. "뉴스위크" 최신호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그는 모든 사람에게 천재성이 있다고 한다. 천재성을 발견하고 개발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음악교육을 강요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하고 싶을 스스로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펼칠 있도록 배려한다고 한다. 멀리서 피아니스트 임동창에게 음악을 배우러 오는 초등학생의 인터뷰가 눈길을 끈다. 수업을 강요하지 않아서 오히려 피아노 치는 것을 즐겁다고 한다. 전에는 학원에 가기 싫었지만, 지금은 피아노가 좋고 수업이 기다려진다고 한다. 기사에서 이목을 끄는 것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피아노를 배우는 제자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그냥 정해진 길을 따라서 학교를 나오고 직장을 다녔지만 가슴속 구석에는 답답했다고 한다.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서 그냥 피아노를 쳤고, 그림도 그렸고, 글도 썼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아직은 꿈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답답함은 사라졌고 인생이 즐겁다고 한다. 교육이란 즐거워야 하지 않을까? 점수로 시험으로 사람의 능력과 모든 것이 평가 받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창의성과 천재성을 개발할 있도록 말이다.

 

  청소년들에게 교육이란 꿈을 탐색하는 도구이고 자신의 천재성을 탐색하고 개발하는 도구이어야 함에도, 우리의 교육은 점수를 위한 교육이 되어 버렸다. Sky대학이 아니면 마치 사회에서 별볼일 없거나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버린다. 아니 사회가 강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꿈의 크기는 수능과 고등학교 점수가 좌우해 버린다. 높은 미래와 미래를 향해서 날개를 드높이 펼치기 보다는 점수의 크기만큼 움추릴 뿐이다. 하지만 점수에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는 이들도 많다. 이름없는 지방대의 과에서는 해외 명문대에 대학원에 많은 학생들을 진학시키고 있다.(강원도민신문기사 관련 서적) 우리는 스스로가 만들어버린 점수의 껍질 속에 자신을 가두어 버려고 결국에는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과 천재성을 발견하지 못해 스스로 좌절해버린 것이다.

 

 일본의 유명한 동시 통역사이자 작가인 요네하라 마리는 시험으로 사람을 평가하려는 현상을 짦은 글에 표현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애처롭다고…… "인간의 평가나 판단은 상대적이며 주관적이며 불안한 것이니 어떤 확실한 객관적인 기준은 없을까 하고 인류는 예로부터 머리를 써왔다. 예를 들어, 학업 성적이나 신장, 체중, 시력 모든 것을 수치화하려 든다. 하지만 인간은 수치화된 평가조차도 다른 사람 것과 비교하려 든다. 어쩔 없는 이런 인간의 습성에 응하고자 일본에서는 '편차치' 수식을 만들어냈다. 전국의 수험생을 동시에 시험한 성적을 비교하여 수치화하려는 어리석은 제도다. 피난처가 점점 없어지는 아이들이 애처롭기만 하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시험으로 사람을 평가 받기를 강요당하는 아이들이 애처롭기 보다는 당연한 과정으로 생각한다. 점수로 사람을 평가하고 계층마저 그리고 미래의 꿈마저 결정해 버리는 것이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그런 생각과 사상을 강요한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의 학생들마저 점수와 시험의 노예들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가드너는 "청소년들은 보다 폭넓은 삶의 영역과 관련 지어 자신을 정의하기 때문에 그들이 보다 광범위한 화제, 주제, 학습문제, 가치체계 등을 접하고 이러한 주제와 관련하여 생각해보도록 격려하는 것은 특히 중요한 일이다."라고 하는데, 우리는 점수를 따는 높은 점수를 받는 법에 대해서 열중해서 가르칠 뿐이다.  8개의 지능 중에서 단 2개 지능 만을 위한 것을......

 

 문득 오늘 들은 노래 가사가 너무 가슴에 닫는다. "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 날을 헤맬까. 왜 바꾸진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라는 서태지의 교실 이데아의 가사가. 시험과 점수로만 평가 받는 세상을 아직 바꾸지 못해서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부탁하고 싶다. 이런 세상을 남이 바꾸길 바라지만 말고 같이 바꾸도록 노력하자고 말이다. 각자 안의 천재성과 존재의 가치가 올바르게 개발되고 평가 받을 있는 사회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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