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19일 수요일

인간은 욕망으로만 사는가?

 

 인간은 과연 욕망으로만 사는가? 어떤 이는 경제학을 욕망의 학문이라고 한다. 물질에 대한 수요 욕망이 공급을 부르고, 때로는 공급이 물질에 대한 수요 욕망을 창출하기도 한다. 이렇게 발생한 경제 상황과 결과를 연구한 것이 경제학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그런 활동을 최대한으로 장려해야만 부가 창출되고 발전한다고 한다. 거기에 더해진 것이 생물학에서 발생한 다윈주의다. 약육강식의 정글법칙이 인간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효용이 떨어지고 가치가 없는 것은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도태되거나 삶의 질이 낮을 밖에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교육에 열성을 쏟는다. 아이가 경쟁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말이다. 하지만 경제학적 관점이라는 것이 경쟁만은 아닌데 경쟁만을 생각한다. 살기 위한 욕망의 실현 방법은 경쟁에서 이기는 밖에 없다는 처럼. 하지만 모두가 승자가 수가 없고, 모두가 패자가 수는 없다.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자식, 또는 나는 이길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경쟁에서 최선을 다한다.


 다시 경제학으로 돌아가서, 경제학 용어 중에 기회비용이라는 것이 있다. 경제학에서는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있다고 하는데, 선택을 함으로써 포기해야 무엇을 기회비용이라고 한다. 자체가 선택인 만큼 우리는 선택의 순간에 기회비용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경제학적 관점에서 봤을 올바른 선택은 기대이익이 기회비용보다 때를 의미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대이익만을 기회비용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않고 선택을 한다. 단지 기대이익이라는 욕망을 자양분 삼아서 경쟁에만 매달릴 뿐이다. 그래서 기회비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선택을 한다. 경쟁에서 위기기 위해서.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동물의 세계를 약육강식의 세계라고 말한다. 생존본능으로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만 하는 정글세계라고 말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붉은털원숭이 여섯 마리가 끈을 당겨 먹이가 나올 때마다 일곱 번째 원숭이에게 전기 충격을 주는 실험을 했는데, 고통스러워하는 동료를 원숭이 마리는 먹이가 극히 적지만 전기 충격이 없는 다른 끈을 향해 갔다. 다섯 번째 원숭이는 5, 여섯 번째 원숭이는 12 동안 아예 끈을 만지지도 않았다. 동료에게 전기 충격을 주느니 차라리 굶는 것을 선택했다고 한다. 생존본능에 충실한 동물의 세계이지만, 이타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동물도 이타적이고 사회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인간사회를 욕망을 실현시켜주기 위한 경쟁의 이데올로기의 장으로 보아야 하는지 의문이 밖에 없다.


 부모님, 조부모님 세대와 삶의 질을 비교했을 , 우리는 풍족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사는 집에만 있었던 TV 방마다 1대씩 있는 집도 있으며, 사는 집에만 있었던 전화기가 지금은 저마다의 손에 들려 있다. 또한 보릿고개라는 것은 교과서에만 있는 이야기가 되어 버렸을 정도로 먹을 것이 넘쳐나는 사회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저마다 지금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여긴다. 자신의 욕망에 모자란 것이다. 남들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욕망의 크기를 계속해서 키워나가며,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경쟁사회에서 많은 것을 가지 위해 열심히 달려갔고, 많은 것을 가졌지만, 행복은 쉽게 잡히지 않는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다보스 포럼에서 "빨리 가고 싶다면 혼자 가도 된다. 그러나 멀리 가고 싶다면 함께 가야 한다."라는 아프리카의 속담을 인용한 연설을 했다. 아프리카의 원조를 위한 국제 협력을 강조하기 위해서한 말이기는 하지만, 말을 뜯어보면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이유가 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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