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30일 토요일

어머니의 깊은 사랑에 대한 영화들.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월 4주

 

 삶이 힘들고 각박해지면, 가장 먼저 기대고 싶고 의지하고 싶은 사람은 바로 어머니다. 나의 잘못을 모두 감싸 안으며, 내가 무슨 일을 저질러도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포용할 있는 사람. 바로 우리들의 어머니다. 가까이 있으면 잔소리로 귀를 따갑게 귀찮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문득 어머니의 부재를 상상해 본다면, 절망감이나 슬픔은 이루 말할 없는 존재가 어미니다. 점점 각박해지는 때문인지 몰라도 요즘에는 어머니를 중심으로 만든 작품들이 눈에 띄는 같다. 소설 "엄마를 부탁해" 같은 작품은 이미 베스트 셀러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영화에서도 어머니를 소재로 작품들이 점점 눈에 띄는 같다.

 

 

 우선 작년에 개봉한 "애자" 눈에 띈다. 최강희와 김영애 배우의 모녀 연기가 너무 사실감 넘쳐서 진한 감동을 남기는 작품이다. 소설가가 되겠다고 변변한 돈벌이도 하지 못하는 없는 "애자" 그런 딸을 무뚝뚝하면서도 때론 과격하게 나무라면서 티격태격하는 엄마와의 일상이 매력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다 엄마가 암에 걸려서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 애자는 어머니의 소중함을 깨달아간다. 엄마의 존재 자체가 자신의 삶에서 얼마나 커다란 의지가 되었고, 중심이 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과정에서 엄마라는 존재의 품을 벗어나 자신의 삶을 개척해가는 애자의 모습이 영화 속에 그려진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에 끝까지 엄마를 보내려 하지 않는 애자의 모습은 진한 감동을 남기는 작품이다.

 

 이번 주에 개봉하는 2편의 영화는 예고편이나 광고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직접 내세우지는 않는다. 교도소 합창단을 소재로 "하모니", 김치 대결을 전면에 내세운 "식객 : 김치전쟁" 어머니와 관련 없는 같은 작품들이다. 하지만, 작품은 영화 내용 전체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작품 내내 풍겨낸다. 각각의 영화가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소재들이 전부 어머니의 사랑과 가치를 표현하기 위한 소재들인 것이다.

 

 

 영화 "하모니" 여성 교도소에서 만들어진 합창단을 소재로 하고 있다. 하지만 합창단의 구성원들을 하나 하나 뜯어 보면 전부 어머니라는 주제로 통한다. 교도소에서 이상 아이를 키울 없어 누군가에 아이를 입양 보내야만 하는 재소자. 남편의 불륜에 화가나서 남편과 내연녀를 살해한 사형수지만 그런 실수에 자녀들이 제대로 양육하지 못해서 언제나 자식들에게 미안한 사형수. 살아보고자 빌린 사채 때문에 징역을 살고 있는 딸의 엄마. 의붓아버지의 폭행에 참지 못해 우발적 살해를 저지르지만, 그런 자신을 보듬지 않았던 엄마를 증오하는 재소자 . 영화는 전부 어머니와 관련된 인물들로 구성되어 이야기를 이끈다. 무대 인사를 배우가 영화를 보면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고 싶어질 거라고 했는데, 바로 "하모니"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전해오는 잔잔한 여운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배우의 그대로다.

 

 영화 "식객 : 김치전쟁" 음식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다. 원작 만화가 워낙 탄탄해서, 영화는 물론 드라마로까지 만들어 정도인 작품이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영화 "식객" 드라마 "식객" 그리고 "식객:김치전쟁"에서 "성찬"이라는 인물을 맡은 사람이 전부 다르다. 3 전부 각자의 개성과 함께 저마다 만화 "성찬"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 누가 좋고 나쁘다는 것을 쉽게 말할 수가 없을 정도다.

 

 

 "식객 : 김치전쟁" 김치라는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다. 하지만, 김치라는 소재는 음식영화로써의 매력을 물씬 풍기기 위한 소재이자, 어머니의 사랑과 손맛을 제대로 느낄 있는 소재로써 쓰인 것이다. 영화는 성찬과 장은의 "춘양각" 사이에 두고 김치요리 대결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하지만, 성찬은 어머니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과 증오에 김치맛에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하고, 장은은 어머니와 자신의 관계를 단절시킨 것이 "춘양각"이라 생각하고 이를 없애려 한다. 영화는 김치 대결 보다는 대결의 과정을 통해서 성찬과 장은이 어머니의 높고 깊은 사랑을 하나 하나 알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김치라는 것은 바로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영화는 보여준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착한 영화. 영화 "하모니"를 보고

 

 윤제균 감독의 작품을 보면 영화가 착하다. 영화 인물들이 악의에 가득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캐릭터들이 찌질하게 나쁜 짓을 하긴 하지만, 안에 각자의 선함을 간직하고 있는 인물들로 묘사된다. 감독은 그가 악의에 행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관객들이 용서하고 이해할 만한 이유를 보여주면서 관객들의 공감을 일으킨다. 그래서 윤제균 감독의 영화를 보고 나면, 나쁜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조금씩 누그러뜨리게 된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유는 어쩔 없이 저럴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강대규 감독의 영화 "하모니" 윤제균 감독의 그런 점을 그대로 닮았다. 비록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모여있는 교도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영화 인물들이나 이야기는 조금도 악함을 보이지 않는다. 합창단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고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보여지는 것들은 그런 착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재소자들의 범죄행위에 대한 명확한 면제부를 부여한다. 주요 인물들이라고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그들의 잘못보다는 주변의 잘못에 의해 우발적으로 일어난 범죄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하기야 각본과 제작을 윤제균 감독이 했고, 강대규 감독 또한 윤제균 감독 밑에서 조감독을 했던 분이기에, 하모니에 윤제균 감독의 색깔이 풍기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무대가 교소도인 만큼 갈등관계로 묘사되기 쉬운 재소자와 교도관의 관계에서도 인간미가 넘쳐난다고 있다.  장영남이 맞은 방과장이라는 인물이 교도관으로써 자기역할에 충실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악의로 재소자들을 대하지 않는다. 단지 철저하게 교도관이라는 자신의 직책에 충실할 뿐이다. 이다희가 연기하고 있는 공나영이라는 인물이 재소자들과 많은 교감을 하는 인물로 묘사되는데, 오히려 이게 특이한 설정이지만, 너무나 착한 영화이기에 이런 설정이 거슬리는 것이 아니라 영화에 녹아 드는 같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재소자와 교도관들의 동화가 깊어진다. 서로의 직책과 위치는 허물어지고, 서로가 인간적인 관계로 접근한다.

 

  영화는 어머니를 축으로 가족의 화해를 다룬 가족영화라고 있다. 김윤진, 나문희, 정수영, 강예원 주요 배우들이 내면이나 외면적으로 보여지는 갈등 깊이에는 전부 어머니라는 상징적 존재가 자리잡고 있다. 자신의 아이를 이상 교도소에서 키울 없어 입양을 보내야 하는 김윤진이나, 남편의 불륜에 눈이 멀어 살인을 했지만 자식들에게 어머니 노릇을 하지 못해 후회하는 나문희나, 딸을 밖에 두고 그리워하는 정수영이나, 의부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우발적 살인을 하고 그로 인해서 어머니와 서먹해진 강예원은 모두 어머니라는 하나의 주제로 이어진다. 무대인사를 배우가 영화를 보고 어머니에게 전화하고 싶어질 거라고 이유가 바로 때문이다.

 

 어린 아들과 생이별하는 김윤진의 연기나 이야기도 가슴 아프지만, 특히 영화 속에서 영화 전체를 투영하는 어머니 상은 나문희가 보여준다. 대단한 배우답게, 나문희는 그 역할 정말 소화하고 있다. 슬퍼하는 김윤진을 보담아주는 어머니도 되었다가, 쉽사리 친어머니와 화해하지 못하는 강예원의 어머니도 되었다가, 합창단 단원 전체의 어머니도 되었다가, 마지막에는 교도소 전체에서 없어서는 되는 어머니의 모습도 보여준다. 그래서 인지 뻔한 설정과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마지막에 여운을 남긴다. 모든 배우들과 영화의 설정 그리고 이야기가 조화를 이루어서 그런 한계를 넘어 감동을 남기는 작품을 만들었지만, 나문희라는 배우가 영화에 없었다면 그런 감동을 남기는 것은 쉽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아쉽다면, 착한 영화를 표방했으면 끝까지 착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실적으로 아직 우리나라는 사형을 집행하고 있지 않은데, 영화는 갑작스럽게 사형집행이라는 카드를 끄집어 낸다. 마지막 합창의 모습 그리고 가족과의 화해와 만남이라는 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히 감동을 전해줬는데, 살인집행에 대한 부분은 너무 감정의 과잉을 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도가 아니라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싶었던 감독과 각본가의 생각인지도 모르겠지만…….

 

2010년 1월 28일 목요일

은빛연어의 미투데이 - 2010년 1월 27일

  •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남자와 사랑을 믿지 않는 여자의 이야기. 남자들을 위한 멜로 영화인데, 남자란 동물이 원래 이런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데……(me2movie 500일의 썸머) 2010-01-27 20:49:04
    500일의 썸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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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성애 영화인가 모성애 영화인가? 내가 알기로는 트랜스 젠더들은 육체적인 성 정체성과 정신적인 성 정체성의 부조화로 인해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주인공은 정신적인 성 정체성이 여성인데, 그럼 모성애 영화가 아닌가???(me2movie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 2010-01-27 20:51:30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
  • 정치인들이나 우리가 쉴 새 없이 해대는 “부인(deny)”에 대한 책. 부인의 방법과 내용을 보면, 전부 현실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라 재미있는데, 책이 너무 두껍고 좀 어렵다. ㅠ.ㅠ(me2book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 2010-01-27 20:55:49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
  • 영리한 설정을 잘 활용해서 진한 감동을 남기는 영화. 배우들의 연기가 좋은 하모니를 이룬다.(me2movie 하모니) 2010-01-27 20:57:04
    하모니
    하모니
  • 중국에서 불고 있는 애국주의 열풍을 그대로 담은 영화. 맘에 안든다. 그리고 또 한가지 여명과 판빙빙의 역활은 그게 뭐니…. 그래도 판빙빙은 중국 최고의 스타라는데. 여명은 영화 내내 제대로된 존재감이 없다가 마지막에 강렬한 포스 하나 남기고 끽~~~!(me2movie 8인: 최후의 결사단) 2010-01-27 21:00:17
    8인: 최후의 결사단
    8인: 최후의 결사단
  • 아무리 책 장사가 중요하지만, “성공”과 “아웃라이어” 이딴게 왜 붙니? 내가 미하이 칙센트 아자씨 책 몇권을 읽어봤지만, 성공이랑 아웃라이어에 대해서 언급한 것을 본적이 없다. 전부 행복이라는 담론으로 시작해서 몰입이라는 것도 행복으로 이끈다고 했는데 말이다.(me2book 몰입의 재발견(자기진화를 위한)) 2010-01-27 21:02:19
    몰입의 재발견(자기진화를 위한)
    몰입의 재발견(자기진화를 위한)
  • 이 책도 오독하는 인간들이 많은데, “만시간의 법칙”만 눈에 들어오나봐. 아웃 라이어는 만시간만 채운다고 되는게 아닌데 말이야. 아웃라이어는 노력+운빨이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하는데. 안철수 아자씨가 말했지, 성공은 노력과 운이 같이 했을 때 온다고, 그래서 겸손하라고.(me2book 아웃라이어) 2010-01-27 21:05:26
    아웃라이어
    아웃라이어
  • 이 책 읽어야봐야 할 정치인들이 많은데, 저기 파란 지붕집 머리 용량 2mb 밖에 되지 않으신 분도 꼭 읽어야 하는데… 사실 자신의 외모도 복제하고, 자신의 생활도 남을 복제하고, 자신의 꿈마저도 복제하는 우리 모두가 한 번 읽어봐야 하는 책이기도 하지만.(me2book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 2010-01-27 21:08:56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
  • 책 제목 멋지다. 조금만 정부를 비판해도 공권력을 동원하는 세상에 대해서 한마디 하는 듯한 제목. 그런데 회색지대를 주장하는 저자는 한쪽만 일방적으로 비판하지 않는다. 그래서 제대로 소통하지 못했던 나를 반성하면서 읽게된다.(me2book 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 2010-01-27 21:17:18
    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
    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
  • 내 수준은 중고생 수준인가? 중고생들을 위한 책이라는 “생태요괴전”은 낄낄거리면서 때로는 감탄하면서 읽었는데, 교사와 어른들을 위해서 쓴 책이라는 이 책은 쉽게 읽어도 길게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내가 뭘 읽었는지, 생각해봐도 떠오르지 않는다.(me2book 생태페다고지(생태경제학 시리즈2)) 2010-01-27 21:20:35
    생태페다고지(생태경제학 시리즈2)
    생태페다고지(생태경제학 시리즈2)

이 글은 은빛연어님의 2010년 1월 27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2010년 1월 17일 일요일

이번 주에 개봉하는 모성애를 다룬 영화들.

 

 지난 주에 개봉한 영화 "영서는 없다." " 로드" 부성애를 다룬 영화였다면, 이번 주에 개봉하는 2편의 영화 "웨딩드레스"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 모성애를 다루는 영화라고 생각된다. 트렌스젠더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 같은 경우는 부성애와 모성애 사이에 애매한 위치를 점하고 있지만, 트렌스젠더들은 정신적 정체성과 육체적 정체성의 심각한 괴리로 인해서 고통 받는 사람들인데, 정신적 정체성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모성애라는 관점으로 봐도 무방한 영화라고 생각된다.

 

 부성애 영화들은 아버지가 주인공으로 전면에 나서는 까닭에 상당히 거칠거나 액션이 강한 영화들이 많다. 얼마 전에 개봉했던 "부산"이라는 영화와 방금 언급했던 "용서는 없다" 봐도, 강한 남성주의 영화의 특징을 그대로 드러낸다. 반면 모성애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는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내용을 영화가 많다. 강한 모성애의 영화라고는 조디 포스터 주연의 "패닉룸"이라는 작품도 언뜻 생각나기는 하지만.

 

 이번 주에 개봉하는 "웨딩드레스"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 강한 모성애가 아니라 섬세한 모성애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편은 죽어가는 엄마라는 소재를 바탕으로 슬픈 결말이 예고되는 정통 드라마에 가깝고, 편은 독특한 소재를 바탕으로 좌충우돌 하는 다양한 상황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웃음이 예상되는 코메디 영화에 가깝다. 모성애에 관한 영화 중에서 장르가 다른 2편의 영화가 개봉하면서 선택권을 넓혔다고 생각되는데, 아바타에 돌풍에 밀리면서 상영관의 규모가 작거나 아니면 어떤 멀티플렉스 상영관에서는 상영하지 않기도 하는 것을 보니, 풍요 속에 빈곤인 같다.

 

 각각의 영화를 살펴보면. 영화 "웨딩드레스" 남편을 잃고, 딸과 둘이서 사는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고은의 이야기다. 가장의 역할까지 하다 보니, 엄마로써 딸에게 제대로 해준 것이 없다. 그런데 어느 시한부 선고를 받은 고은은 동안 딸에게 해주지 못하다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되고, 딸에게 발레를 배우라고 하기도 하고, 여행을 가지고 하며, 딸에게 많은 추억을 남기고자 하는 이야기다.

 

 "웨딩드레스" 소재나 설정에서부터 신파라는 냄새를 너무 풍긴다. 작년에 개봉했던, 영화 "애자" 생각난다고 해야 할까? 애자의 경우는 모녀관계의 설정에서 서로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고, 애자라는 캐릭터가 부각됨에 따라서 단순히 신파에 머무르지 않고, 모녀간의 관계라는 부분까지 섬세하게 다뤄서 보는 관객들이 모두 공감할 있었던 작품이었다고 생각된다. 반면 "웨딩드레스" 슬픈 설정이 너무 부각되는 듯한 느낌이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아서 깊이 수는 없지만, 예고나 시놉시스만을 봤을 영화에 대한 호감은 크지 않다.

 영화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 주연배우와 설정부터 관심을 유발하는 작품이다. 사진작가로 일이나 사랑에서도 순조로운 지현의 앞에 어느 9살짜리 아이 유빈이 나타난다. 아빠를 찾는다면서 지현의 집에 찾아온 아이가 말한 아빠의 이름은 자신과 같은 지현. 지현은 과거 자신이 남자였을 실수로 태어난 아이가 유빈임을 알게 되고, 친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유빈을 위해 남장을 하고 아빠 역할을 한다. 영화는 개봉 전부터 이나영이 트렌스젠더 역할로 출연한다고 관심을 끌었던 영화다. 설정의 독특함만으로도 아기자기한 웃음과 재미를 기대할 있는 작품이다.

 

 

2010년 1월 11일 월요일

자기책임성에 대한 교육환경과 철학이 필요하지 않을까?

 

 일본 여학생의 핀란드 유학기인 "핀란드 교육법"이라는 책을 보면, 동아시아적 교육 가치관과는 완전히 다른 대목이 나온다. 자신이 스테이를 하고 있는 아들 중에 명이 유급을 하게 되는데, 그것을 두고 핀란드의 교사, 부모, 그리고 학생의 인식이나 대처법을 보면 우리의 보편적 생각으로는 쉽게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우선 유급 당한 아이의 입장과 상황을 간단히 보면. 아이는 스포츠, 아이스 하키에는 재능이 있으나 공부에는 전혀 흥미가 없다. 뿐만 아니라 오토바이를 좋아하고 조금은 탈선도 하는 아이인데 어떤 경우에는 경찰에 잡히기도 정도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부모들이 아이에게 어떤 교육방침을 가지고 해야 되는지, 우리의 가치관에 맞춰진 행동들이 머리 속에 저절로 떠오른다. 그렇게 떠오르는 방법이라는 것들을 생각해보면, 체벌이라는 폭력에 대해서 관대하게 허용하고 인식하는 우리와 같은 정서에는 강하게 체벌을 해서라도 아이를 바른 길로 인도해야 되고, 유급하지 않도록 과외교사를 붙여야 한다는 대한국민 부모 대다수의 보편적인 방법들일 것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부모의 책임을 강조하고 자녀를 평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고, 하나의 소유물로 보는 문화에서 흔히 있는 것이다.

 

 그럼 핀란드의 부모들은 어떻게 했을까? 물론 경찰에게 잡힐 정도의 잘못에 대해서는 따끔하게 야단을 친다. 하지만,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너무 관대하다는 생각이 정도로 자유방임적 행동을 취한다. 핀란드의 경우 10대의 음주나 흡연에 대해서도 아주 관대한데, 교사와 학생이 같이 담배를 피기도 정도라면 우리네 정서로는 감당할 없는 문화적 충격이다. 나도 아직은 보수적인 유교문화의 영향이 많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흡연이나 음주에 대한 핀란드인들의 인식에는 강한 거부감이 든다.

 

 유급에 대해서는 핀란드의 철학은 엘리트주의와 학벌주의로 똘똘 뭉친 우리들이 전혀 용납하기 쉽지 않은 행동을 보인다. 우리의 부모들 같으면 아이의 유급을 쉽게 용납하지 못한다. 교사를 찾아가 사정을 해서라도 진급을 시키려고 한다. 그리고 정에 약한 우리의 교사들은 학업 성적이 낮다고 쉽게 유급을 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보통 우리나라에서 유급을 당하는 아이들은 결석이 너무 많아서 출석 일수를 채우지 못한 학생일 뿐이다.

 

 그런데 핀란드 교사들은 정확하게 성적이 모자라면 유급을 시킨다. 같은 또래에 비해서 1년이라도 늦어지면, 실패자로 생각하는 우리의 정서와는 다르게 핀란드의 교사들이나 부모들은 살에 어느 학년이어야 하고, 살에 대학에 진학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 아니라 기본적인 실력을 갖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오히려 실력을 갖추지 않고 위에 학년으로 진급하는 것을 나쁘게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유급 당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핀란드 국민들이 교육에 대해서 이런 일반적인 정서를 가지게 것일까? 개인주의 문화가 발달해서 그런지 몰라도, 핀란드는 자기 책임성을 아주 강조한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 하는 것도 모두 자기의 책임이고, 음주와 흡연을 하는 것도 자기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것들이 처벌이나 제재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같은 학교에는 교칙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외에도 학생을 마음대로 억압하는 도구들을 어른들 마음대로 만들어서 다양한 폭력과 인권의 침해를 정당화하지만, 핀란드에는 교칙이라는 것이 존재할 필요가 없게 된다.(핀란드의 학교에는 교칙이 없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교과서에 배웠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말을 직접 체험할 있는 시기가 20대의 성인이라면, 핀란드의 아이들은 10대부터 철저하게 자유를 누림과 동시에 책임성에 대한 것을 직접 배운다. 여기에 하나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책임이라는 명목으로 폭력적인 제도를 만들어서 온갖 직접적인 제재를 가하는 반면, 핀란드의 경우는 직접적엔 제재를 최소화하고 인생의 어느 순간 또는 기간 동안 순간의 방종으로 인한 책임을 강조한다. 간접적인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자유에 대한 책임을 가르치는데 효과가 없어 보일 정도로 너무나 방임적인 형태라고 있다. 우리의 정서로는 그것이 제대로 교육 철학인가라는 의문을 가질 밖에 없다. 그런데 핀란드란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아시다시피 교육 경쟁력이 세계1위인 나라요. 국가의 경쟁력도 세계 1~2위를 다투는 나라다. 비록 인구가 작아서 강대국이나 경제대국이 되지 못할 뿐이지, 최고의 선진국이다.

 

 "?"라는 의문을 가지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기초학력을 중요시하고 거기 미달하면 철저하게 유급시켜 버리는 시스템으로 기본적인 학력에 대한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시스템과 같은 핀란드 교육에 대한 자세한 분석한 책은 최근에 서점에 많기 때문에 자세한 이야기나 분석은 배제하고, "자기책임성"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 해보자. 방임에 가까운 "자기책임성"이라는 교육 철학이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 것일까?

 

 그것은 다르게 생각하면 자기 인생에 대한 책임은 자기가 지는 것이다. , 스스로가 자기 인생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고민할 기회를 제공할 밖에 없는 환경과 철학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책임성" 강조하는 문화에서는 10대부터 자신의 인생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것이다. 대학이라는 가지 목표만을 위해서 아이들을 몰아 붙이는 우리와는 달리 핀란드는 10대에서부터 자기 인생과 미래의 꿈에 대해서 생각할 있는 환경과 교육문화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핀란드의 아이들이 20대가 되어서 방황을 하지 않는 아니다. 방황의 방식이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우선 대학에 무조건 입학해야 된다는 식의 사회적 분위기나 압박감이 없기 때문인지 몰라도 그들은 우선 배낭을 매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거나 사회경험을 먼저 조금 쌓으면서 미래에 대해서 고민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인생에 대한 목표나 계획이 생기면 본격적으로 대학을 진학하거나 직업교육을 받는 식이다.

 

  , 핀란드의 부모나 사회는 우리나라의 부모들 처럼 어떻게 하면 부나 권력을 얻을 있는지에 대해서 인생과 미래의 꿈을 고민하라고 몰아붙이지 않는다. 핀란드 부모들의 아이들이 인생을 살면서 평생을 즐길 있는 일을 찾는데 많은 배려를 한다. 그래서 무조건 진급하는 것보다 유급을 해서라도 즐길 있는 일을 찾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논어의 옹야편에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라는 공자 말씀이 있는데, 말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고 있는 유교문화권의 우리보다 전혀 유교문화권에 있지 않은 핀란드에서 이런 문화가 발전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그런 차이 때문인지, 핀란드의 아이들이 자기 인생에 대해서도 아주 주도적인 반면, 우리의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삶에 주도적이지 못하고 수동적이다. 남자의 경우 20 초반에 군대라는 문제가 있어서 군대 가기 전까지는 인생에 대한 제대로 계획조차 세우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문제는 10대부터 인생에 대해서 고민하고 방황했어야 아이들이 20대가 넘어서 방황을 많이 한다. 떠밀리듯 적성도 생각해보지 않고, 주변에 떠밀려 들어간 과가 자신과 맞지 않아서 전과를 하거나 다시 대입을 준비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20대에 비로서 자신의 인생에 고민하고 방황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고 고민하는 사람은 자신은 자기자신의 인생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이라도 하는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사회에 만들어진 시스템에 순응해 버린다. 그것이 자신의 인생에 필요한지에 대한 명확한 답조차 없으면서 스펙 경쟁에 열중한다. 아니면, 안정적인 것이 최고라는 믿음으로 공무원 시험에 인생을 쏟아 붙는다. 그것은 자기의 인생에 대한 것이 되지 못하고, 생존에 대한 것이 되어 버린다. 치열한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런데 그렇게 살아가는 인생은 행복하지 않다. 생존을 위한 인생을 살다 보니, 세상의 맞춰진 삶을 살게 되고, 자기의 삶과 인생이 아니라 강요된 삶을 사는 같다. 그래서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고, 살아야 이유를 잃어 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으로 자신의 인생을 버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게 된다. 이것이 나이와 계층에 상관없이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세계 최고인 이유 중에 하는 것이다. 결국, 자기 인생에 대해서 10대에서부터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20대가 되어서도 인생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은 자기 인생에 대해서 주도의식이 부족하고 더한 경우에는 책임에 대한 인식도 미약하다.

 

 제대로 인격체로써 아이들이 자라 있도록 필요한 것은 자기인생에 대한 책임성을 이젠 강조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든 아이들을 속박할지 고민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자유를 누리면서 책임감을 가질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스스로가 자기 인생에 대해서 고민할 있는 자유를 줌과 동시에, 아이들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사회에 나올 꿈을 실현할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시스템과 사회적 구조를 갖출 필요가 있다. 최근에 시사주간지를 보니 많은 학교들이 상위 10~20% 학생들만을 위해 모든 학교의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Mb 만들어낸 최악의 경쟁교육시스템으로 아이들을 점점 몰아 넣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많은 아이들이 스트레스로 인해서 죽음을 선택해도, 해마다 많은 성인들이 경쟁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서 죽음을 선택해도 우리는 여전히 경쟁을 최고의 덕목으로 경쟁을 강요한다. 강요된 경쟁이 누군가의 인생이고 삶이 있을까? 우리는 계속 아이들에게 억압을 강요하고 경쟁의 수렁으로만 몰아 넣는 것일까?

 

 ps> 원래 중국의 신세대 작가 한한의 "연꽃도시" 리뷰를 쓰려고 했었다. 책에서는 중국의 20 무기력함과 방황 그리고 속물주의를 묘사하고 있다. 책에 묘사된 중국 20대의 무기력함과 방황과 속물주의 등이 우리의 20대들과 별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원인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리뷰를 쓰려고 했었다. 쓰려고 하는데 문득 핀란드의 교육 철학과 가치와 우리의 교육 철학과 가치에 대한 차이가 떠오르고, 중에서 자기책임성에 대한 명확한 차이가 생각났다. 10대는 자기 인생에 대해서 고민하고 방황하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입시에만 매달린 우리의 아이들, 그리고 20대가 되어서 방황을 많이 하고 했던 우리의 아이들과  나의 기억들이 겹쳤다.(나는 지금도  여전히 방황하는 인간이지만…..) 그러다 보니 "연꽃도시" 대한 리뷰는 완전히 삼천포로 빠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