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11일 수요일

흉악범의 사형 집행보다 우선 되어야 할 것.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이 억울하게 죽어간 고인들의 유가족이라면 이해하겠지만, 3자들이 너무 감정이입이 되어 이성을 잃고 그저 분노만을 표출하기 바쁘다. 범죄인의 얼굴 공개가 실익이 전혀 없음에도 자신들의 호기심만을 충족 시키고 분노를 해소할 대상을 차기 위해서 얼굴공개에 찬성하더니, 이제는 10여년 동안 집행되지 않음으로써 국제적으로 잠정적 사형 폐지국이라는 지위를 얻은 대한민국의 인권 수준을 후퇴시키기 위한 감정 표출에 열중한다. 딴나라 당이야 원래부터 포플리즘의 대명사인 정당이고,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인권을 쉽사리 짓밟은 뇌수준의 집단이라 그렇다 쳐도,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서 우리들의 수준을 딴나라당의 수준에까지 맞춰야 하는가?

 

 진정으로 분노해야 것은 도심 가운데서 6명이란 고귀한 목숨을 앗아간 사태에 대해서 공권력이 전혀 책임지지 않은 것이고, 문제를 색깔 논쟁을 일삼는 쓰레기 같은 딴나라당의 국개의원들과 공권력이 아닌가? 과잉 집행된 공권력에 의한 불상사에 대한 분노는 뒤로 , 평생 세상 빛을 없는 사형수들을 향해서 분노를 쏟아서야 되겠는가? 분노하지 않아도, 앞에서 단죄될 인간과, 분노해도 법을 이리저리 피해갈 인간들 중에 어느 인간에 분노하고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하는가?

 

  뿐이랴, 성추행 사건이 발생한 민노총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어떠한가? 언론 때문에 문제가 커졌다고 생각하는 저열한 인식을 가진, 썩을 때로 썩어 버린 민노총 지도부의 수준에 대해서야 충분히 비난하고 비판 받아야 함은 당연하지만, 국민의 일꾼이라는 인간들은 성추행을 하던 탈세를 하던, 그런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분노하기는 커녕 털어서 먼지 나는 사람 있냐며 능력이 중요하다고 발광하는 쓰레기들을 보라. 민노총과 그들의 차이기 무엇이길래 한쪽은 엄청난 비난 속에서 반성과 개혁을 외치고 있고, 다른 한쪽은 그저 자신을 길을 걸어갈 뿐이다.

 

 My way 가는 인간들의 수준이란. 겉으로는 선진화니 선진국 타령을 하면서 속으로는 자신들의 잇속 챙기기 뿐인데도 말이다. 미국의 보건장관으로 지명됐던 대슐은 949.69달러의 탈세만으로 사퇴를 했는데, 2mb 용량을 가진 양반이나 그가 지명한 탈세꾼들은 그저 몰랐다. 세금 내겠다가 끝이다. 잘못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는 전혀 없고, 이제라도 돈을 내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저열한 수준의 인식 밖에 없다. 도둑질하다 잡혀놓고 돈내면 되는거 아니냐고 큰소리치는 도둑놈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러면서 2mb "많은 사람들이 미국 정치를 보라는데, 말하는 사람이 미국 수준으로 갔으면 좋겠다."라는 막말을 날리신다. 자신의 수준은 퍽이나 높아서 정도인가?

 

 진정으로 분노해야 대상에 대해서는 분노하지 못하면서, 차가운 이성으로 접근해야 문제에 대해서는 이성을 상실한 분노를 표출하는 저열함이란. 권력과 앞에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자신보다 힘없고 빽없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당당하게 큰소리 치는 노예근성에 찌든 자신을 제대로 보라. 결국에 그런 노예근성들 때문에 유치하고 수준 낮은 정치꾼들이 리더라는 자리를 꾀차고 당당하게 큰소리치게 만든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정책이나 법들은 제대로 만들어지지도 못하고 통과되지도 못한다. 그로 인해 벼랑 끝으로 몰린 사람들은 자살을 택하거나, 용산 사태와 같은 극단적인 방법의 투쟁을 택할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커다란 사건 사고가 터진 다음에 진정한 반성에 나온 올바른 사후 대책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오늘 뉴스에 나온 재개발관련 대책 또한 미봉책에 그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딴나라당과 2mb 무리배 집단이 용산사태가 발생했을 , 앵무새처럼 말하던 재발방지 대책이라는 것이 가리고 아웅하는 수준일 뿐이다. 그래서 이번 연쇄살인 사건에 대한 광분적인 분노와 분풀이로 사형을 시킨다고 한들, 2 유영철, 2 강호순이 나온단 말인가? 일시적 분풀이로 끝나는 사형이라는 것을 가지고 연쇄살인과 같은 강력 범죄에 대한 대책이 없음을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혹자는 사형을 시키면 범죄예방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유엔에서 실시한 1998년과 2000 조사에서 "사형제도가 종신형과 같이 위협도가 떨어진다고 간주되는 다른 형벌에 비해 보다 살인 억제력을 가진다는 가설을 수용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자세이다."(Roger Hood, The Death Penalty: A Worldwide Perspective, Oxford University Press, third edition, 2002)라고 결론을 내렸다. 결국에 그것은 근거가 빈약한 주장일 뿐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같은 보고서에는 "통계수치들이 일관되게 말해주는 것은, 사형제도에 대한 의존도를 줄인다 하더라도 급작스럽고 심각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라며, 사형제를 폐지한다고 해도 범죄율에는 변화가 없다는 결론을 내고 있다.

 

 그런데, 진정으로 우리가 집중해야 문제는 사형을 시키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흉악범죄를 어떻게 하면 예방하고 줄일 있냐는 것이다. 사회가 삭막하고 각박해지는 만큼 이런 범죄의 발생 가능성은 언제나 상존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회현실과 문제를 올바로 인식하고 바꾸려는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범죄자 개인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올바른 것이냐에 대한 생각부터 시작해야 되는 것이다.

 

 사형제가 존재하고 최근까지 집행을 일본을 경우를 보라. 2008 7 도쿄 아키하바라 거리에서 일어난 무차별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런 무차별 살인이 10 동안 67차례 발생했고 최근에 빈도가 늘었다는 것이다. 이런 사건의 원인을 비정규직, 학력지상주의, 빈부 격차, 낙오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 사회 부적응 같은 것으로 보고 있는데, 문제는 우니 나라에도 이런 문제가 상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녁 운동을 하던 여학생이 괴한 무차별적인 흉기난동에 자리에서 죽고, 동사무소에 들어온 괴한이 무차별적으로 휘두른 흉기에 공무원이 사망한 사건들이 최근에 발생한 묻지마 살인 사건들이다.

 

 강호순의 단순히 살인을 즐기는 사이코패스일 뿐이라고 취급하고 본질적으로 저런 무차별 살인과 다르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강호순 이전에 유형철 같은 희대의 연쇄 살인마들은 사회에 대한 불만을 살인으로 해소 했던 인물들이다. 결국에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하지 않는다면, 사회 불만을 표출하는 무차별 살인은 물론이고 연쇄 살인, 그리고 강호순 같이 살인을 즐기는 사이코패스들의 출현을 방치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사이코패스인지를 테스트나 하고 앉아 있는 것이 우리들의 수준이고, 범죄 예방대책과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에 대한 성찰보다 사형집행을 시켜야 한다고 여론 몰이나 하고 있는 딴나당의 수준이 바로 우리들의 정치 수준이다. 그런 수준 낮은 행태에서 벗어나 진지한 문제의 고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젠 노예근성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의 문제가 무엇이고 무엇이 이런 흉악범죄를 만드는지에 대해서 개인의 환경과 그의 가정사가 아니라 사회전체의 구조적 모순점들을 고찰할 때이다. "상대를 이해하는 감정 없이 경쟁만 가르치는 사회, 이기는 자만이 추앙 받는 사회에서 사이코패스는 필연적"이라는 사이코패스 전문가 헤어 박사의 말을 곱씹으며 말이다.

댓글 2개:

  1. 신중하게 집행하여야 하겠지만 그래도 사형제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범죄 예방효과는 처벌의 강도와 상관없다는 의견도 동의는 하지만 다시 강모씨같이 아주 명백히 죄가 인정되고 죄질이 지극히 나쁜 사람들은 적절한 시기에 사형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사형만이 중요한게 아니고 말씀데로 사회 전반적인 구조를 다시 잡아 예방을 하는게 더 시급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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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비밀 댓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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