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5일 일요일

"입시 공화국의 종말"을 읽고 밑줄~!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사라진 마을은 출산율 저하로 또는 이농으로 걱정하면서, 아이들의 웃음이 사라진 놀이터는 걱정하지 않는가?

 

 2007 4 중순 A과학고를 방문한 KAIST 서남표 총장은 교장으로부터 학교에 대한 소개를 받고서는 한숨을 쉬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이건 '야만'이야. '집단 수용소', 학교가 아니야." 과학고 교장은 다음과 같이 자랑했다고 한다. "학생들이 오전 5시부터 12시까지 수업과 자습을  한다. 이를 위해 기숙사 문을 자정까지 잠가 놓는다." 총장은 비단 A 과학고에서만이 아니라 여러 과학고와 특목고에서 같은 현상을 목격했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 학교는 기회주의, 출세주의를 가르치는 동시에 수많은 아이들을 폭력자로 만든다. 피해자와 가해자들의 망가진 인생들에 대한 책임은, 학교를 '우승열패' 지옥으로 만든 학벌 카스트 제도와 제도의 폐단을 알면서도 혁파시키려 하지 않는 우리들 모두 같이 지게 었다.

 

 비유기성, 그것도 광범위하고 철저한 비유기성을 통해 공교육의 차원에서 고등학교 교육과 대학 교육의 연결고리를 끊어 버리는 것이 그들이 일차적으로 노리는 것이다. 끊어진 연결고리를 학생들 각자가 알아서 연결시키도록 유도한다. 그런데 어떻게 학생들이 스스로 이것을 있겠는가? 그것은 결국 사교육에 의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사교육 시장의 확대와 팽창은 불을 보듯 뻔하다. 고등학생들뿐만 아니라 중학생들과 초등학생들도 논술학원을 다닌다. 논술 고사의 도입과 더불어 촉발된 사교육시장의 급격한 팽창은 각종 통계자료에 의해 명백히 드러난다.

 

 세계적인 명문 대학들이 본고사를 대신 복잡한 다면평가를 통해서 학생들을 선발하는 이유는 " 차례 시험으로 학생의 잠재력을 평가할 없으며 창의적이고 다양한 대학 문화를 만들 없다" 믿기 때문이다.

 

 개인의 인권과 인격이 최소한이라도 보장되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들에게 끝없는 정신적, 육체적 그리고 물질적 고통을 주고 사회 전체의 발전을 가로막을 것이다. 그리하여 개인과 사회에 아무런 미래도 보장할 없을 것이다.

 

 한국 ,,고교생의 학력은 OECD 회원국의 국제학업성취도비교와 국제수학과학능력평가에서 영역마다 1~4위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한국의 교육은 '', 자아의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사유와 행위를 가르치지 않고, '' '', 타자를 구분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자아는 타자와 사회를 위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국가를 위해 왜소화하고 부정하며 무화시켜야 무엇으로 가르친다. 개인은 언제나 초개인적 사회 집단과 국가에 자리를 주고 그것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해야 한다는 집단주의와 국가주의가 한국의 교육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이념이다. 이러한 집단주의적, 국가주의적 이념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국기에 대한 맹세'이다. 개인에게는 그저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 요구될 뿐이다.

 

 ,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자아는 타자로부터 거리를 두는 동시에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거리를 있는 정신적 능력을 소유해야 한다. 나는 자신을 마치 남처럼 바라볼 있어야 한다. 내가 자신으로부터 거리두기를 하며 자신을 객체화시킬 있어야 한다. 이처럼 개인이 가지 정신적 능력을 겸비할 비로소 그는 자의식을 소유한 존재라고 표현된다.

 

 한국의 엘리트는 어떻게 이른바 비엘리트와 구분되는가? 그것은 너무나 간단하다. 대학의 서열이다. 대학 서열 피라미드에서 상층부를 차지하는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엘리트이다. 그들 역시 이른바 비엘리트들과 마찬가지로 없이 뛰는 조그만 선수들이다. 다만 그들은 한국 사회가 강요하는 감옥의 논리에 보다 충실한 대가로 정답 찾기에서 승리한 사람들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그들은 남보다 실수를 덜한 대가로 명문대에 합격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철저하게 아니 완벽하게 몰주체화되고 몰개체화된 인격체들이다.

 

 이미 서열 관계가 정해진 관계로 대학 사이에 선의의 경쟁도 존재하지 않는다. 경쟁은 이미 대학 입시에서 끝난다. 제대로 사회라면, 그리고 제대로 교육이라면 경쟁은 , , 고등학교가 아니라 대학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어떻게 것이 경쟁을 하지 말아야 시기에 경쟁을, 그것도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인 무한 경쟁을 강요하고, 진정으로 경쟁이 시작되어야 하는 시기에 경쟁이 끝난다. 자연히 대학의 교육은 대충대충 이루어진다. 모든 과목이 개론 수준을 벗어나기 힘들며 수업 진행도 산만하고 엉성하다. 전문성의 함양을 기대하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기와 진배없다.

 

 한국 사회는 이제 "국가의 개인들"에서 "개인들의 국가"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국가나 사회를 중심으로 개인을 바라보는 관점을 버리고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개인들이 상호작용을 통해서 그리고 상호작용을 위해서 구성하는 단위로 바라보는 관점을 취해야 한다. 국가나 사회가 해야 일은 교육을 통해 개인이 타고 다양한 관심이나 개성과 특성 적성을 마음껏 발휘하고 발전시키도록 '산파' 역할을 하는 것이고, 다채로운 능력과 역량을 갖춘 개인들을 조화롭게 조직하는 것이다. 바로 이들이 '인적 자원' 되는 것이고 '인재' 되는 거이며, 국제 경쟁력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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