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3일 월요일

회의주의자 되기......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를 통해서 언제 어디서나 원하기만 하면 많은 정보를 쉽게 얻을 있다. 바다가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서 수질, 수온 그리고 사는 물고기들의 종류가 다른 것처럼, 인터넷이라는 공간의 정보도 질과 양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이들은 중요한 정보를 찾기가 쉽지 않은데 비해서, 쓸데 없는 정보들이 너무 넘쳐난다고 인터넷을 쓰레기의 바다라고도 말한다. 자연의 바다는 자신이 어느 정도의 자연 정화능력이 있어서, 자신의 한계치를 넘지 않는 범위에 한해서 스스로 정화를 한다. 하지만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자연정화의 기능은 없다. 디지털의 특징이라고 있는 복제와 전송의 편리함이 그런 자연정화를 어렵게 만든다. 

 

 인터넷 세상에서는 사실이라고 믿었던 정보는 어느 순간엔 거짓이고, 거짓이라고 믿었던 정보는 실제로는 진실이다. 사실을 가장한 거짓된 정보들은 많은 이들을 기만하고, 진실된 정보는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해서 심연 끝에 머무르기도 한다. 그래서 인터넷의 정보를 모두 신뢰해서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맹신한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인간의 특성 때문인지 몰라도.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격을 구분하는 것이 비과학적인, 미신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오늘도 여전히 혈액형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구분 짓고 있으며. 과학과 종교를 구분하지 못해서 종교에 "창조과학"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종교를 마치 과학처럼 포장해 버림을 물론이고, 기존의 과학적 가설이 거짓이라고 거짓말을 일삼는다. 뿐만 아니라 "아니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속담에 대한 맹신으로 연예인들의 신변잡기에 관한 루머와 소문들은 어느 순간엔가 진실되어 버린다. 당사자들이 아무리 부인을 해도 그만이다.

 

 노벨상 수상자 버트런드 러셀은 "인간사 바깥에 놓여 있는 것들은 진실이 아니라 사실이다. 진실이란 믿음의 속성을 띠며, 믿음은 심리적 사건이다."이라고 했다. 우리는 사실보다는 믿음을 바탕에 진실을 맹신한다. 믿음의 바탕이 되는 것은 권위 있는 사람의 이름 값일 수도 있고, 매일 신문에서 접하는 기자라는 직함일 있다. 이런 믿음의 바탕이 만들어낸 진실은 믿음의 붕괴로 거짓이 있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하물며 인터넷이라는 곳은 이런 믿음의 체계가 부실한데도, 인터넷이라는 자체가 믿음의 바탕이 되는 웃지 못할 상황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가 주입식 교육을 받음으로써 정보 습득은 했지만, 정확한 판단을 내릴 있는 습관을 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권위와 말에 대한 믿음이, 실존하는 사실의 정확한 판단을 가로막게 만든 것이다. 정보의 습득에는 능숙하나 비판능력을 상실함으로써, 세상에 사실보다는 믿음에 기댄 거짓된 정보에 많은 사람들이 쉽게 열광하고 습득한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서 진실이 무엇인지 밝혀진다고 해도, 믿음은 이미 뇌리에 박혀버린 상태다. 결국에 우리는 사실보다는 믿음을 신뢰하며 계속 나이를 먹어간다.

 

 이런 상황 속에서 거짓의 생명력은 점점 길어진다. 아무리 사실을 말해도 이미 진실로 믿어버린 것에 대한 신뢰는 지속된다. 왜냐하면 자신이 믿고 있는 믿음이 붕괴되었을 때의 좌절감을 결코 용납하지 못하는 인간의 고집 때문이다. 그래서 잘못된 종교적 진리나 믿음을 비롯해서 미신에 대한 믿음은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서 사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지속될 뿐이다. 오히려 사실보다는 믿음을 강요하는 거짓된 행위들로 표출되기도 한다.

 

 우리가 믿어야 것은 사실이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에 대한 믿음이 아니다. 회의주의자들은 믿음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사실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세이건은 회의주의에 대해서 "상충하는 가지 욕구 사이에 절묘한 균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앞에 차려진 모든 가설들을 지극히 회의적으로 면밀히 검토하는 것과 아울러, 새로운 생각에도 크게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회의에만 머문다면, 여러분은 어떤 새로운 생각도 보듬지 못하게 됩니다.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세상을 비상식이 지배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괴팍한 노인네가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귀가 가볍다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마음을 열면, 그리고 회의적인 감각을 터럭만큼도 갖추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가치 있는 생각과 가치 없는 생각을 구분하지 못하게 됩니다. 모든 생각들이 똑같이 타당하다면 여러분은 길을 잃고 것입니다. 결국 어떤 생각도 타당성을 갖지 못할 것이기에 말입니다."라고 했다. 머리 아프고 철학적인 듯한 정의로 회의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며, 또한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그에 반해서 러셀은 보다 간단하게 회의주의를 요약해서 말한다. "첫째,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문제의 경우, 비전문가는 그에 반하는 의견은 의심해야 한다. 둘째, 전문가들이 동의하지 않는 문제의 경우, 그에 대한 어떤 의견도 비전문가는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된다. 셋째, 전문가들이 받아들일 만큼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의견이라면, 비전문가는 그에 대해 판단을 중지하는 것이 현명하다." 라고. 그러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에의 의지가 아니라 정반대인 '진실 규명의 욕구'이다."라고 말한다.

 

 인터넷이라 세상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계속해서 인터넷을 쓰레기의 바다로 만들 것이고, 권위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우리를 권위에만 의지하고 기대하는 해바라기로만 만들 뿐이다. 결국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회의주의적 태도이며, 사실에 대한 추구만이 정보에 대한 신뢰를 쌓아나가는 방향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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