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10일 화요일

운명적 사랑 찾기 "바둑 두는 여자"를 읽고.......

바둑 두는 여자 - 10점
샨 사 지음, 이상해 옮김/현대문학

 

 사랑은 크게 가지의 유형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하나는 성냥 같은 것이다. 성냥의 적린이 마찰면과 만나는 순간 불꽃을 피우고 순간 성냥의 모든 것을 태워 버린다. 성냥 같은 사랑, 그것은 눈에 빠진 사랑이다. 순간에 운명을 느끼고 자신도 겉잡을 없는 사랑의 열병에 빠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같은 것이다. 1000 이상이 되는 가마에서 6일이라는 인내의 시간을 통해서 숯은 완성된다. 그렇게 탄생 숯에 불을 붙이면 오랜 시간 동안 열기를 뿜으며 자신을 태운다. 다양한 교감과 인내의 시간을 거치면서 서서히 사랑을 깨달아가는 것은 하나의 숯이 탄생하는 과정과 같다. 그렇게 만들어낸 사랑은 오랜 시간 자신을 태우며 사랑을 한다. 친구에서 연인이 되는 것이나 흔히 어른들이 말하는 살다 보면 정이 든다는 . 이것이 같은 사랑의 유형이 아닐까? 성냥 같은 사랑이든 같은 사랑이든 어느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함부로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어느 것이든 운명 같은 사랑일 테니까.


 하지만, 사랑 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사랑의 유형이 아니다. 내가 너를 지금 사랑한다 믿어도 나중에는 사랑이 식었거나 그건 사랑이 아니 였다고 말하는 처럼, 사랑을 명확히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만남과 이별을 반복해가면서 진정한 사랑을 배워나가는 것이 우리네 인간들의 당연한 운명이지만, 과정이 어떤 이에게는 상처라는 이름으로 운명을 회피하거나 피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것은 사랑이고 저것은 연민이야 라고 쉽게 판단하고 단정할 있으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지는 않겠지만, 인스턴트 같은 편하고 쉬운 사랑만 남게 되지 않을까?


 우리는 하나의 소중한 생명으로 태어나 세상을 향해, 타인들을 향해서 사랑을 갈구하지만, 사랑의 형태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 시간이 만들어준 삶이라는 공간 속에서 사랑은 익숙한 존재를 통해서 다가오거나, 어느 갑자기 나타난 익명의 타인을 통해서 조금씩 형태를 드러낸다. 과정에서 사랑에 대한 확신과 의심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사랑에 대해 배워가는 과정은 삶의 다른 굴곡을 이룬다. "바둑 두는 여자" 16세의 중국 소녀를 통해서 사랑의 굴곡을 보여준다.


  중국 소녀는 테러 현장에서 만난 명의 대학생 남자를 통해 이율 배반적인 사랑이 드러낸다. 명에게서는 육체적 사랑을, 다른 명에게서는 정신적 사랑을……. 순진하기만 했던 소년은 폭풍처럼 지나가는 사랑의 착각에 결국에 남는 것은 임신과 육체적 고통 뿐이다. 소녀가 보여주는 정신적 사랑이라는 것도 도덕적이지 못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신적 면죄부를 얻으려는 이기심일 뿐이었다. 결국에 소녀는 육체적 사랑에 배신당하고 정신적 사랑이라 착각했던 인물이 보여주는 사랑의 집착에 고통 받는다.


  다른 사랑을 보여주는 일본군 장교에게 사랑의 대상은 가족과 조국 뿐이다. 자신의 목숨마저 버려가며 야스쿠니가 상징하는 맹목적인 애국심으로 뭉쳐진 그런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래서 자신이 사랑했던 게이샤에게도 자신을 사랑하는 동생의 친구보다도  조국이라는 망상이 만들어낸 사랑이 우선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전장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보여주지만, 결국에 그가 사랑한 것은 살인과 무자비한 폭력을 함부로 일삼는 조국이라는 괴물일 뿐이다.


 그런 그가 조금씩 변해가는 것은 중국 소녀와 바둑을 두면서다. 바둑판 위에 펼쳐지는 그와 그녀의 정신적 교감으로 모르는 사이에 서로가 서로에게 빠져든다. 소녀는 육체적 사랑과 정신적 사랑의 상처를 바둑판에서 거칠게 때로는 슬프게 쏟아내면서 정신적 안식처로써 장교를 대하게 된다. 둘을 잇게 해주었던 바둑은 게임의 도구가 아니라 진정한 정신적 사랑을 승화하는 도구이자 장이 된다. 하지만 이런 운명 같은 사랑은 결국에 비극으로 끝난다. 서로의 이름 조차 모른 소녀는 장교의 품에서 장교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장교는 소녀를 따라서 자살을 택한다.


 운명 같은 사랑은 서로의 사랑만을 확인하고 끝나버린다. 많은 시간을 함께 바둑으로 보내면서도 사랑을 깨닫는 것은 죽음을 앞에 순간이었다. 사랑함에도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진정으로 사랑하기도 아까운 시간을 그저 낭비하는 것은 소녀와 장교 뿐일까? 정신과 마음으로 느끼는 사랑이 아니라 세뇌되어온 사랑에 집착하는 것은 아닐까? 돈과 자동차 집이라는 부수적인 것들이 사랑보다 우선하는 우리의 탐욕이 두른 사랑이라는 탈에 집착하는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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