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4일 일요일

"관용" 그 힘을 보여주는 책 "제국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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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독도문제로 시끄럽지만,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욕은 언제나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 국가들의 반발을 초래해 왔다. 그럴 때면 외신을 통해서 일본의 행태에 반발하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동태를 수가 있다. 하지만 동북아의 국가이자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나라임에도 일본에 대한 분노보다는 친일적 행위로 일관하는 나라와 국민들이 있다. 크게는 중국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에 넣을 있는 곳이기에 이런 반응은 의아했었다. 비록 중국과 얼마 전까지도 대립하며 갈등하던 국가였지만, 일본의 침략행위에 대해서 그렇게 관대할 있는지 의혹만 증폭될 뿐이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우리나라처럼 과거사 청산에 실패한 역사로 인해서 친일파들이 나라의 모든 것을 장악했다"였다. 그렇게 대만이라는 나라를 보면서 우리 사회에서 암적 존재로 존재하고 있는 친일파들의 청산이 필요함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그런데 "제국의 미래"라는 책을 읽으면서, 대만이 일본의 침략에 관대했던 것은 친일파들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있다. 많은 나라들이 일본제국의 침략에 수탈당하고 착취를 당했다. 많은 생명들이 죽임을 당하고, 젊은 여성들은 성적노예가 되었으며, 젊은 남성들은 침략전쟁의 총알받이가 되었다. 반면에 일본제국의 식민지중에 유일하게 다른 정책이 펼쳐진 곳이 대만이라는 것이다. 책에서는 제국의 번영 조건을 "관용"으로 꼽고 있는데 일본제국이 유일하게 전략적 관용의 정책을 펼친 곳이 대만이라는 것이다. 그런 전략적 관용 정책의 효과로 인해서 일본제국주의를 찬양하는 현재의 유일한 국가로 대만은 남아 있으며, 일본의 극우파들이 역사왜곡을 일삼으면서 침략의 정당성을 주장할 인용하는 나라가 대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관용"이라는 것이 어떤 작용을 했기에 모든 제국들의 번영조건에 들어가는 것일까? 저자는 "관용" 대해서 지금 우리가 인식하는 관용과는 다른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의 제국들이 존재하던 시대의 관용이라는 것은 시대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 관용"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관점으로 제국이 되었던 나라들과 그렇지 못한 주변 국가들의 관용의 정도를 비교하면서 관용이 어떤 힘을 발휘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모순적인 것을 사실을 이야기하는데 제국 쇠퇴의 씨앗을 뿌린 것도 관용이라고 한다. 관용이 변화의 지점을 건드려서 반목과 폭력을 유발하면서 제국은 멸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관용"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시대를 풍미했던 제국들을 분석한다. 너무나 유명했던 제국들에서부터 학창시절 세계사 시간에 잠깐 언급되고 지나갔던 제국들까지 동서양을 통틀어서 "관용"이라는 관점으로 행해졌던 정치행위와 통치행위를 분석하고 있다. 저자의 분석을 보면 타민족이나 타종교에 관용적인 국가들이 발전의 동력을 많이 흡수하고 있는 것을 있다. 특히 중세 유럽 제국(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탄생에는 언제나 유대인들이 역할을 하고 있는 재미있는 사실도 포함되어 있다. 대영제국의 경우에는 유대인들의 역할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중요한 역할을 스코트랜드인들이 했다고 한다.


 이렇게 제국들의 역사를 관찰해가면서 저자는 미국이라는 제국에 대해서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 중국출신의 이민자로써 미국에 대해 상당히 관대한 평가와 결론을 내린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민자들의 나라로 초강대국이 최초의 사례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국가로 초강대국이 최초의 국가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 때문인지 9.11 이후에 보여준 미국의 이민정책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그런 행위가 관용의 힘을 약화시킴은 물론이고 미국의 발전 동력인 이공계 이민자들의 유입마저 막는 결과가 초래한다고 보고 있다. 과거의 제국이 군사적 정복과 정벌을 통해서 구성되었다면, 현재와 미래에는 경제적 힘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이민에 대한 관용 중요한 힘이 밖에 없는 것이다. 


  책은 국가간의 경쟁에서 이기고 다른 나라를 압도하기 위한 제국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도 우리사회의 "관용" 대해서 다시 생각해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민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또한 많은 외국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또는 한국을 배우기 위해 들어오고 있는 상황을 본다면 과연 우리는 그렇게 관용적인가? 같은 국민들에게도 그렇게 관용적이지도 못한데, 출신국가와 피부색으로 사람에 대한 차별의 행위는 얼마나 만연한가? 뿐만 아니라 여전히 존재하는 종교간의 갈등 그리고 남북한의 이념적 갈등. 나보다 못사는 사람을 돕기라도 하려고 하면, 분배정책이 문제가 있으며,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비난하는 이들. 이런 것들은 분명 개인들의 의견이자 행동형태이다.


 개인의 관용부제로 일반화해서 국가적 관용의 부제로 몰아가서는 안되겠지만, 사회전체가 관용이 없다는 것은 개인들에게 관용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세상살이가 팍팍해서, 사람만 관용적이면 손해 본다고 생각하기 쉽지 않음을 알지만, 관용적이지 못한 사회가 된다는 것은 삶이 세상살이가 팍팍해지는 악순환의 반복일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관용으로 선진국이 되자" 아니라 "관용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들자".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국가의 관용이 아니라 개인의 관용 것이다.

제국의 미래 - 10점
에이미 추아 지음, 이순희 옮김/비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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