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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3일 금요일

애국과 국가 그리고 국민.

 

 분열을 걱정하고 사회를 통합시키고자 하는 인간들의 특징은 말 할 때마다 위기를 들먹인다. 그러면 위기만 통과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 처럼 시민들을 현혹시킨다. 그러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은 약한자들의 관용과 희생을 바란다. 솔직하게 까놓고 이야기하면 그들이 원하는 것은 약한 시민들의 복종이다. 자신들의 명령에만 따르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처럼 말한다.

 

 그들이 행하는 짓거리는 말이 좋아서 관용과 희생이지 본질은 폭력이다. 약한 시민들에게 그들의 힘앞에 굴복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관용과 희생해야 될 것들은 오히려 약한 시민에게 모든 책임과 의무를 덧씌우고, 그들은 구경꾼이 되어서 약한 시민들의 등골을 손쉽게 뽑아 먹는다. 글로벌 금융 위기를 맞이해서 각국의 정부들은 약한 서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자들의 증세를 통해서 문제를 풀려하고 있다. 과거 대압착의 시대 세금과 사회제도로 가진자와 가난한 자들의 차이가 적었던 시대로 회귀가 위기 극복의 중요한 힘이 될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오히려 반대로 가고 있다. 최저임금을 삭감하기 위해서 날뛰는 인간들이 2mb와 잔당들을 등에 없고 설치고 있다. 부자감세 정책을 밀어 붙일 뿐만 아니라 노동의 유연성을 운운하면서 정규직에까지 손쉬운 해고를 비롯한 비정규직의 무차별적인 고용을 위해 날뛰고 있다. 문제는 이런 방식이 내수시장의 붕괴를 가속화 시킨다는 것이다. OECD나 세계 경제관련 기관에서는 한국 경제가 빠르게 회복하기 위해서는 수출뿐만 아니라 내수시장의 활성하도 중요하다고 진단하고 있는 상황을 가만한다면, 2mb의 정책은 수출제일주의를 바탕으로 한 내수시장의 붕괴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수출이 늘어나면 경제소득이 상승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국 수출에 대기업이 많은 비중을 찾이할 뿐 나머지 연관산업과 하청업체들은 오히려 단가인하의 압박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그런 수출의 성과가 국민경제 전반으로 파급될지 의문일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그런 막대한 수익의 대부분이 주식 배당금의 형태로 지불되고 있는 상황을 가만한다면 수출의 증가한다고 해서 서민경제에는 파급되는 경제적 효과나 고용의 효과는 크지 않다. 그래서 많은 경제학자들은 중소기업의 육성과 서비스 산업의 육성으로 고용과 경제적 파급효과를 넓혀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경제 상황에 기대고 있는 수출산업보다는 내수시장의 활성화를 도모해서 외부경제충격을 최소화하고 장기적으로 서민경제를 활성화 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지금이다. 과잉투자된 산업을 구조조정하고, 극내 내시시장의 소비력을 증대시키기에 지금보다 적합한 때가 없다. 쓸데 없이 천문학적 단위의 돈을 4대강에 쏟아 붇지 말고, 내수 기반을 확충하고 내수 시장을 활성화 시키는데 그 돈을 투입한다면 효과가 클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2mb와 무리배들은 건설과 토건괴물들의 배만 채워주려고 4대강을 밀어붙이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에서 일본이라는 나라를 보면 우리만큼 노동시장이 열악한 나라로 인식되고 있지만, 사실은 일본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이 더 열악하다고 보고 있다. 비정규직의 숫자도 한국이 OECD최고라는 사실만 보더라도 일본의 노동시장은 우리나라 보다 그나마 낳은 편이다. 그런데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는 명제에 반대되는 정책을 추진하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아키아바라에서 일어났던 무차별 살인이 경각심을 일으켰는지 몰라도. 최근 일본의 후생성에서 발간한 노동백서를 본다면 2mb가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진 인물이라는 것을 한번에 볼 수 있다.

 

 후생성 노동백서에는 일본 내수 시장 침체를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비롯해서 장기 고용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즉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지금의 노동시장보다는 과거 일본이 자랑하던 종신고용제의 회귀에 대한 재평가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폭력으로 국민을 굴복시키려하는 2mb는 이런 시대적 흐름을 완전히 무시하고 이번 비정규직 사태에 대해서도 핵심은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는 무식한 소리나 해대신다. 아니 무식해서가 아니라 그가 단지 5%를 위한 대통령이라서 그럴 것이다.

 

 그럼 나머지 95%의 사람은 뭘 해야 할까? 5%를 위해서 모든 고통을 노동자와 서민들에게 전가시키는 2mb를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여전히 국가의 안전을 위해서 억지로 화합과 통합을 위해서 침묵해야 할까? 그것을 강요하는 폭력에 맞서 침묵해야 할까? 이 문제의 기본은 국가가 국민에게 무엇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에서 시작해야 한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서 봉사하는 존재라는 것에 대한 인식말이다. 5%를 위한 국가가 아니라 95%의 국민들을 위한 국가여야 한다는 사실을. 그래서 맹목적인 애국이 아니라 무엇이 진정한 애국이고 국민을 위한 것인지 알아야 한다. 아마미아 카린의 이 말은 애국과 국가에 대한 올바른 시선을 제시한다고 할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애국'은 없다. 조국을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더욱 전가시키는 국가는 사랑 받을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참고도서 - 성난 서울

2007년 11월 11일 일요일

권력을 생각하다.......

 

 대선을 앞두고 있다. 서로들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되기 위한 야망을 앞세워 국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아무나 쉽게 꿈꾸지 못하는, 아무나 쉽게 얻지 못하는 한 나라의 최고권력이 무엇이기에 동지마저도 적이 되고 적이 동지가 되어 버린다. 정책이나 공약은 뒷전이고 서로의 숨기고 싶은 치부마저도 낱낱이 파헤쳐, 자기도 상처 입을지 모르는 네거티브라는 검의 날을 잡고 휘두르기 바쁘다. 독이든 성배와 같은 권력의 마력이 무엇이기에 은퇴했던 한 노장 정치인은 다시 독이든 성배를 얻기 위해서 진흙탕으로 세 번째로 뛰어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성숙해야 할 정치의식이건만 시간이 흐르면서 성숙(?)하는 것은 권력이라는 불을 향한 불나방들의 숫자다. 늘어나는 불나방에 비해서 국민들의 정치의식은 정체하거나 퇴행하고 있다. 정치에 대한 혐오와 무관심은 불나방 숫자보다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것이 불나방들이 노리는 전략과 전술일지도 모르겠지만…….  국가의 주인이자 최고 권력자는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아니라 국민들이라는 사실은 교과서에만 강조하는 얘기가 되어버리는 현실이 서글프다. 권력의 대리자요 권력의 대행자인 자리가 마치 권력과 동일시 되는 현실은 국민의 정치의식을 얕보는 정치인들이 투영한 그들의 그릇된 욕망인데, 그 그릇된 욕망을 나무라고 질책해야 할 국민들은 그 투영된 잘못된 이미지를 그대로 현실로 받아들인다.

 

 권력 앞에 줄서기 위해서, 권력을 돈으로 좌지우지 하기 위해서 궁리하는 박쥐 같은 군상들이 마음껏 활개치고, 그들이 저지른 죄에 대한 대가마저도 돈과 그 권력으로 면죄 받는 것이 가능한 곳 그곳이 지금의 개한민국이라는 곳이다. 몇 번을 반복해온 박쥐들의 행태가 단절되지 않고, 오히려 박쥐는 가면을 바꿔가면서 그 시대의 권력자와 권력 앞에서 마음껏 날아다니며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는다. 죄에 대한 단호한 단죄가 필요함에도 박쥐의 돈 앞에서 정의와 원칙은 언제나 흔들린다. 이번에 또 다시 박쥐의 범죄에 대한 양심선언이 나왔건만, 과연 개한민국국민들은 박쥐에 대해서 단죄를 원할 것인가? 혹 국민이 원한다고 해도 박쥐의 돈에 무릎 꿇은 개한민국의 법과 정의가 단죄를 할 수 있을 것인가?

 

 권력이란 국민에 의한 것이요, 국민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종교인에 의한 것이고, 종교인을 위한 것이 되었는가? 속세의 그릇됨을 비판의 칼날을 가하고 속세의 그릇됨을 정화시켜 무릉도원과 같은 곳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종교인들이 아니 였던가? 오히려 종교인들이 더 부패하고 속세에 찌들어 자신들의 종교를 위한 권력을 만들려고 하니 개한민국은 종교인마저도 타락하는 곳이다. 개한민국은 종교인마저도 타락하는 곳이 아니라, 개한민국의 권력은 종교인마저도 타락하게 만드는 곳이다. 국가의 최고권력 뿐만 아니라 한 대학교를 차지하기 위한, 제주도의 한 절을 차지하기 위한 그들의 타락한 속세의 욕망을 보면서 권력과 종교인의 관계는 모든 종교에 공통적이라는 현실이 더 서글프다.

 

 자신이 타 죽을지도 모르는 권력이라는 불을 향한 불나방들의 향연은 그 불의 빛으로 어둠을 몰아내는 모습과 그 불의 열기로 온기를 전해주는 모습을 위한 것이 어야 함에도, 개한민국의 불나방들은 붉은 빛으로 활활 타오르며 꼬리치는 욕망의 모습을 위한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개한민국의 국민은 불의 밝음과 불의 온기를 느껴본적이 없다.

 

Ps> 책 "권력의 조건"의 서평을 쓰려다가 엉뚱한 곳으로 빠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