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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9일 월요일

누가 법질서를 무너뜨리나?

 

 용산 추모 집회에서 경찰이 폭행 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사건의 경위에 대한 경찰 일방의 발표와 주장만 대부분의 언론에서 보고 되어지고 있고, 소수의 언론만이 추모 집회 주체 측의 이야기를 보도 하고 있다. 아직 사건의 초기라서 그런지 아니면 이제 언론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용산사태이기 때문인지, 기사의 수나 내용이 많이 부족해서 많은 판단을 내리기에는 아직 부족해 보인다. 추모 집회 주체 측의 말에 의하면 경찰이 갑작스러운 검거에 나서면서 집회참가자와 충돌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지, 경찰의 발표처럼 일방적인 폭행은 아니라고 한다. 앞으로 더 많은 관련기사나 나올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써는 어느 쪽의 잘못인지 정확한 판단을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아 보인다. 기본적으로 이번 사태를 두고 집회참가자들을 무조건 옹호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두고 보수언론이나 정치권에서는 대단한 건수를 잡았다는 식으로 마녀사냥을 시작한다. 잠시 해외 외유를 갔다 오신 2mb께서는 "세상에 이런 나라가 어딨냐"면서 "선진 인류국가를 만들기 위해선 공권력이 확립되고 사회질서가 지켜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렇다. 세상에 이런 나라는 없다. 자신들이 야당일 때는 공기업 낙하산에 대해서 마구 비판하다가 자신들이 정권을 잡았다고 법으로 보장한 공기업 임원들을 강제로 몰아내고 자신들의 낙하산을 투하하면서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나라는 우리 나라 밖에 없다. 지난 정권의 인사청문회에서 위장전입을 비롯한 이중 논문 게재를 이유로 장관 후보를 마구 낙마시키더니, 자신들이 정권을 잡았다고 위장전입과 이중 논문 게재는 낙마의 이유에 세발의 피도 되지 못하는 것들이다. 지난 정권에서 주장하던 자신들의 기준과 자신들의 정권하에서 말하는 기준이 완전히 뒤 바뀌는 이런 나라는 우리 나라 밖에 없다. 지난 정권에서 수입산 쇠고기 수입을 하면 광우병 발생우려를 내세우며 반대하다가 자신들의 정권을 잡았다고 광우병 발생 우려를 괴담 취급하며 반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물대포와 방패로 찍어내리는 나라는 우리 나라 밖에 없다. 야당 국회의원이 경찰에게 집단 폭행당하면 제대로 수사 조차하지 않으면서, 여당의원에게 약간의 폭력을 행사한 몸이 불편하신 70대 노인을 테러리스트로 취급하고, 도주나 증거인멸의 이유가 없음에도 구속수사하고 경찰을 50명이나 동원하는 이런 나라는 우리 나라 밖에 없다.

 

 과연 누가 우리 나라의 법 질서를 무너뜨리는가? 원래부터 부도덕한 인간이 대통령이 되면서 이런 사태는 이미 예견되었기는 하지만, 해도 해도 너무할 정도로 돈과 권력으로 법을 무시하는 집단들이 힘없는 국민들을 향해서 준법을 강요한다. 그렇지 않으면 강력한 공권력을 동원해서 질서를 잡겠다고 협박을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소위 지도층이라는 인간들은 이미 쌈 싸먹어서 안중에도 없는 이야기가 되어 버린 나라는 이렇게 민주화되고 경제가 발전한 나라 중에서는 세계에 어떤 나라도 없다.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재판에 반영하여 다른 재판관에서 압력을 행사하는 대법관이 있는 이런 나라는 우리 나라 밖에 없다. 우리 나라의 법 질서를 붕괴시키고 있는 것은 소위 지도층이라 불리는 인간들 때문이 아닌가? 이미 검찰과 경찰은 정권과 돈의 노예라는 의미에서 떡검과 견찰이라고 불리우면서 국민들의 신뢰를 상실했고, 신영철 대법관의 이번 사태로 정의의 마지막 보루라고 여겨졌던 법원마저 정권의 개가 되었다고 인식되며 신뢰를 상실하고 있는 마당에 사회에 정의가 존재한다고 생각할 사람은 얼마나 되겠는가?

 

 법질서의 붕괴에 대해 보수정권에 대한 좌파들의 저항이라고 함부로 매도하는 쓰레기 보수 언론과 정치꾼들이 있는데, 사회 보편적인 상식과 정의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를 이념투쟁으로 함부로 매도하지 마라. 경찰과 검찰의 공정성을 요구하는 것 그리고 법관의 중립을 요구하는 것, 그들이 만든 법을 지키는 것, 그리고 정치꾼들의 말 바꾸기 행태를 비판하는 것이 어떻게 이념대결이 되는가? 누가 법질서를 무시하는지 최근에 발표된 산업정책연구원의 자료를 보자.(기사링크) 66개 평가 대상국 중에 정치인 법질서 경쟁력 49위, 정부 법질서 경쟁력 35위, 기업 법질서 경쟁력 42위인 반면에 시민 법질서 경쟁력 22위이다. 국민들은 열심히 법질서를 지키는데 소위 지도층이라는 인간들이 권력으로 법질서를 무시하고, 돈으로 법질서를 무시하는 세상에 이런 나라는 없다. 이것만 보면 머리 용량이 2mb밖에 안 되는 분이 열심히 떠드시는 떼법이라느니 법질서를 지켜야 선진국들이 된다느니 하는 식의 발언이 얼마나 가소로운지. 우리가 원하는 것도 돈과 권력에 따라서 이리저리 변하는 고무줄 법질서가 아니라 제대로 된 법질서의 확립이다.


2009년 1월 7일 수요일

"평균으로의 회귀"법칙으로 본 한국사회

 학창시절 수학 교과서의 마지막에 나오는 '확률' 부분을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학기가 끝나가는 마지막에서야 나오는 부분이라 방학에 대한 설레임으로 가득 찬 학생들의 머리 속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확률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어도 대입 수능에서도 1~2문제 나올까 말까 한 정도의 확률과 몰라서 틀릴 확률과 알아도 맞추지 못할 확률까지 생각했을 때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던 부분이었다. 그래서 인지 고3 때, 수능 모의고사를 보고 서로서로 답을 맞춰 볼 때면, 전교 1~2등을 다투던 우리 반 반장조차도 그냥 찍었다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말할 정도였다. 반장의 그 말이 사실인지 거짓말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그 당시 우리 학급에서 확률에 대해서 명확한 개념을 이해하고 응용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지금 읽고 있는 "리스크"란 책에 나오는 확률이야기는 막연한 두려움과 함께 두통을 유발한다.

 

 이 책에서는 확률이라는 학문의 발전사가 찬찬히 설명되어 있다. 머리 아픈 부분도 있고, 재미있는 부분도 있지만, 지금보고 있는 '평균으로의 회귀'라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이 법칙을 발견한 사람은 콜턴이라는 인물인데, '진화론'의 저자 찰스 다윈의 사촌이라고 한다. 그는 '우생학'으로 잘 알려졌있데, 그 '우생학'이라는 분야가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에 단초를 제공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우생학'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콜턴은 수학분야를 연구한 것이 아니라 유전학을 연구했다. 그런 그가 '평균으로의 회귀'라는 법칙을 발견하게 된 것은 유전학 연구를 하던 도중에 부모와 자식들 사이의 신장 즉 키에 대한 상관관계를 추적하면서다. 키가 작은 부모에게서 키 작은 자식만 나오는 것도 아니었고, 키가 큰 부모에게서 키 큰 자식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그는 '평균으로의 회귀'라는  법칙을 이끌어낸 것이다.

 

 '평균으로의 회귀'란 큰 것은 무한히 커지고 작은 것은 무한히 작아지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조금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오하라의 유명한 대사 "결국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테니깐"와 비슷한 의미를 부여한다. 현실적으로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의 상황에서 '평균으로의 회귀'라는 것이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언젠가는 해뜰날이 있다는 희망을 제공한다. 반대로 경제 위기 전의 상황 즉 서브 프라임 사태가 일어나기 전의 경제 활황에서는 '언젠가 경기침체가 오겠지'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평균으로의 회귀가 헛된 지침이 될 수도 있는 3가지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첫째, 평균으로의 회귀는 경우에 따라 그 과정이 너무 느려 도중에 어떤 충격으로 인해 붕괴될 위험이 있다는 것. 둘째, 어쩌면 회귀가 너무 강력해 일단 평균에 도달하면 안정을 취하지 않고 오히려 반복적으로 평균 주변을 동요시켜 양쪽에 불규칙한 일탈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평균 자체가 불안정해 어제까지만 해도 표준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 오늘은 전혀 모르는 새로운 것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음과 양, 좋고 나쁨 등이 되풀이 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장 내일이라도 번영이 찾아오리라고 사정하는 것은 극도로 위험한 일이라고 한다.

 

 이 부분을 읽다가 문득 드는 생각은 2가지 이유가 우리가 겪고 있는 지금의 현실과 너무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이유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평균으로의 회귀가 잘못된 결과를 야기할 것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부터 살펴보면 뉴또라이를 홍위병으로 한 2mb정부의 역사왜곡을 비롯해서 과거의 전면적인 부정을 보면 된다. 광복 이후 겨우 10년만을 극우들이 좌파라고 부르는 중도 우파들이 정권을 잡았을 뿐인데, 그것을 가지고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화려한 정치적 수식어(딴나라당의 홍준표의원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것은 단지 정치적 수사라고 말했다.)를 만들어 내어 10년의 역사를 완전히 부정하면서 온갖 잡다한 권력을 동원해서 과거의 평균으로 강력한 회귀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정치, 사회, 그리고 경제까지……

 

 많은 사람들은 그들은 민주주의를 20년 뒤로 후퇴시켰고 말한다. 경향신문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60%이상의 국민들이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여전히 불씨가 존재하는 촛불을 본다면 권력과 편법을 동원한 평균으로의 강력한 회귀는 결국 강력한 역풍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역풍의 현상을 잘 볼 수 있는 것이 최근에 일어난 민주당의 국회점거 사태이다. 새로운 법에 대한 토론이나 합의 과정은 전혀 거치지 않고 12월 31일 국회통과라는 데드라인까지 정해놓고 1주일 전에 상정하는 파렴치한 행위는 다수당이라는 힘만을 믿고 그들이 생각하는 평균으로의 회귀를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그 파장은 극한 충돌을 일으켰고, 국민의 민의를 대표한다는 국회의 권위를 스스로 깎아 내렸다. 그로 인해서 사회 갈등은 더 증폭되었고, 결국에 많은 시민들은 12월 31일에 또 다시 촛불을 들었다. 많은 시민들은 민주주의의 후퇴를 한탄하면서.

 

 세 번째 이유도 같은 연장선상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문구보다 잃어버린 민주주의 20년의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된다. 박정희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박정희와 비교하면서 민주주의의 평균을 찾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살았던 사람들에게 그 평균이라는 것은 아주 낮은 수준의 점수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결국에 박정희, 전두환 시절의 평균과 김대중, 노무현 시절의 평균은 엄청난 점수차이를 벌이고 있는 상황인데 지금은 박정희, 전두환 시절의 평균을 가지고 민주주의를 이야기 하고 있으며, 그 평균을 목표로 사회를 회귀시키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정부의 경제 정책에서 그대로 문제점을 드러낸다. 박정희, 전두환 시절의 토목, 건축이라는 평균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겉으로는 녹색성장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붙이고 있지만, 녹색 성장의 세세한 내용 상당수가 토목, 건축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규제철폐나 부자감세 같은 시장주의라는 목표에 대해서 그대로 잘못된 인식을 드러나고 있다. 미국 경제의 붕괴 이유가 시장의 실패라고 수 많은 경제학자들이 이야기를 해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시장 만능을 외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거기에 추종하는 사람들이 득실거리고 있다. 분명 미국을 보면서 정확하게 인식했다면 시장에 대한 평균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텐데도, 여전히 2mb와 그의 무리배들은 시장에 대한 평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잘못된 평균으로의 회귀는 나중에 미국의 경제위기나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같은 상황을 불러올 것이 뻔한데도 말이다.

 

 "평균으로 회귀"라는 법칙으로 우리 사회를 본다면 우리는 강력한 추동력을 바탕으로 하는 평균점 회귀와 잘못된 평균으로 회귀라는 두 가지 상황에 그대로 직면해 있다. 결국에 지금 사회에 나타나는 좌우의 갈등이라는 것이 평균으로의 회귀하는 가운데서 강력하게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평균은 단지 독립적인 사실일 뿐이다. 그러나 만약 어떤 다른 사실이 첨가되면 관측된 사실과 거의 일치하는 하나의 완전한 정상구조가 잠재적으로 존재하기 시작한다."라는 골턴의 말을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더 자세하게 말한다면 "평균으로의 회귀를 과거에서 기계적인 추정을 이끌어내는 데 그친다면 그것은 우상숭배보다 나을 게 없다. 현재 내린 가정의 타당성 여부에 대해 지속적인 의문 없이는 절대로 평균으로의 회귀만 믿지 마라."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평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고 의논할 필요가 있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2008년 12월 26일 금요일

세대 갈등과 이순(耳順)의 경지

 

 

 나이 육십을 가리켜 이순(耳順)이라고 한다. 60년이란 세월 동안 고통과 인내를 통해서 삶의 연륜이 쌓이면서 도달하는 경지를 말하는데, 직역하자면 '귀가 순해진다'는 뜻이다. 학자들이 풀이하는 속뜻은 '남의 이야기가 귀에 거슬리지 않은 경지,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깊이 이해하는 경지, 너그러운 마음으로 모든 것을 관용하는 경지'라고 한다. 세월이라는 불가항력인 시간의 힘이 만들어낸 깊이라고 해야 할까? 머리로 공부해서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지금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는 집단이나 사람들의 대부분은 60이 넘은 분들이다. 노무현 정권의 탄생에는 소위 368이라고 불리었던 청년세대의 힘이었다면 이번 대선은 더 높은 세대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대선이 끝나고 올드 보이의 귀환이라고 할 정도로 연륜과 나이가 대한민국을 이끄는 힘이 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과연 60년이란 세월의 연륜을 쌓았는가 반문할 수 밖에 없다.

 

 머리 용량이 2mb밖에 안되시는 분은 이순은 커녕 소통조차 하지 않고 일방독주 중이다. 권력의 달콤함 때문일까? 아니면 독재의 향수 때문일까? 그 분에게 소통이란 5%의 괴물들과 소통뿐이다. 나머지 국민들은 국가와 정권이 내놓는 정책에 복종하고 따르면 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래서 ktv라는 국정홍보방송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낙하산을 하사하셔 kbs와 ytn을 장악했다. 그리고 정부에 비판적인 mbc에 대해서는 민영화 카드를 통해서 압박을 가하고 계신다. 그리고 압박을 넘어서 재벌과 족벌 쓰레기 신문들에게 mbc를 팔아넘기기 위한 법안을 상정했다. 뿐만 아니라 친일 매국집단인 뉴라이트라는 홍위병을 동원해서 좌파사냥에 열중하고 계신다. 뉴라이트라의 핵심 멤버들은 60이 넘은 올드 보이들인데 이들이 하는 짓은 이순의 경지가 아니라 노망의 경지를 넘어선다. 나와 다르면 적이고 척결해야 될 세력, 그것이 대한민국에 60이라는 연륜을 가진 사람들의 수준이다.

 

 교과서의 왜곡도 이들의 수준을 잘 보여준다. 역사학자들은 거의 배제되고 이상한 학자들과 재벌집단이 모여서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도 웃기는 이야기지만,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전혀 인정을 하지 않는다. 말로는 역사적 사실을 다 인정한다고 말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자신들의 논리를 함부로 뒤집어 씌워서 좌빨 역사관이라고 함부로 제단하면서 자신들의 역사관만을 강요한다. 역사교육이라는 것이 국민을 우민화시키고 권력에 복종하는 도구로 생각하는 천박한 인식의 바탕아래서 탄생한 편협함은 그들의 나이가 아깝다고 느낄 정도로 유치할 뿐이다.

 

 대한민국에 소위 지도층 또는 배운 사람들이라는 분들의 수준이 이러한데, 일반 국민들의 수준이야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북한의 우매한 주민들이 위대한 김정일 쓰레기만을 바라보듯, 한국의 우매하고 나이 먹은 이들은 위대한 2mb만을 바라보고 있다. 세월만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이순이라는 경지는 그들 스스로가 포기한 것인지 아니면, 소위 지도층이라는 집단이 사육한 결과로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옹졸하고 속 좁기 그지 없기는 유치원생만도 못하다. 다양한 관점이나 이야기는 접할 생각도 하지 않으며, 2mb와 그 무리배 집단의 말과 논리에서 벗어나면 세상이 뒤바뀌는 줄로만 안다. 우리 같은 젊은 세대의 정열과 무모함에 대해서 지혜나 지도를 줘야 할 소위 어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이순의 경지에 들어서지 못하고, 유치원생들이 생때쓰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세대간의 충돌이 안 일어날 수가 있을까?

 

 젊다는 것은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인 반면, 연륜이 있다는 것은 너그럽고 지혜롭다는 것인데. 젊은이들의 실수나 방황을 한치도 인정 못하는 연륜이 대한민국의 수준인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연륜이란 지난 날의 독재의 향수만을 가지고 사는 것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들에게는 돈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박정희의 향수가 자극하는 것은 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mb와 5%의 무리배들이 다 착취해가는 경제구조 속에서 그들에게 얼마나 돈이 돌아갈 수 있까? 북한 주민들에게 죽지 않을 정도의 먹을 것을 주면서 김정일의 성은 때문이라고 세뇌하지만, 남한에서는 끝없이 착취를 하다고 마지막 순간에 숨이나 붙일 정도로 돈을 주면 2mb와 무리배들의 성은이라고 스스로 생각할 수준이니.

 

 대한민국에 위기가 오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중심을 잡아줄 어른이 필요하다는 말 하지만, 결국에 대한민국에는 어른이 없다고 한탄만 한다. 대한민국에는 이순에 경지에 오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권력의 단맛에 취해서 세월과 연륜만이 만들어주는 이순의 경지에 오르지 못하고, 국민들은 돈이라는 단맛과 정치권만 바라보고 스스로 깨치지 않아서 이순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다. 부끄러워해야 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부끄러운 것이라는 것 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수준이다. 돈과 권력의 아귀다툼만이 스스로의 품격을 올리는 것이라고 착각하면서 살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를 보고 싸가지 없다느니 예의 없다느니 함부로 말하겠지만, 그것은 바로 그들의 자화상이거나 그들의 또 다른 자아일 뿐이다. 우리가 보고 배운 사람들의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되는데 누굴보고 비난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    이제는 흑백논리에서 좀 벗어나서 퇴계 이황의 우화 처럼. "너도 옳고, 너도 옳고, 나도 옳다." 관용적인 모습 즉 이순의 경지를 추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