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19일 화요일

어느 나라의 공산당 창당을 보면서......

 

 전 세계에 대표적인 반공주의 국가 중에 하나인 곳에서 공산당이 창당되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만큼이나 내부적으로 좌우대립이 많았던 나라에서, 좌파 정권이 물러나고 우파정권이 출범한 나라에서. 반면에 한국에서는 여전히 우파의 탈을 쓴 매국노들이 빨간 콤플렉스를 자극하면서 갈등을 부추기는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한국에서 그랬다면 공산당 창당의 주역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을 것이다. 물론 그 나라도 한국과 비슷한 국가보안법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나라에서는 법원의 판결로 그 법은 효력을 상실했다. 이것을 보면 그 나라의 구성원과 사회가 가지는 관용의 폭과 자신감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다. 여전히 국가보안법의 망령이 남아서 마녀사냥을 해대는 한국의 꼬라지는 정이 떨어진다. 장교로 군복무 중인 사람의 민노당 가입했던 전력과 대학시절 읽었던 책들을 문제 삼아 기소해 버린 사건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개인의 양심과 사상 생각에 대해서 작위적인 판단을 하는 전근대적인 쓰레기들의 귀환을 알리는 서막일 뿐이다.


 그런데 그 나라의 대통령의 벤치마킹 대상이 누구인지 안다면 더 놀라지 않을 수 밖에 없다. 그 나라의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벤치마킹 대상은 지금의 한국 대통령 2mb이다. 경선전략과 공약의 많은 부분을 벤치마킹 하면서 2mb처럼 집권에 성공을 이뤘다. 하지만 그 나라의 대통령의 행보는 2mb와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보수정권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적대적 국가와의 관계 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항공편을 개통하고 경제적 협력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그 나라 국민들은 더 쉽게 적대국으로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기술과 자본을 가진 그 나라와 풍부한 노동력과 시장을 가진 적대국의 경제협력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유발할 것으로 보인다. 실용주의 노선을 내세웠던 2mb정권이 일방통행으로 열심히 삽질하며 대북관계를 악화시키기에 바쁜 상황에서 그 나라는 정말 실용주의 노선을 택했다. 이러한 결과는 철학이 없는 2mb와 확실한 철학을 가진 마잉주의 차이일까?


 물론 대만의 우파와 한국의 우파는 다르다. 대만의 우파는 중국에 친화적인 반면 한국의 우파는 북한에 적대적이다. 이것은 한국만이 가진 특색으로 옳고 그름을 따진다는 것은 너무 이념적 논쟁으로 빠질 수가 있다. 하지만, 실용주의를 표방하면서 출범한 정권이 보여준 것이 실용인지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진정한 실용이었다면 남북긴장관계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과 잃는 것을 계산하고 행동했어야 했지만, 그들의 지지기반인 반공세력의 굴레를 벗지 못했다. 물론 그들은 벗을 이유도 없었다. 반공세력이야 말로 그들의 핵심 세력일 뿐만 아니라 그들이 세뇌시켜 만들어 놓은 자식들이기 때문이다. 2mb는 국내의 좌우 갈등을 통해서 편가르기를 강화함으로써 야당이나 좌파 세력에 대한 반감을 더욱 자극하는 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에 2mb가 얻고자 했던 것은 자신들의 기득권의 회복이요 갈등과 분열의 극대화다. 그 원인은 언제나 좌파와 친북세력에게 돌려버리면 그만이다. 그를 추종하는 이재에 밝은 언론집단들이 그런 논리를 강력하게 뒷받침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우파들에게 공산당은 절대적인 공격의 대상이요. 두려움의 대상이다. 끝없이 몰락하고 있는 북한의 공산당이 과연 한국의 우파들에게 상대가 되는 것일까? 자만이 화를 부를 수도 있지만, 과잉반응은 쓸데 없는 국력낭비와 국론 분열만을 부를 뿐이다. 남남 갈등은 북한이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반공사상을 강력한 통치이념으로 하는 한국의 매국우파들이 책동하는 것이다. 이런 과잉반응은 한국전쟁을 겪은 국민들의 트라우마를 계속 자극할 뿐이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떤 이의 사상이나 생각 그리고 책동으로 무너질 수 있다라는 거짓된 공포를 무기로 국민들을 협박하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서 한국은 지난 10년간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만들어 놓았던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했을 물론이고 IMF이전보다 더한 사상 검증 국가로 회귀했다. 국방부의 불온 서적 선정과 경찰들의 전근대적 인권에 대한 인식과 폭력진압, 정권의 시녀로 변해버린 검찰 이 모든 것이 back to the 80's 다.


 한국의 매국우파들에게 자유민주주의란 돈을 잘 벌 수 있는 자유다. 언론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돈을 잘 벌 수 있는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자유다. 한국의 매국우파들이 벌이는 추잡하고 더러운 부정부패와 착취 행위를 감시하는 가장 매의 눈이기 때문이다. 정격유착을 통한 이익의 극대화와 시장의 독점력을 강화해서 내수가격은 높게 수출가격은 낮게 책정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하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란 보이지 않는 손이 지배하는 시장을 자신들의 보이는 손으로 지배하는 시장을 말하는 것이다. 눈에 띄게 시장을 장악하기에는 그들의 행위를 감시하는 눈이 너무나 많기에 그들은 매국우파들을 동원해서 경쟁을 강요한 천박한 시장주의라는 사상을 강력하게 주입하려 한다. 그래서 그들은 역사를 왜곡하고 교과서마저 자신들의 입맛에 맞추어 만들어 낸다. 경찰과 매국언론 그리고 검찰을 동원해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함과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운 세뇌 교육을 시작한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이자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KKK단이라는 인종차별주의 집단이 공공연하게 활동을 하고, 나치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공공연하게 활동하는 나라들을 보라. 링컨이 만들어 놓은 노예해방의 성과에 여전히 반대하는 집단이 존재하고 천박한 인종주의로 무장한 비이성적인 사람들이 존재하는 곳의 사상의 자유를, 전 세계를 전쟁의 공포로, 유대인들을 학살로 몰아세웠던 집단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곳의 사상의 자유를 보라. 이것이 자유민주주의가 아닌가? 법과 제도 그리고 정부가 그들의 사상을 검증하지도 처벌하지도 않는다. 단지 그 비이성적 집단들이 폭력적 행위나 위법적 행위를 행할 때만이 정부의 제제가 들어갈 뿐이다. 국가보안법이라는 사상검증의 법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이상한 잣대로 불온 서적을 버젓이 선정하는 이 나라가 과연 자유민주주의 국가인가? 대만의 공산당 창당을 보면서 부러운 것은 공산당이라는 당이 생겼다는 것이 아니라, 사상을 검증하고 반공주의로 국민을 세뇌하던 정부가 역사의 뒤 안으로 사라졌다는 것이 부럽다.

내 마음의 깊이는? "쿠션"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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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의 존재 이유는 절대자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기 위한 것이 아닐 것이다. 절대자라는 하나의 형상을 통해서 삭막한 현대 사회에서의 인간성 회복을 위한 바람이나 추구 때문일 것이다. 절대자라는 존재는 참된 인간상의 롤모델이자 추구할 목표이다. 절대자를 통해서 자신을 조금씩 반추하면서 자신의 내면의 인간다움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종교를 믿는 과정이자, 종교가 오랜 역사 속에서도 꾸준히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중심을 차지하는 이유일 것이다. 대부분의 종교에서 사랑은 그 근본 바탕이요, 그 사랑의 실천은 그 종교의 존경과 성스러움이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와 같이 한 종교는 많은 시간을 갈등과 반목 그리고 파괴를 가져다 주었다. 현재도 여전히 종교는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같은 종교적 기원을 가진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반목은 중세시대부터 지금까지도 지속 중이다.


 사랑의 가치를 가장 앞세우면서도 증오와 파괴를 부르는 이런 모순된 상황이 왜 발생한 것일까? 가장 큰 문제의 근원은 인간일 것이다. 종교를 통해서 자신의 인간성을 가다듬기 보다는 오히려 종교를 도구화해서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만족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저급한 인간성을 절대자라는 이름으로 무조건 용서하고 정당화해 버림으로써 스스로가 인간이기를 포기해 버린다. 스스로가 책임져야 할 자신이라는 존재 그 안에 자신 대신에 절대자가 대신한다. 그래서 자신은 인간이기 보다는 절대자의 꼭두각시가 되기를 더 열망한다. 그것이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이라는 거대한 무게를 훌훌 털어버리는 길이기에.


 종교에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밀어버리는 인간의 나약함은 자신의 가능성과 깊이를 알 수 없게 만든다. 그저 종교에 기복이나 빌면서 종교의 참된 의미마저 퇴색시킨다. 자신을 알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종교적 환상과 운에 자신의 인생을 맡겨 버린다. 외형 비교에만 열을 올리고 내면은 비교조차 하지 않는다. 자기의 마음을 자기가 조정하지 못하고 외부와 환경 그리고 절대자에게 맡겨버림으로써 내면은 존재 이유조차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스스로를 사회의 하나의 부속품으로 구속해버린다. 삶이 점점 고달퍼지고 힘들어지는 이유는 그런 구속이 우리를 더 억압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깊이를 재어봤는가? 남들과의 비교에 바빠서, 절대자의 맹신에 바빠서, 운에 자신의 인생을 맡겨버려서 그럴 여유조차 없지 않았던가? 인간관계를 위해서 상대방의 깊이를 재어보면서도 우리는 자신의 깊이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안치환의 노래 "소금인형"의 가사를 보면 소금인형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바다를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뛰어 들었다.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위험하고 신비한 바다는 큰 두려움의 대상인 반면, 자신의 내면은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데도 주저하는 걸까? 자신을 열열히 사랑한 나르시스처럼 자신의 깊이는 세상을 포용할 정도로 깊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는 걸까? 위험을 쉽게 감지할 수 있는 보이는 바다에 비해서 자신의 깊이는 보이지 않아서 인식조차 못하기 때문일까?


 "쿠션"이라는 책은 자신의 깊이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그로 인해서 자유를 얻는 방법을 전해준다.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바로"라는 인물을 통해서 비쳐지는 모습들이 언젠가 나의 모습일 수도 있고 평상시의 나의 모습일 수도 있기에 쉽게 공감하게 된다. 엄청난 유산을 남기고 돌아가실 할아버지를 가진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하지만 물질이나 돈 보다 더 가치 있는 있는 교훈을 "response + ability = Liberty"라는 공식으로 보여준다. 즉 물질에 종속되어버리고 사회와 환경에 종속되어버린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깊이 키우는 것, 마음의 쿠션을 키우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쿠션"은 자신의 삶의 자유를 향한 조금 길잡이로 스스로의 내면을 바라 볼 수 있는 조그만 손거울이 될 것 같다.


쿠션 - 10점
조신영 지음/비전과리더십

2008년 8월 13일 수요일

각개약진의 삶은.... "각개약진 공화국"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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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민들에게 애국심이란 무엇일까? 애국심이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말하는데, 이것은 국가가 국민에 헌신하고 국민이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상호작용이 일어나서 발현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한국민들은 국가를 사랑할까? 전쟁이 일어나면 국가를 위해서 기꺼이 싸우겠냐고 묻는 설문에 '예' 응답한 청소년의 비율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현상을 보면서 보수주의자들은 한탄하며 걱정을 한다. 그러다가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국가 대항의 행사에서 보여주는 애국심과 열정을 보면 고개가 갸우뚱하게 된다. 그 뿐인가 자신들은 마치 대단한 애국심이 있는 것 처럼 거창하게 설교하는 보수주의자들의 행태와 언행을 보면 과연 그들이 매국노와 무엇이 다른지 의심하게 된다.


 중국의 소설가 한 샤오궁은 "매국노의 공통된 특징, 즉 미제, 프랑스제, 호주제, 일제, 독일제, 러시아제 매국노의 공통성은 바로 권세와 이재에 밝다는 것이다. 그들은 단 한마디를 해도 목적이 분명하다. 높은 연봉, 구미행 여권, 최소한 한 끼의 정찬. 결코 학술적 양심이나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여 자기에게 득 없는 말은 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건달 짓을 해도 실속을 챙기는 그들이 권력자의 상식적 실수 하나를 바로잡기 위해 용감하게 손을 드는 일은 결코 없다."라고 했다. 뉴라이트라는 집단을 중심으로 한 이들의 행태는 매국노 그 자체다. 그들의 목적은 권세와 이재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국가의 발전과 선진화를 위해서라고. 거기에 어리숙한 국민들은 속는다. 그들은 권력자에 빌붙어서 자신들의 권세와 이재를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제거해간다. 그리고 그것이 애국심의 발로라고 말한다. 


 거기에 애국심과 마케팅이 융합하면서 쇼비니즘을 만들어내면서 애국심의 진정한 의미를 퇴색시키기까지 하고 있지만, 현재 한국민들은 마음 속에는 애국심이 차지하는 가치는 반공교육으로 만들었던 애국심과 별 차이가 없다. 지금도 여전히 반공이데올로기와 빨간색 콤플렉스를 벗어나지 못한 유아적 사고는 한국민 대다수의 정서를 지배하고 있다. 거기에 부와 돈에 대한 욕망이 가세하면서 국가경제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더해지면서 정치꾼들이 애국심을 이용해서 국민을 기만하고 속이기에는 더 쉬워진 세상이 되었다.


 경제꾼들은 이런 정치꾼들을 이용해서 자신의 잇속을 철저하게 챙기고 있다. 범죄를 저질러도 법은 그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다. 이유는 국가 경제 발전에 공헌했다는 것이다. 그 솜방망이 처벌도 오래가지 않는다. 권세와 이재를 유지하고 키우기 위한 정치꾼들의 욕망을 채워주면서 정치꾼들은 형이 제대로 집행되기 이전에 사면이라는 성은을 받는다. 그 이유는 국가 경제 발전에 공헌해 달라는 것이다. 거기에 우미몽매한 국민들은 애국심의 발로와 경제발전에 대한 과대한 망상으로 이러한 행위를 선한 것으로 믿어버린다. 아니 믿으려 한다.


 이러한 행위는 언제나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명목으로 행해지고 국민들은 그렇게 믿는다. 개인의 삶이 너무나 고달프고 힘겨워도 국가와 국민이라는 애국심 앞에서 불평 불만을 토로하지 못한다. 그것은 애국심이 없다는 소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은 혼자서 현실을 열심히 살아간다. 땀 흘린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해도 사회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무능함부터 탓한다. 사회와 국가는 애국심으로 보호해야 될 대상이라는 것이다. 국가라는 존재가 각 각의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라는 존재 그 자체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애국심이라는 이름은 개인에게 커다란 짐이 된지가 오래다.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애국심은 가슴을 띄게 만들고 공동체 의식을 느끼게 만들어 자신의 행위와 현실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어 버렸다. 강준만 교수는 이런 한국 사회의 모습에 대해서 "각개약진은 한국적 삶의 기본 패턴이다. 공적 영역과 공인에 대한 불신이 워낙 강해 사회적 문제조차 혼자 또는 가족 단위로 돌파하려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공적 영역과 공인에 대한 불신이 워낙 강하다"고 지적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애국심이라는 것은 이런 불신을 언제나 뛰어넘어 버린다.


  이와 같은 각개약진의 삶이 만들어 낸 것은 학연, 지연, 혈연이라는 단단한 연결고리다. 개인보다는 조그만 조직의 방패막을 필요에 대한 욕구로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병폐의 탄생 이유를 단번에 설명해버린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단지 각개약진의 삶에서 탄생한 것이라고 한 번에 단정하는 힘든 것이겠지만, 인위적으로 인맥 만들기에 열을 올리는 현대인들의 삶과 그 모습의 이유는 각개약진의 삶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삶의 패턴은 변할 가능성도 변할 이유도 없다. 세계화와 시장만능주의가 지배하는 한국사회에서 국가경제발전을 위한 것이라는 애국심 하나면 자신의 삶이 고달파도, 힘들어도 상관없다고 생각 할 테니까.

각개약진 공화국 - 8점
강준만 지음/인물과사상사



2008년 8월 10일 일요일

자신과 경쟁하는 힘. "자기암시"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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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한다. 타인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말인데, 과연 우리가 과연 사회적 동물 처럼 살아가고 있는 걸까? 관계라는 것은 개인보다는 협력과 협동 그리고 소통이라는 관점의 말일 텐데, 이런 관계보다는 경쟁을 위한 , 정복을 위한, 단지 먹이 피라미드를 구성하는 관계를 지칭하는 듯한 것이 현대사회가 아닐까? 학생들에게도 관계의 중요성보다는 경쟁의 중요성만을 가르치고, 동료와 친구라는 인관 관계보다는 경쟁상대라는 전투적 관점을 가르치는 것이 능사라고 생각한다. 이성 없이 본성으로 살아가는 야생의 동물 세계를 우리사회에 그대로 적용시키면서 그것이 발전과 진보를 위한 최고의 수단인 것 처럼 착각한다. 다윈에 의해 탄생한 다위니즘의 적자생존만을 맹신해 관계사회를 파괴하면서 먹이 피라미드를 단단하게 고착화 시킨다.


 결국에 이렇게 만들어진 치열한 경쟁사회와 계층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한 이들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그의 자손들도  그 고리 속에서 허우적대게 만들어 버린다. 누구에게나 이런 고리를 끊어버린 가위는 공부라는 것인데, 어제부터인가 이것이 돈이라는 놈의 파워게임이 되면서, 낮은 계층의 사람에게 그 가위조차 쉽게 구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상위 계층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계층을 단단하게 만들어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학군이 좋은 쪽으로 이동을 하고, 그로 인해서 좋은 학군지역의 집 가격은 천문학적으로 뛰어 버렸다. 이것이 한국이라는 나라의 독특한 상황만이 아니다. 폴 크루그먼은 "미래를 말하다"라는 책에서 이 문제를 언급하고 있고, 영국은 명문 사립학교를 보내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경쟁의 환경과 공간이 전 지구로 확대되면서 이러한 경쟁에 대한 과도한 압박은 현대인들을 짓누른다. 거기에 모기업총수가 주창하는 인재관이 사회전체 퍼지면서 노예를 사육하듯 사회시스템이 인재를 찍어내려고 한다. 미래는 창의적 인재가 필요하다고 그렇게 외쳐본들 암기와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한국사회는 그런 경쟁시스템을 최상으로 여긴다. 경쟁과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한국 청소년들의 자살률은 세계최고를 기록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소중한 생명들에 대한 고민을 볼 수가 없다. 여전 적자생존만을 외치면서 낙오자에 대해서는 어떤 동정이나 관심은 없다. 그저 낙오자란 주홍글씨만을 세기고, 남아 있는 아이들에게 낙오자의 끝이란 이런 것이라는 알려주기 위한 사례일 뿐이다.


 가끔은 경쟁의 상대가 주변의 타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뛰어난 스포츠 선수들이 승리를 거두고 하는 흔한 멘트겠지만,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자 경쟁상대는 자기자신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자기자신을 경쟁상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음을 물론이고, 스스로가 자신에 대한 인식을 바로 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단지 경쟁의 목표나 상대가 눈에 쉽게 보이기에 경쟁의 대상을 주변의 타인이나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인간을 선택하는 것 뿐이다. 어떤 면에서 실패나 좌절에 대한 분노의 방출구나 핑계거리로 자신보다는 타인이 더 쉽게 인식함은 물론이고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과의 경쟁에게 이긴다는 것은 쉽지 않다. 공부에서는 점수가, 스포츠에서는 개인기록이 쉽게 눈에 띄면서 목표를 쉽게 잡지만, 자신을 이기기 위한 기준은 무엇이고 무엇을 목표로 잡아야 할지 참 난감하다. 스스로의 깊이를 알 수 없기에 자신 속으로 과감하게 뛰어드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어떤 경우는 자신에 대한 경쟁의식이 자기혐오나 자기부정을 만들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는 다른 관점의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경쟁이라는 단어에 너무 집착해서 스스로를 경쟁의 틀 안에 가둘 필요는 없다. 에밀 쿠에는 100여년 전에 벌써 경쟁이라는 단어를 넘어서 자신을 극복하는 법을 발견했다. "자기암시". "시크릿"이라는 책을 봤다면 알겠지만, 그것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자기의 상상의 세계에 긍정적인 신호를 지속적으로 주입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에밀 쿠에는 경쟁이라는 단어보다는 격려와 긍정의 힘을 발견한 것이다. 자신에게 긍정적 상상의 신호를 줌으로써 마음 속에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라는 에너지를 공급하게 된다. 그것이 자신을 이기는 가장 중요한 힘이요 추진력인 것이다.


 존 토드의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마음이며 마음을 결정하는 것은 습관이다."라는 말을 했는데, 그 습관이라는 것이 긍정적 자기암시다. 에밀 쿠에는 " 원하는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해 준다고 믿는 '의지'를 우리는 자랑스러워 하지만 사실 우리는 상상의 조종을 받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상상을 다루는 법을 배울 때 비로소 꼭두각시 놀음을 멈출 수 있다."고 했다. 꼭두각시가 아니라 자신의 상상을 다루는 습관을 들이고 스스로의 인생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긍정적인 상상으로 자신을 변화시켜보자.

자기암시 - 6점
에밀 쿠에 지음, 김수빈.최준서 옮김/하늘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