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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1일 목요일

매슬로의 욕구5단계설과 뱀파이어들. 영화 "데이브레이커스"를 보고.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욕구를 5단계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1단계 욕구는 생리적 욕구(먹고, 자는 등), 2단계는 안전에 대한 욕구(추위, 질병, 위험 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3단계 욕구는 애정과 소속에 대한 욕구, 4단계는 자기존중의 욕구(소속단체의 구성원으로 명예나 권력을 누리려는), 5단계 욕구는 자아실현의 욕구(자신의 재능과 잠재력을 발휘해 자아성취를 이루려는)로 설명한다. 아래 단계의 욕구가 성취되면 더 높은 단계의 욕구를 성취하려는 행동을 하게 된다고 한다.

 

 영화 "데이브레이커"는 매슬로의 욕구5단계를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슬로의 설명처럼 각각의 단계를 성취하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작품이 아닐까?  그래서 영화 초반에 인간에게서 혈액을 채취하기 위해서 가둬 놓은 공장식 시설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벌거벗은 채, 움직이지도 못하게 자리에 앉아있는 모습은 생존을 위해서 가축을 공장식 사육하는 우리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 같다. 좁은 닭장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인간에게 계란을 공급하는 닭의 모습일 생각나게 만들고, 좁은 우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먹고 살만 찌우는 돼지들이 생각난다. 그리고 강제로 임신했다가 출산하자마자 기계로 우유를 흡입 당하는 젖소들이 생각난다.

 

 우리 인간에게 닭과 돼지, 그리고 소가 1단계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중요한 하나의 요소이듯, 뱀파이어에게 인간은 생존이라는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필수요소이다. 종이 다른 닭과 돼지 그리고 소 같은 동물들이 인간에 의해서 마구잡이로 사육당 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이, 처지가 바뀌어 인간이 누군가에게 사육 당하는 모습을 공포나 충격은 쉽게 설명할 수가 없다. 인간에 대해서는 연민을 느끼고 생명을 존중하면서, 다른 종(가축과 같은)에 대해서는 생명에 대한 존중이나 연민 없는 것을 보고 피터 싱어는 "종 차별주의자"라고 했는데, 영화를 통해서 그런 우리의 모습을 대면하게 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뱀파이어라는 존재는 매슬로의 2단계 욕구를 보여준다. 샘 닐이 연기한 찰스 브롬리를 통해서 2단계 욕구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암으로 인해서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던 찰스 브롬리가 뱀파이어가 되면서 2단계 욕구를 충족시킨 것이다. 이 영화의 뱀파이어는 추위와 질병이라는 위험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이다. 비록 뱀파이어의 약점인 햇빛에 대한 위험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 이외의 다른 위험적인 요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을 사냥하고 지배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위험은 거의 존재하지 않게 된다.

 

 3단계와 4단계 욕구는 에드워드 댈턴(에단 호크)와 그의 동생 사이에서 벌어진다. 형제간의 갈등과 화해를 통해서 3단계 욕구를 보여줌과 동시에 군인인 에드워드의 동생을 통해서 4단계 욕구에 대한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러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변해가는 동생의 모습을 통해서 내면에는 명예나 권력에 대한 욕구를 뛰어넘는 선함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영화 속에서 욕구의 변화가 가장 입체적으로 변하는 존재가 에드워드의 동생이다. 그를 통해서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누구나 욕구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내면 어딘가에는 욕구를 뛰어넘을 수 있는 또 다른 힘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가장 높은 5단계 욕구에 이른 인물은 에드워드다. 뱀파이어면서 생명에 대한 존중은 물론이고, 자아실현에 대한 완벽한 욕구를 가진 존재다. 회사의 중역이나 연구원들이 1단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혈액 대체재 개발에 매진할 때, 그는 생명에 대한 높은 가치를 바탕으로 자신의 재능과 잠재력을 발휘한다. 나중에 치료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의 신체에 직접적으로 실험을 하면서 헌신하는 이유도 바로 5단계 욕구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인간들에 대한 사명감을 가진(5단계 욕구에 다다른) 몇 몇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존재들은 4단계 이하의 욕구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보여준다. 특히 인간혈액 부족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사태를 통해서 대부분의 존재들이 1단계 욕구 수준에서 머무를 수 밖에 없음을 영화전반에 보여준다. 가끔 1단계에서 자유로는 몇몇은 종국에 돈에 대한 욕구로 귀결됨으로써 인간은 끝없는 욕구를 가진 탐욕스러운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현실 속에 돈에 대한 탐욕과 욕구로 인간생명에 대한 가치를 폄하(생존을 외치던 용산의 희생자들을 향해서 돈에 대한 탐욕 때문이라는 식으로 매도하는 이들)하는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허구로 창작되어진 작품을 더 현실적으로 보여지게 만드는 중요한 작용을 하는 것 같다.

 

2010년 3월 20일 토요일

은빛연어의 미투데이 - 2010년 3월 20일

이 글은 은빛연어님의 2010년 3월 20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화해와 통합을 위한 여정. 영화 "인빅터스"를 보고.....

 

 개인적으로 스포츠를 정치에 이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국민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려는 저열한 정치행위 중에 하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선수 개개인의 피와 땀 그리고 그 선수를 도와주는 가족과 코치 그리고 기타 여러 사람의 결과물이 합쳐져서 나온 경기의 결과를 가지고 마치 그것을 자신의 지도력 때문이라고 선전해대는 그런 인간들을 보노라면 역겹기 그지 없다. 특히 mb같은 인간이 그렇다. 이런 인간들은 국가대항 스포츠 경기를 가지고 국민들의 화합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저열한 생각을 한다.

 

 모든 국민이 한 마음으로 뭉쳐서 국가대표를 응원하는 것을 보면 그것으로 사회 전반에 화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분명 스포츠 경쟁으로 많은 국민들이 화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그런 화합된 모습을 다른 분야나 사회적 통합으로 이루어 가기 위해서 더 중요한 것을 망각한 것이다. 한 손에 권력을 다른 한 손에 돈을 쥔 폭압적인 권력자가 외치는 화합이란 다름 아닌 굴복을 뜻하는데, 인간으로써 가지는 존엄성 앞에서 누가 쉽게 굴복을 할 것인가?

 

 그런 인간은 입으로 화합을 이야기하면서도 굴복을 강요하거나 아니면, 화합이라는 뜻을 모르고 함부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건 바로 경쟁이라는 신앙적 사상에 매몰 된 인간이 보여주는 단적인 특징이다. 상대를 이겨 눌러서 자신의 말에 복종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경쟁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화합이라는 말로 미화했다고 한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화합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스포츠를 활용한 저열한 화합을 추구하는 권력에 따르지 않는다. 국가 대항전이 끝나면 그것으로 끝인 것이다. 그 동력이 사회적 통합이나 화합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만델라는 이 영화를 통해서 스포츠를 통한 화합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사실 남아공의 경우 흑백으로 불리는 인종 갈등이 극에 다른 곳이다. 지금도 인종 분쟁이 발생하고 있는 곳이기는 하지만, 만델라가 당선되기 전후의 상황을 보면 우리나라의 맹목적인 지역감정 이상의 잔인함을 보여준다. 영화에서는 초반부에 만델라가 탄 차가 지나갈 때 한쪽 편의 흑인 아이들은 환호하고 반대편의 백인 아이들은 신기하다는 듯이 보며 코치에게 만델라는 테러리스트라는 말을 듣는 장면을 통해 남아공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정치적 상황 속에서 당선된 만델라의 시대적 과제는 이렇게 분열된 사회의 통합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아무리 만델라가 화해의 제스처를 한다고 해도 쉽사리 화해와 통합이라는 시대적 정신은 쉽게 구현되지 않는다. 반대로 자신을 지지했던 흑인들은 지난 핍박을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강해서 오히려 대결적 상황은 확대될 수 상황이 크다. 여기서 만델라는 스포츠를 통한 방법을 선택하게 되고 영화는 그 과정을 찬찬히 보여준다. 물론 여기까지는 mb나 저열한 독재자들이 추구하는 수법과 동일하다. 결국 만델라도 스포츠를 활용한 화해와 통합이라는 잘못된 방법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만델라는 실천하는 지식인이었다. 그는 스포츠만으로 국민들을 현혹시키는 술수를 쓰지 않았다. 영화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스포츠를 통한 화해와 통합이 아니라, 만델라가 화해와 통합을 위해 스포츠 외에도 어떤 일들을 하느냐다. 만델라는 Mb처럼 온갖 권력과 돈을 마구 휘두르면서 화해와 통합을 외치지 않았다. 만델라는 스스로 자신의 권위나 권력을 낮추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측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호원에 백인을 포함시킨 것이나, 흑인들에게는 백인 억압의 상징인 럭비팀의 유니폼이나 이름을 함부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남겨둬 백인들의 반감을 희석시킨다. 결국 만델라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기 보다는 내려놓는 방법으로 화해와 통합이라는 시대적 화두에 대해서 응답한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만델라의 진정성과 럭비를 통한 화해와 화합의 과정은 진정성을 보여진다. 뿐만 아니라, 흑백 경호원들의 융화과정은 남아공의 갈등과 화해과정의 축소판으로 보여줌으로써 뜬구름 잡는 것과 같을 수 있는 화해와 통합이라는 것을 쉽게 보여준다. 스포츠를 이용한 정치 행위에 반감을 가진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 만델라의 정치적 선택과 행위를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이 영화는 스포츠를 통한 화해와 통합이 아니라, 원수를 사랑한 만델라의 관용적인 정신을 더 주목해서 봐야만 스포츠를 활용한 정치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원수를 사랑한 만델라라는 이미지를 럭비팀 주장이 만델라가 수감되었던 교도소를 체험하는 과정을 통해서 더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결국 이 영화는 스포츠를 통한 화해와 통합의 과정이 아니라 권력을 내려놓고 원수를 용서와 관용으로 대한 한 인간이 보여준 여정을 스포츠를 통해서 보여진 것일 뿐이다. 영화 전체적으로 본다면, 특정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럭비라는 스포츠, 만델라, 경호원 같은 다양한 이야기를 한번에 담으려고 해서 그런지 그다지 큰 매력을 풍기지 않는 것 같다.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이름에는 못 미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모자란 작품이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평범한 작품인 것 같다.

 

2010년 3월 18일 목요일

"웃기기만 하면 만족"이상의 영화. 영화 "육혈포 강도단"을 보고

 

 솔직히 말해서 시사회가 아니면 볼 생각이 없었던 영화다. 이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세 명의 배우 나문희, 김수미, 김혜옥 모두 연기 잘하는 배우들로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연기자들이기는 하지만, 극장에서 돈을 주고 찾아서 볼만큼 애정지수도 높지 않다. 그렇다고 이 영화의 감독에 대한 기대치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아니면 이 영화가 가지는 소재나 시놉시스가 그렇게 매력적이라면 모르겠지만, 호감이나 관심을 가지기에는 너무 평범하다.

 

 보통 헐리우드의 블록버스터 같은 경우는 예고편에 모든 것을 쏟아 부어 개봉 첫 주에 본전을 뽑도록 관객들을 낚시질 하는데, 이 영화의 예고편 또한 낚시 예고편이 되기에는 많이 부족한 작품이다. 같이 극장에서 이 영화의 예고편을 봤던 내 친구는 "솔직히 이런 영화 왜 만드는지 모르겠다."라고 했을 때 "투자자나 제작자들도 수익이 난다고 생각했기에 만들게 된 것 아닐까?"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 친구의 말에 충분히 공감이 갔다. 그 만큼 기대치가 없었기에, 같이 이 영화를 보러 간 친구와 나는 그냥 재미있게 "웃기기만 하면 만족"한다는 영화에 대한 조그만 기대치를 설정하고 관람을 하게 되었다.

 

 "웃기기만 하면 만족"이라는 원래부터 낮았던 기대치 때문인지 몰라도 이 영화는 예상 외로 괜찮은 느낌을 남겨준다. 보통 이런 영화들 "조폭 마누라"나 "두사부일체"같은 영화들을 보면 배우들의 코믹연기에만 의존해 웃기기에 급급하고, 나중에는 억지 감동을 만들어내는 흔해 빠진 공식을 많이 따른다. 그러다 보니 영화 전체의 짜임새나 이야기의 완성도는 상당히 떨어지고 그냥 재미 있다는 생각만 남기게 마련이다.

 

 이 영화도 배우들의 코믹스러운 연기, 특히 김수미의 말빨에 많이 의존해서 영화를 재미있게 이끌어간다. 거기에 아주 여성스럽고 공주 같은 캐릭터를 구축한 김혜옥의 연기까지 더 해지면서 코믹적 요소를 잘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 나문희가 중심을 잡아 주고 있어서, 영화의 핵심인 이야기라는 끈을 끈질기게 놓지 않고 있다. 배우들의 코믹적 연기로만 매몰될 수 있는 영화를 세 명의 배우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이야기까지 균형있게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감독은 부패형사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코믹으로만 흐를 수 있는 영화의 전체적인 균형을 유지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오히려 그 캐릭터가 영화의 균형을 파괴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 같다. 할머니들이 강도단이 될 수 밖에 없는 주변환경을 아주 개연성 있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부패형사로 노렸던 효과들을 달성했다고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존재가 영화의 균형감을 유지하는데 오히려 좋지 않은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영화는 끝으로 가면서 감동이라는 코드로 흘러간다. 비슷한 류의 영화들이 가지는 공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 같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 감동코드가 아니라 공감이 가는 이유는 영화 전반에 깔려있는 설정을 활용한 감독의 영리한 연출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이 이 영화는 평범한 코믹 영화라는 한계를 넘어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인상을 남긴다. "웃기기만 하면 만족" 이라는 조그만 기대치를 넘어서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이야기가 조화를 이룬 잘 만들어진 코믹영화를 만난 것 같다.

 

2010년 2월 28일 일요일

사랑 그 다양함에 대한 영화. 영화 "발렌타인데이"를 보고.

 

 올해는 2월 14일이 설날과 겹쳐서 그런지 발렌타인데이 기분이 나지 않습니다. 뭐 그렇다고 솔로인 저 같은 인간이 발렌타인데이에 받을 초코렛도 없습니다만. 그래도 이 날은 사랑이 넘친다고 해야할까요, 길거리에 커다란 초코렛 바구니나 선물 상자를 들고 가는 사람들만 보는 것 만으로 사랑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날이니까요. 어떤 사람들은 기업의 마케팅에 젊은 사람들이 놀아난다고 개탄하기는 하지만, 1년에 하루 정도야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설날과 겹치는 바람에 기분은 나지 않지만, 그래도 이 영화가 개봉하면서 그나마 묻힐 번한 발렌타인데이의 기분을 살려주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제목처럼 발렌타인데이를 겨냥한 시즌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조잡하게 만들어진 영화가 아닙니다. 화려한 출연진의 면목만 보고도 충분히 눈으로 즐길 수 있을 정도입니다. 거기에 "귀여운 연인"으로 로멘틱 코메디 장르의 연출에 재능 있는 게리 마셜이 감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발렌타인데이 시즌 영화로 즐기기에 충분한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한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설날과 겹친 발렌타인데이의 효과 때문인지, 아니면 같이 걸린 다른 영화의 영향력 때문인지, 이상하게 우리나라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조금은 안타깝습니다.

 

 영화를 살펴보면,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출연하는 배우들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한 편의 영화에 단독 주연으로 나서도 모자람이 없는 배우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배우들을 한 영화에서 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즐거움을 주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은 저의 여신인 제시카 알바의 역할은 정말(눈물 밖에 나지 않습니다.)…. 아무튼 출연하는 배우들이 빵빵한 만큼 영화 속에 담긴 이야기 또한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복잡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냥 스크린에 흘러가는 영상을 눈으로 따라가는 것 만으로 충분히 전체적인 이야기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생각할 것 없이 그냥 느낄 수 있는 영화입니다.

 

 어떻게 보면 지루할 수 있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을 보면, 사랑만큼 복잡하고 정의 내리기 어려운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만큼의 사랑 이야기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까요? 이 영화에서 나오는 사랑의 이야기는 대략 세봐도 11가지 정도가 됩니다. 그 이야기의 공통점이라고는 한가지 사랑을 주제로 한다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대도 쉽게 공감을 하면서 영화를 보는 이유는 모두가 사랑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기에 그 환상을 충족시켜주는 듯한 이런 영화에 공감하면서 볼 수 있다는 것도 있겠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결국은 하나의 마음에서 나온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낯설지 않고(동성애 이야기는 조금 낯설기는 합니다만), 쉽게 감정 이입을 시킬 수 있게 만듭니다.

 

 많은 배우들이 나오다 보니 짧은 출연 시간 동안 연기력을 보여줄 한 여유는 없습니다만, 그래도 이 영화를 재미있게 만드는 두 명의 배우가 존재합니다. 망가지는 배역임에도 불구하고 보는 그런 망가짐 자체가 사랑스럽게 보이도록 만들 정도 입니다. 금전적 어려움 때문에 폰섹스 알바를 하는 앤 해서웨이와 안티 발렌타인데이를 주장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제시카 비엘의 연기는 이 영화의 또 하나의 재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