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7일 금요일

호불호가 분명할 영화. 영화 "지.아이.조-전쟁의 서막"을 보고.

 

기술의 발전이 낳은 눈부신 영상은 애니메이션으로만 볼 수 있었던 상상의 세계를 스크린에 펼쳐 보인다. 영화의 내용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그런 상상의 세계가 커다란 스크린으로 펼쳐진다는 이유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트랜스포머가 혁신적인 이유는 그런 판타지를 완벽하게 구현했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단순성이나 유치함은 뒤로하고 어린 시절 로봇에 대한 상상을 하며 자라온 남자 아이들에게 그 판타지의 실현은 놀라울 뿐이다. 영화 지아이죠도 상상 속의 세계를 멋지게 보여준다. 트랜스포머처럼 혁신적이다라는 느낌은 없지만, 그 나름의 가치로써 멋진 영상의 영화다. 반면 다른 곳에 높은 기대치를 가지고 있다면 오히려 실망할 영화일 것이다.

 

 이 영화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을 영상이다. 이미 예고편으로 익숙한 에펠탑 폭파신은 그렇게 신선하거나 놀랍지는 않지만, 큰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폭파신은 작은 TV화면에서보다 더 긴장감을 유발하고 더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 장면은 이 영화의 최고의 장면이 아니다. 그 이전 장면, 파리 시내 추격신 장면은 이 영화의 진정한 진수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입체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롤러 코스터를 타는 듯한 스릴과 긴장감은 현실감은 영화 "메트릭스"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고속도로를 역주행하는 장면과 비슷한 느낌과 강한 인상을 준다. 긴장감과 스릴감이 커서 인지 파리 시내 추격신이 끝나면, 긴장이 확 풀리면서 시원한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런데, 이 영화의 매력적인 영상은 거기서 더 이상 발전을 하지 못한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있는 또 하나의 추격전은 파리시내 추격신을 뛰어넘지 못한다. 아니 더 조잡해 보이는 영상이 거대한 제작비를 들인 영화가 아니라 저예산 영화의 유치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 속에서 펼쳐지는 추격전이, 도시 도로 한 복판에서 벌어지는 긴장감과 현실감에 비해 모자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 이해한다고 쳐도. 현실감이 떨어지는 추격전은 영화의 완성도를 떨어뜨린다.

 

 더 큰 문제는 영화 속 인물들의 연관관계를 설명하는 부분이 너무 미약하다는 점이다. 2시간이라는 시간의 한계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의 과거와 풀어 보여주는 것이 힘들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그 설명과정이 관객들을 배려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더 닥터"라는 인물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인과관계의 설명이 너무 부족하다. 그냥 과학에 심취해서 영혼을 판 과학자라는 판에 박힌 듯한 설정은 유치할 뿐이다.

 

 이병헌이 연기한 스톰 쉐도우의 어린 시절 장면은 더욱 코메디다. 일본을 배경으로 한 장면에서 튀어나오는 어색한 한국어는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감독이 이병헌을 배려해서 그렇게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영화의 사실성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뿐만 아니라, 스톰 쉐도우가 악인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비약이 심해서 쉽게 공감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이병헌은 스톰 쉐도우를 매력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놈놈놈"에서 "나쁜 놈"을 연기한 모습이 조금은 묻어나기는 하지만, 이병헌의 출현 분량을 고려해 본다면, 그가 연기한 스톰 쉐도우는 가장 매력적으로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이 영화는 장점과 단점이 분명한 영화다. 어떤 관점을 가지고 영화를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후불호가 분명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보여준다. 누군가에게는 단점이 너무 클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단점이 너무 작을 수도 있다. 영화를 보는 관점이 작품성이냐 오락성이냐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는 작품이다. 원래 오락성 관점에서 만들어진 영화기 때문에 오락영화로 즐긴다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2009년 8월 2일 일요일

이루지 못한 어린 시절 꿈을 기억하며. 영화 "업"을 보고.

 

성인이 되어 버린 지금, 어린 시절 꾸었던 꿈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혹시나 그 꿈을 기억하고 이룬 사람이 몇몇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으면서 그 꿈을 조금씩 조금씩 지워간다. 스스로 지우개를 들어 머리 속 꿈에 대한 기억을 문지르지 않지만, 삶이 주는 고단함과 현실이라는 장벽, 그리고 시간이 만들어 내는 망각이라는 인생이 만들어낸 지우개들로 어린 시절 그 꿈들을 하나하나 지워버린다. 그렇게 하나하나 꿈을 지워버리고, 지워진 그 자리에 삶의 무게와 고통으로 채워간다. 현실에 안주하고 순응하며, 매일 같은 일상과 같은 패턴으로 반복적인 삶을 살아간다. 인생이 만들어내는 뫼비우스 띠에 빠져버린다. 삶은 지루하고, 새로운 것은 짜증나며, 새로운 만남과 인연이라는 것은 이제는 힘겹고 두려운.

 

영화 "업"의 주인공 "칼"은 바로 그런 우리주변에 지루한 삶을 반복해서 살아가는 나와 당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영화의 초반부에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점점 나이 들어가는 "칼"의 모습을 빠르게 보여주는데, "칼"이 어떻게 어린 시절 꿈들을 이루지 못하고 점점 기억 속에 지워가는지 묘사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슬프면서도, 내용적으로나 영상적으로도 최고의 장면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장면들은 어린 시절 꿈들을 조금씩 지워가는 것은 칼이 아니라 인생의 복잡함과 불확실성들이 만들어낸 다양한 사건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데, 누구나 살면서 자신의 인생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경험하고 알게 되는데, 그런 과정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이 생각대로 대지 않아 좌절하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헌사랄까? 헌사라는 표현이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꿈을 잃어가는 사람들, 삶의 고단함에 힘겨워 현실에 그저 안주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인생이나 삶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 장면이 그렇게 슬픈지도 모르겠다. 인생이나 삶이 만들어낸 좌절이나 실패를 그렇게 감싸 안아 주면서도 이해해주니 말이다. 하지만, "칼"과 우리가 다른 것은 "칼"은 자신의 옆에서 어린 시절 꿈을 공유하고 상기시켜주던 사람이 곁에 있었고,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꿈을 자신만의 기억 속에 둔다는 것. 그래서 "칼"은 어린 시절 꿈을 잊을 만하면 떠올리면서 이루기 위해서 노력을 꾸준히 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꿈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지우지 않고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늙어 버린 "칼"은 나이와 삶이 만들어낸 현실이라는 장벽 앞에서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거의 포기한 상태가 되어 버린다. 삶과 세상을 알아가면서 만들어지는 두려움 앞에서, 넘어져도 일어나 걸음을 때던 걸음걸이를 배우던 그 시절의 용기는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칼"은 자신의 삶의 과거와 현재의 관성적인 삶을 유지하려고 할 뿐이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행동에 나서게 되는데,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개발의 논리 앞에서 자신의 소중한 집이 헐릴 위기에 처하면서다. 요양원이라는 곳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삶에 대한 두려움과 지난 인생에 대한 기억과 추억이 사라진다는 절망감에서 그는 마지막 도전을 결심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결정을 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관성적인 삶에 대한 껍질을 완전히 깨지 못한다. 그래서 여행 중에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틀과 삶의 굴레 안에서 행동을 하게 된다.

 

이와 대조적인 인물이 있다면 "러셀"이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 거침없이 실천하는 8살 꼬마다. 새로운 만남이나 인연에 대해서 아주 열린 자세를 보인다. 고집불통에 퉁명스런 "칼"의 태도에도 쉽게 실망하지 않는다. 그래서 쉽게 누구와도 친구가 되려고 노력하고, 친구가 되어 버린다. "칼"이 가지고 있는 인생의 굴레와 틀을 깨어버리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캐릭터다. "칼"의 인생에 공감하면서 지워버린 어린 시절 꿈들을 조금씩 생각한다면, "러셀"의 용기에 삶에 대한 도전정신을 통해서 쉽게 포기하고 좌절했던 지날 기억들을 조금씩 떠 올리게 된다. 그러면서 지금 용기 없이 현실에 안주하며, 현재의 삶의 굴레를 그저 맴돌기만 하는 자신을 느끼게 만들어 준다.

 

여기에 한 명의 재미있는 인물이 추가 된다. "찰스 먼츠"라는 인물이다. "칼"에게 어린 시절 꿈을 심어주었던 인물이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 평생을 바치는 사람이다. 꿈을 포기하면서 살았던 "칼"과 대비되는 인물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찰스 먼츠"라는 인물이 쫓은 것은 다른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칼"과 "찰스 먼츠"는 꿈과 욕망이라는 대치점을 형성한다. "칼"이 현실에 안주하고, 순응하며 꿈을 이루지 못한 평범함 인물이라면, "찰스 먼츠"는 욕망이라는 것이 만들어내는 추악함과 악랄함을 보여준다. 욕망을 꿈으로 착각해서 추악한 방법으로 그것을 이루려는 사람들이 만연한 황금만능주의 사회의 대표적인 인물이 "찰스 먼츠"인 것이다. 겉으로는 모험과 탐험이라는 아름다운 꿈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결국에 명성과 돈 뿐인 그런 인물이다. 이 인물을 통해서 꿈과 욕망을 혼동하며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둘의 대결에서 "칼"은 자신의 삶의 껍질을 깨지 못하면서, 꿈을 이루기 위해 모험은 시작했을 뿐, 꿈이라는 목표만을 추구한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과 그 과정에서 대면하는 환경과 관계들이 가져다 주는 영향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계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칼"의 모험이 가져다 주는 것도 전혀 새롭지도 즐겁지도 않는 것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결국 "칼"은 스스로 그 껍질을 깨면서 삶의 다양함이 주는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혼자 살던 고집불통 늙은이는 꿈을 이루었다는 성취감 보다, 그 과정에서 얻은 관계와 용기로 더 행복한 삶을 만들어 간다.

 

영화 "업"은 어린 시절의 꿈과 그 꿈을 잊어가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꿈에 대한 기억을 떠 올리게 만들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라는 용기를 준다. 하지만, 영화는 마지막에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사실 꿈이라는 것도 삶이 행복하자고 하는 게 아니던가? 그렇게 영화 "업"은 꿈과 행복에 대한 관계에 대해서 물음을 던진다. 꿈을 이뤄서 행복한가 아니면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관계와 새로운 도전 자체가 행복을 만들어 주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그렇게 보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꿈이 있어 행복하다"가 아니라 "꿈이 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관성적인 삶에 도전하고, 그 과정의 모든 것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 들이기에 행복하다."가 아닐까?

 

2009년 7월 27일 월요일

따뜻한 인간을 묘사한 영화. 영화 "해운대"를 보고

 

 개인적으로 올 여름 한국 영화 중에서 가장 기대하던 작품 중에 하나가 "해운대"다. 내 고향이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 명소인 해운대가 배경이라는 것, 그리고 인간에 대한 따뜻한 묘사가 매력적인 윤제균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이 영화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소재로 삼은 쓰나미는 그렇게 큰 기대를 하기에는 한국의 제작비 여건이나 여러 인프라 등을 고려했을 때 특수효과나 CG는 영화의 중요 요소가 될 가능성은 많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기본적으로 영화 속에 사람들의 이야기가 영화의 매력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윤제균 감독도 인터뷰나 제작 발표에서도 강조했듯이, 영웅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화 속에 담았다고 했던 만큼 해운대라는 영화의 주요 관람 포인트는 해운대를 비롯한 부산의 아름다운 풍경이나 CG가 아니라 영화 속 인물들이다.

 

 이 영화는 세 커플들이 이야기를 풀어간다. 강연희(하지원) 최만식(설경구) 커플, 이유진(엄정화) 김휘(박중훈) 커플, 최형식(이민기) 김희미(강예원) 커플들이 중심을 이루면서 몇 몇 주변인물들이 영화의 내용을 이끌어 간다. 그런데 최형식, 김희미 커플들이 만들어주는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제외하면, 가장 중심이 되는 강연희, 최만식 커플과 이유진, 김휘 커플의 이야기는 너무 전형적이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윤제균 감독의 전작 "1번가의 기적"에서도 개인적으로 하지원, 임창정 커플의 이야기보다 이훈과 강예원 커플의 이야기를 좋아했었는데 이번 영화에서도 중요 커플들 보다는 그들의 이야기가 더 매력적이다.

 

 영화 속에서는 강연희, 최만식 커플이 가장 복합적인 사연을 가지고 있고, 그 만큼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커플이다. 하지만 코믹적 이미지를 너무 살리려고 했는지 설정이 조금은 과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감독의 전작에서도 그런 과도한 코믹설정이 남발하고 있기에 웃으면서도 조금은 불편했는데, 이번에도 조금은 과도한 설정이라는 느낌이 많이 든다. 야구장의 추태 장면은 왜 그렇게 민망스럽기까지 한지. 개인적으로 롯데 자이언츠의 팬으로써 그런 추태를 보여주는 사람들을 실제로 많이 보아왔기에, 그런 추태적인 장면이 영화 속에 담겼다는 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 속 최만식의 추태가 현실 속에 있음에 느끼는 민망함이랄까?

 

 이유진과 김휘 커플은 위기의 상황에서 직면한 사람들이 마지막에 보여주는 화해와 용서를 보여주는 커플이다. 너무나 남발되는 설정의 커플이랄까? 대부분의 재난 영화에서 이런 커플들을 많이 보여지는데, 그런 설정을 벗어나지 않아서 조금은 아쉬운 것 같다. 그런 아쉬움을 빼더라도 인간의 모습을 희망적으로 그리는 감독의 특성을 살려서, 죽음으로 완성된 화해와 용서를 삶을 통해서 또 다시 완성하는 화해와 용서로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연희와 만식을 통해서 새로운 시작과 희망이라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실패를 극복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커플의 이야기인 유진과 희 커플의 새로운 시작도 나름 다른 매력이 있지 않았을까?

 

 앞에서도 말했지만, 영화 속 커플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커플은 형식과 희미 커플이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캐릭터들을 본뜬 듯해서 신선함이라는 측면에서는 떨어진다. 신선함을 떨어지기는 하지만, 다른 커플에 비해서 가장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선사한다. 마지막에 가장 슬픈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도 이 커플이다. 하지만, 그 작위적인 장면은 그렇게 슬픔을 야기하지 못하는 것 같다. 차라리 "킹콩을 들다"에서 평론가들이 신파적이라고 지적했던 부분이 더 슬프게 느껴진다. 그 슬픈 장면을 야기하는 작은 사건들이 과도한 설정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조금만 비틀어서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슬픈 사건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킹콩을 들다"에서 이범수의 죽음은 갑작스러운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형식과 희미 커플이 만들어내는 슬픔은 영화의 장면을 위해 만들어진 작위적인 냄새를 지울 수가 없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영화 속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주인공들이 아니라 김인권이 연기한 오동춘이다. 윤제균 감독의 영화를 보면 특별하게 악한으로 그려지는 인물이 없고, 그 악함에도 내면에 따뜻함이랄까 선한 면을 다 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 속에 그런 인물이 바로 오동춘이다. 만식의 아들을 이용해서 앵벌이나 하고, 직업도 없는 백수일 정도로 찌질한 인물이지만, 오동춘도 영화의 마지막에는 내면의 선함을 보여준다. 만식의 아들과 어머니를 위험 상황에서 챙기기도 하고 나중에는 비록 다른 사람에 밀려서 바다로 들어가기는 하지만 사람의 목숨을 구해낼 정도로 내면은 착하고 선한 인물인 것이다. 김인권도 오동춘이라는 인물을 아주 잘 그려냈을 정도로 영화 속에서 감초 같은 연기를 선보인다.

 

 영화는 이런 인물들의 묘사로 인해서 초반은 조금은 지겹다. 후반부에 쓰나미가 밀려오면서 영화의 재미를 본격적으로 만들어 낸다. 후반부의 긴장감과 본격적인 인물들의 묘사는 충분히 영화의 재미를 더 해준다. 하지만,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조금은 민망했다. 내가 영화 속에 나온 듯한 쑥스러움이랄까? 과도한 부산 사투리의 사용도 쑥스럽게 만들고, 앞에서 이야기한 야구장의 모습도 그렇다. 사실 부산 사람들 중에서 그렇게 과도하게 사투리를 구사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부산 살면서 익숙하다고 생각하는 사투리임에도 불구하고 몇몇 사투리는 무슨 뜻인지 한참을 생각해야 했을 정도면 설정을 너무 과하게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해운대"는 인물들에 대한 감독의 따뜻한 묘사와 시선 그리고 감독의 고향 부산에 대한 애정까지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