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13일 수요일

각개약진의 삶은.... "각개약진 공화국"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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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민들에게 애국심이란 무엇일까? 애국심이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말하는데, 이것은 국가가 국민에 헌신하고 국민이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상호작용이 일어나서 발현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한국민들은 국가를 사랑할까? 전쟁이 일어나면 국가를 위해서 기꺼이 싸우겠냐고 묻는 설문에 '예' 응답한 청소년의 비율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현상을 보면서 보수주의자들은 한탄하며 걱정을 한다. 그러다가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국가 대항의 행사에서 보여주는 애국심과 열정을 보면 고개가 갸우뚱하게 된다. 그 뿐인가 자신들은 마치 대단한 애국심이 있는 것 처럼 거창하게 설교하는 보수주의자들의 행태와 언행을 보면 과연 그들이 매국노와 무엇이 다른지 의심하게 된다.


 중국의 소설가 한 샤오궁은 "매국노의 공통된 특징, 즉 미제, 프랑스제, 호주제, 일제, 독일제, 러시아제 매국노의 공통성은 바로 권세와 이재에 밝다는 것이다. 그들은 단 한마디를 해도 목적이 분명하다. 높은 연봉, 구미행 여권, 최소한 한 끼의 정찬. 결코 학술적 양심이나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여 자기에게 득 없는 말은 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건달 짓을 해도 실속을 챙기는 그들이 권력자의 상식적 실수 하나를 바로잡기 위해 용감하게 손을 드는 일은 결코 없다."라고 했다. 뉴라이트라는 집단을 중심으로 한 이들의 행태는 매국노 그 자체다. 그들의 목적은 권세와 이재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국가의 발전과 선진화를 위해서라고. 거기에 어리숙한 국민들은 속는다. 그들은 권력자에 빌붙어서 자신들의 권세와 이재를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제거해간다. 그리고 그것이 애국심의 발로라고 말한다. 


 거기에 애국심과 마케팅이 융합하면서 쇼비니즘을 만들어내면서 애국심의 진정한 의미를 퇴색시키기까지 하고 있지만, 현재 한국민들은 마음 속에는 애국심이 차지하는 가치는 반공교육으로 만들었던 애국심과 별 차이가 없다. 지금도 여전히 반공이데올로기와 빨간색 콤플렉스를 벗어나지 못한 유아적 사고는 한국민 대다수의 정서를 지배하고 있다. 거기에 부와 돈에 대한 욕망이 가세하면서 국가경제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더해지면서 정치꾼들이 애국심을 이용해서 국민을 기만하고 속이기에는 더 쉬워진 세상이 되었다.


 경제꾼들은 이런 정치꾼들을 이용해서 자신의 잇속을 철저하게 챙기고 있다. 범죄를 저질러도 법은 그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다. 이유는 국가 경제 발전에 공헌했다는 것이다. 그 솜방망이 처벌도 오래가지 않는다. 권세와 이재를 유지하고 키우기 위한 정치꾼들의 욕망을 채워주면서 정치꾼들은 형이 제대로 집행되기 이전에 사면이라는 성은을 받는다. 그 이유는 국가 경제 발전에 공헌해 달라는 것이다. 거기에 우미몽매한 국민들은 애국심의 발로와 경제발전에 대한 과대한 망상으로 이러한 행위를 선한 것으로 믿어버린다. 아니 믿으려 한다.


 이러한 행위는 언제나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명목으로 행해지고 국민들은 그렇게 믿는다. 개인의 삶이 너무나 고달프고 힘겨워도 국가와 국민이라는 애국심 앞에서 불평 불만을 토로하지 못한다. 그것은 애국심이 없다는 소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은 혼자서 현실을 열심히 살아간다. 땀 흘린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해도 사회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무능함부터 탓한다. 사회와 국가는 애국심으로 보호해야 될 대상이라는 것이다. 국가라는 존재가 각 각의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라는 존재 그 자체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애국심이라는 이름은 개인에게 커다란 짐이 된지가 오래다.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애국심은 가슴을 띄게 만들고 공동체 의식을 느끼게 만들어 자신의 행위와 현실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어 버렸다. 강준만 교수는 이런 한국 사회의 모습에 대해서 "각개약진은 한국적 삶의 기본 패턴이다. 공적 영역과 공인에 대한 불신이 워낙 강해 사회적 문제조차 혼자 또는 가족 단위로 돌파하려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공적 영역과 공인에 대한 불신이 워낙 강하다"고 지적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애국심이라는 것은 이런 불신을 언제나 뛰어넘어 버린다.


  이와 같은 각개약진의 삶이 만들어 낸 것은 학연, 지연, 혈연이라는 단단한 연결고리다. 개인보다는 조그만 조직의 방패막을 필요에 대한 욕구로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병폐의 탄생 이유를 단번에 설명해버린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단지 각개약진의 삶에서 탄생한 것이라고 한 번에 단정하는 힘든 것이겠지만, 인위적으로 인맥 만들기에 열을 올리는 현대인들의 삶과 그 모습의 이유는 각개약진의 삶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삶의 패턴은 변할 가능성도 변할 이유도 없다. 세계화와 시장만능주의가 지배하는 한국사회에서 국가경제발전을 위한 것이라는 애국심 하나면 자신의 삶이 고달파도, 힘들어도 상관없다고 생각 할 테니까.

각개약진 공화국 - 8점
강준만 지음/인물과사상사



2008년 8월 10일 일요일

자신과 경쟁하는 힘. "자기암시"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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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한다. 타인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말인데, 과연 우리가 과연 사회적 동물 처럼 살아가고 있는 걸까? 관계라는 것은 개인보다는 협력과 협동 그리고 소통이라는 관점의 말일 텐데, 이런 관계보다는 경쟁을 위한 , 정복을 위한, 단지 먹이 피라미드를 구성하는 관계를 지칭하는 듯한 것이 현대사회가 아닐까? 학생들에게도 관계의 중요성보다는 경쟁의 중요성만을 가르치고, 동료와 친구라는 인관 관계보다는 경쟁상대라는 전투적 관점을 가르치는 것이 능사라고 생각한다. 이성 없이 본성으로 살아가는 야생의 동물 세계를 우리사회에 그대로 적용시키면서 그것이 발전과 진보를 위한 최고의 수단인 것 처럼 착각한다. 다윈에 의해 탄생한 다위니즘의 적자생존만을 맹신해 관계사회를 파괴하면서 먹이 피라미드를 단단하게 고착화 시킨다.


 결국에 이렇게 만들어진 치열한 경쟁사회와 계층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한 이들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그의 자손들도  그 고리 속에서 허우적대게 만들어 버린다. 누구에게나 이런 고리를 끊어버린 가위는 공부라는 것인데, 어제부터인가 이것이 돈이라는 놈의 파워게임이 되면서, 낮은 계층의 사람에게 그 가위조차 쉽게 구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상위 계층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계층을 단단하게 만들어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학군이 좋은 쪽으로 이동을 하고, 그로 인해서 좋은 학군지역의 집 가격은 천문학적으로 뛰어 버렸다. 이것이 한국이라는 나라의 독특한 상황만이 아니다. 폴 크루그먼은 "미래를 말하다"라는 책에서 이 문제를 언급하고 있고, 영국은 명문 사립학교를 보내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경쟁의 환경과 공간이 전 지구로 확대되면서 이러한 경쟁에 대한 과도한 압박은 현대인들을 짓누른다. 거기에 모기업총수가 주창하는 인재관이 사회전체 퍼지면서 노예를 사육하듯 사회시스템이 인재를 찍어내려고 한다. 미래는 창의적 인재가 필요하다고 그렇게 외쳐본들 암기와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한국사회는 그런 경쟁시스템을 최상으로 여긴다. 경쟁과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한국 청소년들의 자살률은 세계최고를 기록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소중한 생명들에 대한 고민을 볼 수가 없다. 여전 적자생존만을 외치면서 낙오자에 대해서는 어떤 동정이나 관심은 없다. 그저 낙오자란 주홍글씨만을 세기고, 남아 있는 아이들에게 낙오자의 끝이란 이런 것이라는 알려주기 위한 사례일 뿐이다.


 가끔은 경쟁의 상대가 주변의 타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뛰어난 스포츠 선수들이 승리를 거두고 하는 흔한 멘트겠지만,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자 경쟁상대는 자기자신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자기자신을 경쟁상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음을 물론이고, 스스로가 자신에 대한 인식을 바로 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단지 경쟁의 목표나 상대가 눈에 쉽게 보이기에 경쟁의 대상을 주변의 타인이나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인간을 선택하는 것 뿐이다. 어떤 면에서 실패나 좌절에 대한 분노의 방출구나 핑계거리로 자신보다는 타인이 더 쉽게 인식함은 물론이고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과의 경쟁에게 이긴다는 것은 쉽지 않다. 공부에서는 점수가, 스포츠에서는 개인기록이 쉽게 눈에 띄면서 목표를 쉽게 잡지만, 자신을 이기기 위한 기준은 무엇이고 무엇을 목표로 잡아야 할지 참 난감하다. 스스로의 깊이를 알 수 없기에 자신 속으로 과감하게 뛰어드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어떤 경우는 자신에 대한 경쟁의식이 자기혐오나 자기부정을 만들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는 다른 관점의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경쟁이라는 단어에 너무 집착해서 스스로를 경쟁의 틀 안에 가둘 필요는 없다. 에밀 쿠에는 100여년 전에 벌써 경쟁이라는 단어를 넘어서 자신을 극복하는 법을 발견했다. "자기암시". "시크릿"이라는 책을 봤다면 알겠지만, 그것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자기의 상상의 세계에 긍정적인 신호를 지속적으로 주입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에밀 쿠에는 경쟁이라는 단어보다는 격려와 긍정의 힘을 발견한 것이다. 자신에게 긍정적 상상의 신호를 줌으로써 마음 속에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라는 에너지를 공급하게 된다. 그것이 자신을 이기는 가장 중요한 힘이요 추진력인 것이다.


 존 토드의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마음이며 마음을 결정하는 것은 습관이다."라는 말을 했는데, 그 습관이라는 것이 긍정적 자기암시다. 에밀 쿠에는 " 원하는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해 준다고 믿는 '의지'를 우리는 자랑스러워 하지만 사실 우리는 상상의 조종을 받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상상을 다루는 법을 배울 때 비로소 꼭두각시 놀음을 멈출 수 있다."고 했다. 꼭두각시가 아니라 자신의 상상을 다루는 습관을 들이고 스스로의 인생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긍정적인 상상으로 자신을 변화시켜보자.

자기암시 - 6점
에밀 쿠에 지음, 김수빈.최준서 옮김/하늘아래

2008년 7월 28일 월요일

한국 보수의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한 .........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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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 크루그먼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그냥 미국의 유명한 경제학자라는 것이 그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 제일 먼저보는 것은 저자의 프로필이다. 그것을 통해서 저자의 성향이나 지나간 과거를 조금이나마 유추하면서 책을 읽게 된다. 가끔 그것이 저자에 대한 편견을 만들어 독서를 방해하기는 하지만, 오히려 저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눈에 띠는 약력 중에 레이건 정부시절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이라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그가 미국의 대표적인 주류 경제학자인 줄 알았다. 자유주의와 세계화를 주장하는 우파학자인줄 알았다. 그런데 한 페이지 한 페이지씩 읽어 갈수록 저자를 약력만으로 평가했던 내 생각을 송두리 째 뒤집어 버린다. 그는 민주당을 옹호하면서 공화당에게는 거침없는 비판의 칼날을 가한다. 난도질이라고 할 정도로 100여년의 미국역사의 흐름을 이야기하면서 공화당의 정책에 지금의 흐름에 대한 비판은 거침이 없다.  그러면서 분배정책에 대한 강력한 정치적 힘이 필요함은 물론이고, 지금 한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의료와 의료보험의 민영화 같은, 미국 내부의 의료보험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는 클린턴 행정부 도입에 실패한 의료보험제도를 의회와 정부를 모두 장악하게 될 민주당의 첫 번째로 추진해야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2mb정부가 추진하려 했던 의료 민영화(명확하게 포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2mb와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한 보수집단은 결코 포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단지 여론이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에 대한 문제만 엿볼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보수집단(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말하는 보수집단은 보통 말하는 보수가 아니라 꼴통보수라고 생각한다. 번역자도 옮긴이의 말을 통해서 번역은 보수집단이나 보수주의라고 했지만, 꼴보수, 수구 보수에 가깝다고 했다.) 태동부터 시작해서 그들이 어떻게 정권을 장악하게 되는 지에 대한 과정이 심도있게 분석되어 있다. 특히 그 보수집단이 차근차근 정치적 주류가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서 그 결실이 레이건과 부시 부자에서 나타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마치 그 과정이 짧게는 지난 10년(흔히 말하는 좌파정부)시절에 행해졌던 한국 꼴통보수들의 행태와 거의 판박이를 이룬다. 미국의 경우에 꼴통보수들이 정치를 장악하는데 수십년이 걸렸지만 한국의 경우는 그 기간이 너무 짧다. 압축성장을 해왔던 한국경제를 닮아서 인지 아니면 한국정치 특유의 역동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닮을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미국의 보수정권과 행태와 똑같은 정책을 펼치려는 2mb정권이 국정방향이다.


 폴 크루그먼은 양극화를 발생시키는 것은 경제자유의 정도나 개방의 정도가 아니라 정치적 양극화가 소득격차의 확대를 불러왔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뉴딜정책으로 계층간의 차이를 좁히는 대압착의 시대에 들어섰다. 그 과정을 통해서 미국의 분배구조는 건전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1970년대 뉴딜정책을 무산시키려는 급진적인 우파(꼴통보수)들이 공화당을 장악하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노조를 무력화 시켰으며, 치솟는 경영진에게 가해지던 정치적, 사회적 장애물도 제거했으며, 부자에 대한 세금도 삭감했다고 한다. 특히 우파들이 본격적으로 정권을 장악한 레이건에 대해서도 그는 보수주의자가 아니라 문화와 성에 대한 불안감에 호소하고, 공산정권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하며, 무엇보다 민권운동과 그 결과에 대한 백인들의 반발심을 암암리에 이용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레이건이 본격적으로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 시작했던 시기가 히피문화가 주류를 이루던 때이고, 냉전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라는 점과 여전히 흑인 대한 차별의식이 많이 남아있던 시대라는 점에서 본다면 폴 크루그먼의 진단은 설득력을 가진다. 뿐만 아니라 레이건 했던 선동적인 거짓말은 "연금을 받는 부유한 부인"의 이야기는 분배에 대한 반감을 적극적으로 자극했다는 것이다. 명확한 근거를 대지 못하면서도 이런 선동적인 거짓이 먹혔던 미국사회나 노무현 정권의 분배정책이 하위계층에게 돈을 퍼준다고 한나라당의 선동이 먹히는 우리사회는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물론 앞에서 이야기했던 다른 원인도 한국에 그대로 대입해 보면 똑같은 형태를 띤다. 히피문화에 대한 반감은 권위를 거부하는 신세대와 386세대들의 문화에 대한 반감으로,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은 북한에 대한 두려움으로, 민권운동에 대한 백인들의 반발은 인권운동에 대한 기성세대의 반발로.


 최근의 한국 꼴통보수들이 감세정책을 들고 나왔다. 명목은 경제 활성화라는 이름으로. 그것 또한 미국의 꼴통보수 정권에 의해서 시행되었던 정책으로 한국은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려 한다. 감세에 대해서는 경제학 서적에서도 경제활성화를 위한 한 방편으로 소개하고 있기는 하다. 그것을 공급경제이론이라고 하는데 폴 크루그먼은 "공급경제이론은 특별한 근거도 없이 세금 감면으로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보수주의 경제학자들을 비롯해 경제학의 여러 분야에서는 이 이론을 뒷받침할 만한 연구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에 이런 감세정책은 양극화를 확대활 뿐이라는 것이다. 전형적인 대중인기영합주의 정책일 뿐이고, 그것은 꼴통보수들의 핵심세력 경제계와 부유층을 위한 정책일 뿐인 것이다. 이렇게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미국 대신 한국을 넣으면 그렇게 유사할 수가 없다. 한국의 꼴통보수라는 인간들의 기본 지지기반이나 이론적 기반이 미국 꼴통보수라는데서 그런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미국이 이미 실패하거나 명확한 성과를 이루지 못한 것들이 한국에서는 대단한 성과를 낼 정책인 것 처럼 선전되고 있고, 그것이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통하는 정책이라는게 안타깝기만 하다.


 미국에서는 꼴통보수들의 정책적 실패와 친부자 정책으로 대중들의 지지를 잃어가면서도 선거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나온다. 앞에서도 나온 이야기기는 하지만 교묘하게 인종갈등을 유도한 것이다. 특히 남북전쟁 당시의 앙금이 남아 있는 남부지방에서 인종갈등을 이용함으로써 민주당의 지지기반을 무력화 시켰다고 한다. 지역갈등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한국의 정치꾼들이랑 겹쳐 보이는 이야기다. 그 뿐 아니라 가장 민주적인 나라라고 생각했던 미국에서 투표를 방해는 치졸한 행태를 꼴통보수들이 보여준다는 것에 놀랐다. 선거인 명부에서 민주당 성향이 강한 흑인이나 이민자들을 누락시킴으로써 투표를 방해했다. 뉴욕타임스'가 '유권자들의 대량 숙청'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폴 크루그먼은 꼴통보수들의 이러한 정책이 힘을 잃고 있다고 한다. 이민자들의 증가로 인해서 백인 유권자의 수가 줄었고, 그 백인들 중에서도 인종차별주의자가 줄었다는 것이다.


 다시 양극화의 문제로 돌아와서 폴 크루그먼은 "미국의 극심한 불평등은 대부분의 가정의 구매력을 낮추는 것 이상으로 우리 사회에 심각한 부담을 지우고 있다. 그리고 불평등이 우리에게 끼치는 다른 악영향도 있다. 우리의 정치를 부패시키는 것이다."라고 한다. 양극화의 강력한 해소를 위해서 정치적 행위가 필요하며, 의회와 정부를 동시에 장악하게 될 민주당에게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치적 행위 주문한다. 그 시작이자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의료보험제도"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지금같이 역주행하고 있는 2mb정부와 꼴통보수들의 몰락이 미국에서 처럼 다음선거에서 다가올가? 폴 크루그먼이 예상하는 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한국은 여전히 반공사상과 북한 정권에 대한 반발, 맹목적인 지역주의 그리고 경제발전에 대한 끝없는 탐욕이 살아 있는 상태여서, 꼴통보수들이 전략적으로 이용할 것들이 넘치고 넘치는 상황이다. 한국의 정치적 역학구조는 미국보다 복잡해 보인다. 과연 미국 처럼 꼴통보수가 쉽게 몰락할 것인지 의문이 든다. 특히 진보주의가 공산주의라는 잘못된 생각이 만연한 한국사회에서 그 과정은 길고 고단해 보인다. "진보주의자들은 미국의 민주주의와 법치를 존중하기 원한다. 보수주의자란 이들은 대통령의 독재 권력을 원하고, 죄 없는 사람들을 감금하고 고문을 가하는 부시행정부에 박수갈채를 보냈다."라는 폴 크루그먼의 말로 진보와 보수의 차이를 대신한다면 조금은 선동적일까? 내가 느끼는 한국 사회의 진보와 보수는 폴 크루그먼의 의견과 다르지 않은데…....  폴 크루그먼은 마지막 부분에 진보주의와 꼴통보수에 대해서 순화적으로 다시 정의하고 있다. "진보주의는 복지국가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진보주의는 민주주의와 법치도 추구한다. 반면에 보수주의자들은 피부색이나 종교, 성적 취향이 다른 시민들에게 똑같은 권리를 부여하기 꺼리는 일부 시민들을 이용하는 정치적 전략을 핵심으로 한다."라고.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 10점
폴 크루그먼 지음, 예상환 외 옮김/현대경제연구원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