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19일 월요일

난 안드로메다가 좋다. "세상을 뒤집을 100가지 미래상품"을 읽고.....

세상을 뒤집을 100가지 미래상품 - 6점
Theodor Ha'nsch 지음, 알프레드 쉬슬러 그림 최중호.김영옥 옮김/콜로세움

 

 나의 상상력은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걸까? "세상을 뒤집을 100가지 미래 상품"이라데 나에게는 뒤집힐 만한 것들로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현실의 과학이 만들어내는 것과 내가 상상하는 안드로메다의 상품들과의 괴리는 너무 큰 것 같다. SF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나올 것 같은 상품들이 아니라 지금 연구가 되고 있는 상품들이고 그것을 과학자들의 심사를 거쳐서 선별했으니 내 판타지를 자극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아이언 맨"의 슈트나 주인공 가슴 팍에 달린 플라즈마 발전기가 오히려 더 나의 판타지를 자극한다. 과학보다는 비과학적인 것들이 더 달콤하고 매력적이라서? 그건 아닌 것 같다. 미래라면 떠오르는 판타지는 만화 "하록선장"이나 영화 "스타워즈" 같은 우주 전쟁에 쓰이는 첨단 기기들을 상상하는 것을 보면 내 안의 폭력성을 만족시켜줄 상품이 없어서인 것 같다. 레이저 총과 광선검도 나오고, 순간이동 장치도 개발되고 있다면…… 그러나 애초에 이 책에는 "군사용"이라는 분류가 없다.


 그래도 이 책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상품은 핵융합발전기이다. 계속 치솟고 있는 유가와 그에 따른 고갈설에서 해방시켜줄 가장 혁신적인 상품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에너지의 고갈은 문명의 멸망을 야기한다고 했었는데, 그런 위험에서 인류를 구원해줄 희망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도 ITER(국제 핵융합 실험로)에 참가하고 있으며 KSTAR라는 독자적인 실험로를 건설해서 최근에 극저온상태로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KSTAR의 연구결과들은 ITER에 사용된다고 한다. 그러나 ITER의 건설과 개발에 엄청난 돈이 투입되기 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성공을 쉽게 장담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 책에서도 상품화로 예상하고 있는 시기는 2050년이라고 하니, 앞으로도 계속 우리는 고유가 시대를 살아야 할 것 같다. 현실은 이러한데 몇 몇 영화를 보면 핵융합 발전을 너무 과장한 영화들도 있다. 엘리자베스 슈와 발 킬머 주연의 "세인트"에서는 조그만 기계장치가 핵융합 발전 장치로 나오고, 최근에 나온 영화 "아이언 맨"에서 아이언 맨의 가슴에 있는 에너지 공급장치가 플라즈마 발전기로 그 또한 핵융합 발전기이다. 단어는 다르지만 핵융합발전을 위해서는 초고온 초고압의 플라즈마 상태가 필요하다. 아마도 핵융합보다는 플라즈마라는 단어가 뭔가 있어 보여서 그 이름을 쓰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 다음에 관심이 가는 상품으로 세계 언어 동시 번역기다. 영어 때문에 조기 유학을 떠나거나 학원을 내몰리고 영어 몰입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외국어에 짓눌려 있는 학생들에게 얼마나 기발한 상품인가? 엄청난 과외비와 유학자금으로 빠져나갈 돈들이 이제는 자신들의 노후생활을 대비하고 현재를 풍요롭게 할 수 있기에 부모들에게 또한 얼마나 기발한 상품인가? 그러나 한편으로는 얼마나 정확한 통역을 할지 의문이 든다. 미국의 모스크바 올림픽 보이콧 사태를 부른 것은 언어와 문화가 가지는 미묘한 차이를 잘못 해석한 통역사의 오류 때문이었던 것 처럼, 언어가 가지는 문화적 특성까지 모두 포함할 수 있는 번역기가 만들어질지는 확신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단어가 쓰이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것까지 포함하는 번역기를 계발하고 있다고 하니 그것만으로 우리는 충분히 외국어의 스트레스에서 해방되지 않을까?


 이번 상품은 이 책이 아니더라도 이미 신문기사를 통해서 알고 있는 상품이다. 태안의 기름유출사고가 있었을 때 이것이 상용화되어 사용되었다면, 그 지방 사람들이 그렇게 고통 받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이 상품은 기름을 먹고 사는 박테리아다. 유전자 해독까지 끝냈으며 배양 실험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한다. 2010년 쯤에 상품으로 출하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조금만 더 일찍 상품화 되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큰 상품 중에 하나다.


 그 밖에도 다양한 상품들이 있지만, 내가 상상하는 안드로메다에서는 하찮은 것들로 보인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는 나에게 혹은 누군가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기발한 상품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누군가에게 눈이 되고, 누군가에게 근육이 되고, 누군가에게 심장이 될 것들에서 부터, 감정을 파악하는 자판기, 산불을 끄는 로봇 등등. 그러한 상품들을 소개하는 이 책은  뭔가 좀더 공상과학적 상상을 자극하기에는 부족하고, 실현 가능성에 바탕으로 하는 사실적 정보 전달에는 충실하다. 상상과 사실 사이에서 상상력이 넘쳐나는 책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안드로메다라는 상상 속에서 사는 것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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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18일 일요일

책, 어떻게 읽어야 할까? "책을 읽는 방법"을 읽고.....

책을 읽는 방법 - 10점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김효순 옮김/문학동네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다. 한 권의 책을 다 읽었다고 해도 그것을 내가 바로 소화시켰는지 객관적으로 평가할 잣대가 없기에….... 읽었던 내용들을 찬찬히 되살려보면 어떤 때 내 머리 속은 백지와 같다. 가끔 다른 자극을 받아서 의도하지 않게 기억 속에서 읽었던 내용들이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내가 필요할 때에 읽었던 내용들이 생각나지 않기도 한다. 기억이란 것에 의존해서 독서의 질을 평가하고 있으면 책이 독서의 양에 대한 욕심을 자극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책이 아니라 책의 저자들이 양에 대한 욕심을 자극한다. 책 속에 펼쳐지는 저자들의 지적 향연을 위한 만찬은 그들이 읽은 책들의 양이 좌우하기 때문이다. 양에 대한 욕심이 커지면 속독이란 기술에 매혹된다. 하지만 연습 삼아서 속독을 연습하다 보면 방금 넘긴 페이지의 내용 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속독 연습을 하면 인간의 두뇌능력은 무한하기 때문에 적응할 수 있다고 하지만, 책이 전해주는 이야기의 흐름마저 끊어가면서 속독을 연습해야 될 이유를 모르겠다. 속독을 연습하다가도 포기해버린다. 그래서 독서의 질에 대한 고민과 양에 대한 욕심 사이를 우왕좌왕 할 뿐이다.


 속독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 살다 보면 분명 속독은 많은 정보를 흡수하기 위한 좋은 도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정보와 지식만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닌데, 속독으로 정보를 얻는다는 것에 너무 매몰되어 버리는 것이 아닐까? 속독으로 인해서 독서라는 행위 자체가 가지는 즐거움을 많이 놓치게 된다.  지식과 즐거움 중에 사이에서 선택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즐거움 없는 행위가 만들어내는 지루함은 지식습득에서도 능률적이지 못하다. 결국에 선택해야 될 것은 독서의 즐거움이다. "무엇보다도 천천히 시간을 들이면 독서는 즐거워진다."라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이 간다. 그래서 저자는 "독서를 즐기는 비결은 무엇보다도 '속독 콤플렉스'에서 해방되는 것이다."라고 한다. 속독과 슬로 리딩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충고다. 특히 "정보의 항성적 과잉공급사회에서 진정한 독서를 즐기기 위해서는, '양'의 독서에서 '질'의 독서로, 망라형 독서에서 선택적 독서로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라는 저자의 주장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대는 현대인들에게 구원의 빛과 같다.


 그렇다면 슬로 리딩만 하면 좋은 독서가 되는 것일까? 하지만 슬로 리딩은 좋은 독서를 하기 위한 준비단계일 뿐이다. 느리게 읽는다고 무조건 가치 있는 독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에는 슬로 리딩에도 다양한 테크닉이 필요하게 된다. 속독과 슬로 리딩이 단순히 질과 양의 문제였다면 슬로 리딩의 질적 차이 문제로 귀결된다. 슬로 리딩의 테크닉을 하나하나 익혀감으로써 질적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테크닉으로 저자가 소개하는 것은 "작가의 시점으로 읽고,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며 읽고,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꼭 찾아가며 읽고, '왜'라고 생각하며 읽고,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 할 것을 상정하고 읽는 것 등등"이다.


 후반부에 나오는 실습을 통해서 이론에만 머무를 수 있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두 가지 생각이 머리에 떠오른다. 하나는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독서는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즐기기 위한 독서를 이렇게 치열하게 하면서 머리에 과부화를 줘야 할까?"라는 의문이다. 저자의 깊은 분석력에 대한 자괴감과 질투가 섞인 묘한 생각들이다. 그래도 이 책을 읽어서 좋았던 것은 내 독서 습관을 점검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과 '재독'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해서 알았다는 것이다. 한 번 읽은 책은 거의 재독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책은 '재독'에 가치가 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발견을 하고 새로운 자신을 발견한다. 책과 그런 관계를 만들 수 있다면, 책은 더없이 소중한 인생의 일부가 될 것이다."을 보고 재독하고 싶은 책들을 하나 둘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독서법이 절대적이고 만능은 아닐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고 혼자의 것이다. 결국에 중요한 것은 저자와 나와의 소통이 중요한 것이고 좀더 명확한 소통을 위한 독서법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각자의 과제이고 각자의 선택일 뿐이다. 이 책은 자기 독서법에 대한 점검의 기회와 저자와 원활한 소통을 위한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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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16일 금요일

억압받는 여성들의 이야기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고....

천 개의 찬란한 태양 - 10점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현대문학

 

 아담과 이브라는 하나의 조상에서 분화되어 지금 우리는 존재하고 있다. 하나의 기원을 가진 우리지만 사는 지역에 따라서 피부색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며 관습 또한 다르다. 이런 차이를 쉽사리 인정하지 못하는 인간의 옹졸함에 우리는 수 많은 갈등 속에서 살고 있다.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온 갓 멸시와 차별을 가한다. 힘이 강한 남성은 힘이 약한 여성에게 수 많은 폭력을 가해도 그것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되기도 한다. 종교가 가르치는 자비, 사랑, 평화와 같은 것들은 그들이 믿는 신의 명령이라는 이름아래서 무참하게 짓밟힌다. 그들에게 신이란 이름은 자신들의 욕망과 야욕이라는 뱃속을 채우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많은 부를 가진 이들은 신에게 수 많은 재물을 가져다 바치며 자신에게 더 많은 부를 달라고 애원한다. 그들은 가난한 이들이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말할 뿐 그들이 불법과 탈법으로 가난한 이들을 착취하는 것을 당당하게 여긴다.


 하나의 인간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니다.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라는 계층이 가지 있는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지만, 그는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대접받는다. 그렇지 못하면 그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니라 다른 계층의 또 다른 인간일 뿐이다. 만약 그가 우리보다 더 높은 계층의 인간, 즉 돈이 더 많거나 지위가 더 높다면, 우리는 그를 우러러본다. 그와 같은 계층에 들어가기 위한 열망으로 그들이 지나왔던 또는 해왔던 일들을 그대로 모방하거나 쫓아가려 한다.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 아니라 더 높은 계층이다. 행복은 높은 계층에 있다고 착각하면서……. 만약 그가 우리보다 낯은 계층의 인간이라면, 우리는 그를 얕보거나 멸시하며 차별을 가한다. 단지 낮은 계층에 있다는 것이 그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니라 미천한 존재일 뿐이다. 세상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인간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이렇게 계층을 나눠서 타인을 대한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계층 안에서 위로 받고 안식을 취하며 더 높은 계층을 향한 욕망의 힘으로 차별적인 세상을 전진한다.


 직접적으로 보이지는 않기에 우리가 쉽게 인식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계층의 피라미드를 이루며 살아간다. 그 계층의 최하위에는 언제나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하나는 여성이고 하나는 어린이다. 그들은 언제나 전쟁이란 파괴적인 행위 속에서 가장 고통 받는 이들이고, 종교의 잘못된 교리가 만들어낸 차별세상에서 가장 고통 받는 이들이며,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세상에서 가장 고통 받는 이들이다. 이러한 차별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이 만들어 낸 것이다. 결국은 남성보다 힘이 약한 어린이와 여성들은 남성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으며, 사회가 아무리 선진화 되고 발전을 한다고 해도 이 문제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하물며 여전히 종교가 사회를 지배하는 주요한 가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쟁이 여전히 진행중인 곳, 그리고 가부장제가 여전히 강한 힘을 발휘하는 곳에 사는 여성들의 삶은 얼마나 처참할까?


 아프카니스탄 여성들에게 바치는 할레드 호세이니의 책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계층의 최하층에 위치한 아이였다가 여성이 되는 마리암과 라일라를 통해서 계층의 가장 아래에 있는 이들의 비참한 삶을 보여준다. "내 딸아, 이제 이걸 알아야 한다. 잘 기억해둬라. 북쪽을 가리키는 나침반 바늘처럼, 남자는 언제나 여자를 향해 손가락질을 한단다. 언제나 말이다. 그걸 명심해라."라고 어머니가 딸에게 전해준 말로 종교와 가부장이 만들어낸 사회에서 억압받는 여성들의 한 맺힌 삶을 마리암과 라일라를 통해서 보여준다. 거기에 전쟁과 굶주림까지 더해지면서 계층의 아래에 사는 이들의 실상을 낱낱이 보여준다.


 출생에서부터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을 수 밖에 없던 마리암은 그녀의 아버지와 다른 가족들, 혈연과 혈통을 중시하는 가문의 천덕꾸러기다. 그래서 많은 나이 차이에 이미 사별을 경험한 라시드와 강제로 결혼을 하게 된다. 그 부분에서 저자는 복선을 하나 남겨둔다. "마리암이 27년 후에 어떤 서류에 서명을 할 때도 율법학자가 참석해 있을 것이다."라고. 하나는 27년이라는 기간 동안 마리암이 고통을 당할 것이라는 암울한 암시와 27년 후에는 그녀의 삶이 다르게 변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것이 긍정적인 것인 부정적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긍정적인 기대로 복선을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결혼 생활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그 과정에서 아프칸의 역사적 사건들이 다양하게 겹쳐지면서 마리암의 생활은 결코 순탄치 않다.


 라일라는 마리암과 달리 교육자인 아버지 밑에서 다양한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다. 하지만 그녀를 불행하게 만든 것은 전쟁이다. 전쟁이 얼굴조차 기억하기 힘든 오빠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고, 결국에는 부모님마저 죽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자신도 부상을 입은 그녀는 마리암의 남편 라시드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다. 너무 어린나이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녀는 혼자 힘으로 세상을 헤쳐갈 용기가 없다. 그래서 그녀는 라시드와 결혼을 하고 두 번째 부인이 된다. 그로 인해 마리암은 라일라를 향해 질투를 하게 되지만, 아이를 낳지 못하는 마리암을 대신해서 라일라가 아이를 낳게 됨으로써 그 여자는 모성애라는 하나의 공통점으로 뭉치게 된다. 마리암과 라일라는 우정과 모성애로 똘똘 뭉치게 되고 라시드로 대표되는 억압과 폭력에 대항할 힘과 용기를 가지게 된다.


 라시드로부터 도망을 가기 위해서 차곡차곡 돈을 모으고 그 돈으로 버스표까지 구입을 하게 되지만, 탈레반이 집권하며 만들어낸 감치체제와 더 강력해진 가부장사회는 두 여인을 좌절하게 만든다. 사실 그 쯤에서 두 여인의 고통이 끝나기를 바랬었는데, 또 다시 억압과 폭력으로 두 여인을 몰아넣는 저자 호세이니가 얄미웠다. 결국에는 두 여인이 라시드를 살해하기에 이르는 상황까지 만들어 버린다. 라일라의 어린 시절 연인인 티리크가 두 여인과 그들의 아이들에게 구세주가 되기는 하지만, 마리암은 라일라와 아이들이 무사히 도망칠 수 있도록, 자기희생적 모성애로 자수를 한다. 결국 저자가 소설의 초반에 깔았던 복선은 마리암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서명한 곳은 판결문이었다. 마리암은 사형을 당하게 되면서 한 많았던 인생을 마감한다. 전쟁과 가정폭력, 굶주림에 이르기까지 시대상황과 맞물린 끝없는 고통 속에서 마리암이 맛본 행복은 라일라와의 우정과 모성애다. 마리암의 고생에 비해서 초라하기만 한 행복의 순간을 보면서 마리암을 가혹한 고통 속에 몰아넣는 작가가 야속하기만 하다.


 반면 라일라는 아프카니스탄을 떠나서 안정된 생활을 하지만, 탈레반 정권이 몰락하면서 다시 귀국을 결심한다. 귀국과정에서 마리암이 살았던 곳에 들러서 마리암의 체취를 느끼고, 마리암의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편지도 읽게 된다. 그리고 카불의 고아원에서 그곳 아이들을 위한 선생님이 된다. 그 순간에 마리암이 자신의 가슴속에 천개의 찬란한 태양으로 빛나고 있음을 느끼면서 소설은 마무리된다. 하지만 책을 덮으면서 행복하지도 희망에 차지도 않는다. 탈레반의 세력이 점점 확대되면서 안전하다고 여겨지던 카불에서도 폭탄테러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뉴스를 접했기 때문이다. 현실은 여전히 마리암과 라일라 같은 여성들에게 자유와 희망을 주려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소설의 결말과 같이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삶에 절망하지 않고 현실과 맞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마리암과 라일라 같은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현실은 어둡더라도 인간이 가지는 삶의 의지는 천 개의 찬란한 태양으로 어둠을 걷어내고 세상을 밝혀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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