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언론노조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언론노조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09년 1월 1일 목요일

언론노조파업지지 3 - mbc와 광우병 왜곡보도 그리고 촛불집회

 

 mbc의 파업을 비난하는 가장 큰 이유로 뽑는 것이 mbc의 공영성 문제다. 그 중 Mbc의 쇼, 오락프로그램이 많아는 식의 논리는 별 상대할 가치가 없다. mbc의 소유구조가 공영인 것이지 재무구조까지 공영이 아니라는 기본 전재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Kbs 처럼 재무구조까지 공영의 요소가 있다면 충분히 그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의 논지가 필요하나 mbc의 경영 형태는 일반 기업과 같은 형태를 유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방송프로그램의 분포만을 가지고 공영성을 논한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 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공영성을 논하기 위해서는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등을 중심으로 공영성을 논할 수밖에 없다. 그 중에 mbc의 공영성에 큰 타격을 준 것으로 뽑는 것이 pd 수첩의 광우병 보도다. 일부의 번역오류를 가지고 한 쪽에서는 굉장히 왜곡되었다고 말하고 한 쪽에서는 일부의 오류일 뿐 광우병에 대해서는 왜곡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우선 왜곡되었다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무척 낮음을 지적한다. 교통사고로 죽을 확률보다 더 낮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광우병에 대한 공포를 너무 과장되게 보도 했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많은 시민들을 선동해서 촛불집회까지 일으켰다는 것이 mbc의 공영성을 문제삼는 가장 큰 이유다.

 

 반대로 pd수첩과 mbc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일부의 왜곡은 있었으나 광우병의 위험은 여진히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여전히 미국의 사료시스템이나 검역 시스템은 불완전해서 광우병의 위험을 완전히 차단하기에는 힘들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특히 광우병에 대해서는 현재의 의학으로 완전히 밝혀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미지의 상태에 있기 때문에 광우병에 대한 검사와 검역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에 영국에서는 mm형 유전자형의 인체광우병 환자가 아니라 mv형 유전자의 인체광우병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앞으로 350여명의 환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기존에 mm형 유전자에서 발병한다고 했던 광우병이 mv형 유전자에서도 발병함으로써 광우병에 대한 연구가 아직도 부족하다는 주장은 큰 힘을 얻고 있다.

 

 한 쪽에서는 확률을 가지고 mbc의 보도가 과장 왜곡된 것이라고 하고, 한 쪽에서는 소수의 환자라고 해도 여전히 병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임을 가리켜 mbc의 보도는 과장 왜곡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문제에서는 가장 큰 인식의 문제가 발생한다. Mbc의 주장을 옹호하는 측이든 반대하든 측이든 광우병의 발병확률이 낮다는 "사실"은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문제는 한쪽에서는 "사실"보다는 사실이 가져다 줄 결과에 대해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Mbc가 보도했던 사실이라는 것이 "발병 확률에 관한 사실"이 아니라, "그 사실이 가져다 줄 결과"에 비중을 뒀기 때문에, mbc의 그 보도에 일부 오역이 문제가 될 수는 있으나, 사실을 왜곡한 것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 mbc와 촛불 집회를 폄하하는 사람들은 mbc는 광우병 공포를 과장해서 시민들은 선동해서 촛불집회를 일으켰다고 잘못된 비난이 가해진다. 촛불을 든 사람들은 무지 몽매한 사람으로 상당히 폄하하면서. 그들의 가장 큰 특징은 촛불집회의 원인을 광우병의 왜곡보도로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인식의 문제가 발생하는데, 광우병의 공포로 촛불을 든 사람들도 물론 있었지만, 검역주권을 포기하는 정부의 정책 실패에 대해서 분노해 촛불을 든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다. 촛불이라는 것이 하나의 일방적인 주장을 담은 집단 아니라, 저마다의 다른 생각과 주장을 표현하기 위한 장이었을 뿐이지, 촛불 자체가 주장은 아니 였다.

 

 반 mbc와 반 촛불의 집단의 인식은 정확하게 이분법적 사고로 문제를 단순화 시켜서 사건의 본질을 완전히 왜곡 시키는 주장만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인식에 대한 차이는 왜곡이 될 수가 없는 문제다. 정치에서 좌와 우는 인식의 차이를 기반에 두고 있는 것이지, 서로의 정치적 견해를 두고 왜곡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반 mbc와 반 촛불 측은 인식을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중에서 자신들에게 중요한 한가지의 사실만을 가지고 상대방의 주장을 완전히 왜곡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Mbc의 광우병 보도는 왜곡이 아니라 인식의 차이가 발생한 것이고, 촛불은 든 사람들 역시 그런 인식의 차이를 인식하고 자신의 주장을 한 것이다. 결국에 mbc든 촛불이든 결코 자신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진정한 가치에 대해서는 진실했으며, 공정했던 것이다. 그것을 함부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리스크"라는 책에는 "아르노라는 사람은 번개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을 비난했다. 그 이유는 번개를 맞을 극히 희박한 확률을 너무 과대평가한다 것이다. 물론 그의 비난은 잘못된 것이다. 그는 '무엇인가'를 무시한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사실'은 모든 이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번개를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도, 정작 번개가 그들이 서 있는 자리에 정확히 내리꽂힐 리 없다는 '사실'은 확실히 알고 있다. 베르누이는 상황을 더 명확히 파악했다. 그는 번개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결과의 중대성에 무게를 두기 때문에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인식한 것이다. 비록 번개에 맞을 가능성은 매우 작더라도 말이다."라는 문단이 있다. 정확히 보면 지금의 인식과 갈등구조를 정확하게 대변하고 있는 문장이다. 어떤 이는 확률의 높고 낮음만을 어떤 이는 확률을 인식한 후에 다른 부분에 대한 인식을 더해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한쪽은 이분법적이라면 다른 한 쪽은 다차원적인 인식을 하고 있다. 이제는 이분법적 인식을 뛰어넘어 다차원적 인식이 필요한 시대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분법적 인식과 다차원적 인식이 충돌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2008년 12월 31일 수요일

언론노조파업지지 2 - 파업, 철밥통, 보수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라는 것이 단순하지가 않다. 어떤 나라에서는 진보적 가치로 평가 받는 것을 보수의 가치로 내세우는 집단이 있는가 하면, 어떤 나라에서는 보수적 가치로 평가 받는 것을 진보적 가치로 내세우는 집단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다른 나라의 관점에서 보면 중도 보수의 가치를 가진 민주당이 진보 좌파라 매도 되기도 하고, 극보수에 가까운 한나라당이 자신들을 중도 보수라고 우기는 웃지 못할 상황에 처해있기도 한다. 이렇게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 불명확하고 나라마다 다른 이유는 각 나라의 정치적 역학관계에 따라서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 행해지고 있으며, 이런 구분으로 이념적 논쟁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정치적 술수 때문이다. 복잡한 정치적 역학관계를 최대한 단순화 시켜, 흔히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진보는 평등의 가치를 추구하는 집단이고, 보수는 자유의 가치를 추구하는 집단이라는 것이다. 이 관점은 정치적 관점보다는 경제적 관점이 중심이 된 것으로 평등과 자유 앞에 "경제적"이라는 말을 붙이면 쉽게 이해 될 것이다. 그래서 진보는 경제적 평등을 위해서 국가의 분배적 정책을 강조하는 집단이고, 보수는 경제적 자유 즉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 하기 위해서 국가의 간섭과 규제를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집단이다. 어떤 두 가치던지 간에 모두 경제적 관점이 포함되어 있다. 그 경제적 관점의 추구 방향이 어떠냐에 대한 문제가 갈등의 큰 원인이 되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인간은 경제적 인간이라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서든, 단지 더 많은 부를 추구하기 위해서든, 인간이 생활하는 전반에 경제라는 것은 빠질 수가 없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번 언론노조의 파업에 반대하는 아주 단순하면서 흔히 말하는 논리는 "철 밥통 지키기"라는 것이다. 흔히들 보수 집단이 말하는 집중적으로 말하는 논리이다. 그들은 보통 기업의 규제완화나 이윤추구를 아주 당연한 것으로 치부한다. 기업이란 존재 이유가 이윤의 추구이기 때문에 당연하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어떤 이들은 기업의 단합도 이윤 추구의 일종이기 때문에 자유시장에서는 당연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보수에서 말하는 경제적 자유라는 것이 기업의 경제적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경제적 이윤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이다. 그런 관점으로 이번 파업을 바라보면 노조가 자신들의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 파업을 하는 것이 보수적 가치에서 무슨 문제가 되는 것이 의문이 생긴다. 물론 정치적 행위와 경제적 행위의 차이점이 있다. 하지만, 선거의 특정정당을 지지하고 투표를 하는 것은 결국에 각자의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는 행위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파업이라는 정치적 행위도 자신들의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기 위한 당연한 행위인 것이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자신들의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행동은 자유시장에 보장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논리이고 철 밥통이든 유리밥통이든 자신들이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에 대해서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두 번째 그들의 모순이 같은 단어에 숨어 있는데, 딴나라당 모의원은 mbc의 평균 연봉이 1억원(정확한 자료가 어디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라는 것을 강조며 철 밥통이라고 말한다. 철 밥통이라는 이면에는 높은 연봉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배어 묻어나며 선동하는 말이다. 일부 대기업 노조가 파업을 할 때면 귀족노조니 하면서 높은 연봉에 반감을 철저하게 드러낸다. 그런데 그들이 추구하는 이념은 보수가 아니던가? 노동자라고 모두 같은 임금을 받아야 된다는 것은 아주 좌파적 생각이 아닌가? 시장주의를 채택한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노동자라고 많은 연봉을 받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음에도 그들은 노동자들의 높은 연봉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공격한다. 그들은 GM을 말아먹은 회장의 연봉이 4천만 달러라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기업 임원의 연봉은 얼마나 되든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경제적 가치에 대한 평가는 전혀 하지 않고, 지위만으로 값어치를 평가하는 것이다. 임금이라는 것이 개인이 생산한 부가가치의 대가로 받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노동자의 생산성이 임금을 평가할 때 중요하듯 ceo나 임원의 연봉도 그들이 만들어내는 경제적 가치를 평가해야 한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교수는 ceo의 고액연봉과 경영성과에는 상관관계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ceo의 고액연봉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한다. 하지만, 소위 보수주의자라는 사람들은 그것에 대한 명확한 평가를 가지고 연봉을 논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들의 노동자와 경영자에 대한 이런 이중적인 시선은 경제적 동물인 인간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보수의 관점에서 최고의 가치임에도 그들은 노동자를 인간으로 보지 않고 노예나 하인으로 보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노동자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행위를 하는 것을 철저하게 저주한다. 파업이라는 것이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파업에 대한 철저한 반감 그리고 노동자에 대한 철저한 반감으로 무장해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념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흔히 파업을 하려면 "북한에 가라"라고 극단적인 말도 하는데, 그들의 말에 모순이 있는 것이, 그들이 이상향으로 추구하는 파업이 없는 지구상에 유일한 나라는 북한 밖에 없다. 북한에 가야 될 사람은 그들이 아닐까? 결국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보수적 가치가 아니라 일부 대기업과 정치권의 이해 관계만을 대변하는 꼭두각시 짓만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개인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철저하게 봉사하고 있는 것이다. "괴물의 탄생"이라는 책에서 우석훈 박사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 못하고 5%의 괴물만을 위해서 투표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꼬집고 있다. 나의 아버지는 파업이 있을 때 마다 뉴스를 보시며 말씀하신다. "경제가 어떤데 파업이야"라고, 내 기억으로는 이 소리를 20년 넘게 들어온 것 같다. 세월이 흘러도 이 레파토리는 변함이 없다. 단지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딴나라당 정권에서는 노동자 탓이나 해외 경제 상황 같은 것을 탓하시고,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는 정권을 탓한다. IMF 만들어낸 정권보다 이를 극복한 정권은 언제나 쓰레기 정권일 뿐이다. 경제의 "경"자도 모르는 아니 보수의 "보"자도 모르는 보수주의자랄까? 나의 아버지와 같은 사람들 특히 이들은 지역감정까지 더하고 있다. 그들의 말이나 행태를 보면 정치적 이념에 매몰되어 자신이 말하는 것의 모순을 조차도 모르는 대한민국의 아둔한 보수주의자들이다.


2008년 12월 29일 월요일

언론 노조의 파업을 지지하며....

 

 이번 언론노조가 파업을 하는 이유와 정당성에 대해서는 나보다 더 잘 쓴 글들이 넘쳐나기에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악법도 법이다."라는 쓰레기 같은 말에 대한 것이다. 이 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크라테스가 했다는 말로 교과서에 버젓이 실렸던 말이다. 최근에야 이 말이 소크라테스가 한 적이 없다는 것이 대중들에게 알려졌고, 교과서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내 나이 또래 이상의 분들은 학교에서 이 말에 대해서 철저하게 교육을 받아왔던 세대들이라 그런지, 여전히 이 말을 맹신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독재정권이 자신들이 불법으로 잡은 권력에 국민들을 복종시키기 위해서 만들었고, 교과서에 포함에 국민들을 세뇌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졌던 이 말이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일까? 소크라테스의 대화 중 "크리톤"편을 보면 이 말의 유래를 조금이나마 유추할 수 있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와 크리톤이 감옥에서 벌인 대화다. 사형을 언도받고 감옥에 있는 소크라테스를 접견한 크리톤이 탈옥을 권유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거절하고 독배를 마시고 죽음을 택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내용 그대로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 속에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은 전혀 없다. 단지 그들의 대화를 잘못 유추했을 때 이런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 조금의 개연성만 있을 뿐이다.

 

 소크라테스는 결코 아테네의 법이 악법이라고 말한 적도 없다. 오히려 자신이 아테네의 법안에서 받았던 혜택과 보호를 강조하면서 아테네 법을 다른 나라의 법보다 최고로 치부하고 있다. 자신은 자신의 의지로 다른 나라의 법 체계안으로 옮겨갈 수 있음에도 옮겨가지 않고 70년이란 세월을 아테네 법 아래 있었던 이유는 아테네 법을 신뢰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신뢰는 법을 준수하겠다는 약속이었고, 자신은 탈옥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법과의 약속을 깰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 들인다. "자신은 피해자로 떠나는 것이지 악행을 한 사람으로 떠나는 것이 아니다. 법률이 아니라 인간의 희생자로서…."라는 말을 남기면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법의 희생자가 아니라 인간의 법 남용에 의한 희생자라는 것이 그 말의 요지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악법이라는 말 조차 언급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자신이 속해 있는 법을 최고의 법으로 생각했고, 그 법과의 약속 즉 신의를 강조했을 뿐이다. 결국 다르게 생각한다면 악법은 결코 법이 될 수 없다. 법과의 약속은 신의는 법의 정의가 바로 섰을 때 개인이 지켜야 할 덕목이고 약속일 뿐인 것이다. 이번 방송과 미디어 악법은 우리가 지켜야 할 법이 아니라 타도해야 할 법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악법과 싸우는 언론 노조의 파업을 지지한다. 그리고 그들이 승리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