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13일 토요일

한국식 자본주의......

 

 한국사람들이 열렬히 사랑하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금융위기 앞에서 휘청거린다. 정부의 규제와 관섭을 최소화하고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모든 것을 맡기는, 영국의 대처와 미국의 레이건이 씨앗을 뿌렸던 신자유주의가 인간의 탐욕 앞에서 무릎을 꿇고만 것이다. 실물경제와 금융경제가 상호작용을 이루면서 같이 발전해야 하는 시장경제시스템이 불균형을 이루면서, 금융경제가 실물경제를 압도하는 상황이 도래하는데 실물경제의 뒷받침이 없었기 때문에 금융으로 인한 경제성장은 그만큼의 거품이 쌓인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자동차 회사인 GM, 포드가 위기에 봉착한 이유도 실물경제부분, 즉 자신들의 주업인 제조업에 기업핵심 역량을 집중하지 않고, 이익률이 더 높은 자동차금융분야에 치중해서 발생한 것이다. 다른 나라의 차량에 비해서 성능이 떨어지면서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게 되고, 거기에 얼마 전의 고유가 상황까지 겹치면서 연비가 좋지 않았던 미국의 자동차 산업은 더욱 더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게 된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원래 값싼 석유를 이용한 다 에너지 소비국이었다는 점에서, 미국적 시장환경에서는 연비에 대한 고려가 필요 없었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자동차 뿐만 아니라 많은 제조업체들이 미국 본토를 떠나서 세계 각지로 옮겨감에 따라서 그 만큼의 일자리와 산업의 공백이 발생한다. 금융산업과 서비스업이 이를 대체하게 된다. 제조업기반자체가 완전히 붕괴하는 지경에 이르면서 미국은 경상수지에 심각한 불균형이 발생한다. 여기에 심각한 양극화 현상이 더해지게 된다. 금융업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자본을 가진 사람들과 높은 지적 능력을 갖춘 소수의 사람에 운영되는 것이기 때문에, 제조업이 나가면서 발생한 일자리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뿐만 아니라 자본이라는 것이 순식간에 국경을 넘어서 이동하기 때문에 정부의 통제권이 약화되게 된다. 자본은 한나라의 권력을 넘어서 움직일 정도로 막대한 힘을 갖추게 되었다.

 

 이를 이용해서 조지 소로스는 영국의 파운드화를 공격해서 많은 이익을 챙겼을 뿐만 아니라, 98년에 발생한 아시아의 외환위기도 이런 자본들의 공격 때문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 대표되는 이런 자본이 결코 유익 하지만은 않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면서 이런 국제적 자본을 통제하기 위한 논의가 일어났지만, 자본에 종속되어 버린 국가 권력들로 인해서 공허한 메아리만 된다. 실물경제는 쫓아오지 못하는데 금융경제는 많은 부를 축적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신자본주의로 인해 골디락스가 도래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거품이 붕괴되기 전 잠깐의 환희였고, 위험의 징조였다. 결국에 금융으로 발생한 거풍은 순식간에 붕괴되기 시작했다. 거품으로 흥청망청 하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여파는 특정 국가를 넘어서 전세계로 전파되기 시작한 것이다. 기존의 경제학 이론으로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에 몰렸다. 이를 두고 시장의 실패, 즉 보이지 않는 손의 실패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시장에 대한 적절한 정부의 규제와 통제는 필요한 것이라고 사람들은 인식하고, 미국식 자본주의의 종언을 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여전히 미국식 자본주의를 여전히 사모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은 여전히 정부의 간섭과 규제를 없애달라고 외치고 있으며, 지금의 정권도 그들의 외침에 관대함를 넘어서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듯하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한국식 자본주의의 방향이 미국식 자본주의와 별차이가 없어 보인다. 시장의 자유, 즉 보이지 않은 손에 시장을 맡기는 것까지는. 하지만, 한국의 자본주의자들의 맹점이 있다. 시장에서 실패에 대한 자기 책임을 철저하게 회피하려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 건설업계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들은 정부의 지원책에만 목매고 있고 자구노력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잘못한 수요예측과 고분양가로 인해서 미분양 사태가 속출함에도 많은 기업들은 분양가 인하 노력은 거의 하지 않는다. 정부만 해바라기처럼 바라볼 뿐이다.

 

 미국의 경우 시장의 질서를 위반하는자에 대해서 어떤 대가를 치루는지를 볼 필요가 있다. 분식회계로 문제를 일으켰던 미국 기업 순위 10위권의 엔론은 파산시켜버렸을 뿐만 아니라 최고경영자는 24년형에 처해졌다. 같은 식으로 분식회계를 했던 대우와 김우중의 경우를 비교해봐라. 대우라는 재벌은 해체되었을 뿐이고, 김우중은 해외에 도피해서 살다가 나중에 들어와서 재판을 받았지만 받지 않았던가? 수천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던 현대자동차의 정몽구 또한 어떤가? 대기업 총수가 징역형에 처해지면 그 기업이 어려워진다고 호들갑 떠는 기업집단들이나, 그런 논리에 매몰된 국민들과 재판소는 고작 집행유예를 형을 선고하기 마련이고, 기업을 너무나 사랑하신 역대 대통령들은 국가경제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사면을 남발하신다.

 

 그 뿐인가 매년 심심치 않게 터져 나오는 기업의 담합사건을 보라. 기업의 담합으로 국민들의 피와 땀을 쪽쪽 빨아가는 집단들에게 내려지는 죄값이란 담합으로 인한 부당이득에 몇 분의 일도 안 되는 새발의 피 만큼의 과징금만 부과할 뿐이다. 미국에서 메모리 반도체 담합을 했던 삼성의 경우 3억달러의 과징금에 임원까지 구속되어 징역형을 살았다. 즉 미국이라는 나라의 자본주의는 시장을 교란시키는 사람이나 기업에게는 냉혹한 죄값을 묻는다. 하지만 한국의 자본주의는 돈이면 죄가 약해질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사면 또는 무죄가 되는 곳이다.

 

 미국 자본주의와 비교해서 한국의 자본주의를 본다면 철저하게 2~3%의 최상층 집단의 이익실현에 맞춰져 있다. 행정, 입법, 그리고 사법까지 철저하게 그들의 손에서 움직이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인다. 거기에 언론까지 더해져서 국민들을 그들의 논리로 세뇌시켜 버린다. 어떤 기업이 망하면 한국이 망한다고 협박을 하면, 순진한 국민들은 그대로 믿어버린다. 결국에 한국의 자본주의는 보이지 않는 손, 수요와 공급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공급자의 힘으로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인 것이다. 지금까지는 이 자본주의의 힘이 행정,입법,사법과 끈끈한 유대관계가 형성되었다면 나중에는 이 모든 것을 자본 아래 종식시키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수요와 공급으로 움직이는 시장이 공급자 위주의 착취의 장이 될 것이다.


2008년 12월 10일 수요일

부활하는 군가산점을 보고.......


 

 군가산점에 대한 법안이 소속 상임위를 통과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다시 우리사회에 군가산점에 대한 논쟁이 발생했다. 근대 다녀온 많은 남성들은 군가산점의 부활을 찬성하고, 여성계가 반발하면서 또 다시 남녀의 성 대립 문제로 비하되고 있다. 헌법에 명시된 국방의 의무에 대한 뿌리 깊은 논쟁에서부터 시작해서 출산문제에 이르기까지 가산점문제를 벗어나 포괄적인 남녀 대립구도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끝없는 논쟁의 반복이랄까? 잘못된 역사의식과 인권의식을 가진 집단들이 무뇌한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다시 돌아왔으니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다시 이 글에서 군가산점에 대한 반대의 의견을 개진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단지 군가산점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인식에 대해서 논하고 싶다.

 

 그들 대부분, 즉 군가산점을 찬성하는 남성들의 대부분은 군가산점이라는 것이 아무런 효용도 없는 허울뿐인 제도라고 생각하고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차별이라는 인식에서는 확연한 차이가 발생하는데, 남성들만 군복무를 한다는 것 또한 차별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이런 인식은 여성들에 대한 적대적 인식을 재생산하면서 이성적 사고를 완전히 방해 버렸다. 군가산점이 없어도 되는 제도임을 인식하면서도 가산점에 반대하는 여성단체나 여성들이 꼴보기 싫어서 군가산점 제도에 찬성하는 것이다. 결국 그들이 반대하는 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단체가 이미 제시한 다른 대안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을 뿐만 아니라, 완전히 무시해버린다. 그러면서 여성단체는 대안은 안 내놓고 뭐하냐고 다그친다. 그런 논쟁가운데서 여성단체가 내놓았던 대안에 대해서 누군가가 설명하면 또 다른 꼬투리를 잡아서 반대의 의견을 제시한다. 기본적인 적대의식을 바탕으로 상대의 의견에 대해서 전혀 마음을 열지 않은 상태가 됨으로써 이 문제는 점점 더 남녀의 성대결로 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 문제의 가장 큰 본질은 남성우월주의 사회가 붕괴하고 점점 평등사회로 가면서, 많은 남성들이 자신들의 권리마저도 빼앗긴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발생한다. 자기가 가진 것 10에서 하나가 누군가에게 빼앗겼다는 인식은 하나를 얻었다는 인식보다 더 커다란 반감과 상실감을 만들어내는데 그 상실감이 지금은 분노로 표출되는 단계가 아닐까? 문제는 이런 분노가 사회현상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완전히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야 남성을 능가하는 알파 걸들이 등장하면서 남성들이 위축되는 상황이 발생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알파 걸들의 숫자는 적은 편이다. 실제 많은 여성들은 여전히 남녀차별적인 세상에서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과 제도가 만들어져 있어도 시행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분노를 가진 이들은 그것만으로도 자신들의 이득이 많이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분노한 이들의 생각은 법과 제도의 완성과 이행의 문제를 완전히 따로 때서 생각하고 있다. 법과 제도가 있다는 것으로 여성들이 더 많은 것을 획득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현실의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다.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허울 뿐인 법과 제도만 인식하면서 현실과 다른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들이 많은 남성들 사이에 공유되면서 집단이 형성되고 그 집단은 그런 인식을 계속 공유함으로써 외부의 다른 논리나 인식에 대해서는 철의 장막을 쳐버렸다. 결국에 자신들의 내부논리와 인식에 안주하기 시작하면서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보다는 자신들의 논리와 인식에 치중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예를 들어 공무원이라는 집단과 국민들의 인식이 많이 다른 것은 공무원들의 내부논리에 함몰되면서 나타나는 것이다. 의회 속의 정치가 국민들과 완전히 동떨어져서 자신들만의 닭싸움이 되는 것 또한 이런 내부논리와 인식에 함몰되면서 나오는 것이다. 결국에 이 문제는 군가산점에 찬성하는 이들이 집단적인 내부논리와 인식에 함몰되면서 이성을 상실한 광기의 상태에 가까워진 것으로 보인다. " 사람은 혼자 있을 때 분별력 있고 이성적이다. 그러나 군중 속에 있으면 멍청이가 된다."라는 실러의 말처럼, 군가산점을 찬성하는 사람들에게 집단을 떠나서 자신을 성찰해보기를 기대한다. 이성이 아니라 분노로 이 문제를 찬성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를 말이다.

 

 ps> 내부논리와 인식은 여성계는 없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군가산점의 문제는 여성계뿐만 아니라 장애인 진영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 폭넓은 인식을 형성하고 있다. 군가산점을 찬성하는 남성들보다야 폭넓은 의견과 인식이 공유되고 있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심리학적 차이를 기본적으로 생각해본다면. 남성은 결과와 위계질서를 선호하는 경향이 많아서 집단의식이 강한 반면, 여성은 평등적인 관계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의견이나 주장에 공감하는 능력이 남성보다는 뛰어나다. 이렇게 본다면 누가 더 내부논리와 인식에 함몰될 가능성이 높을까?

2008년 12월 9일 화요일

전교조 마녀사냥


 

 얼마 전, 시사 인에서 표지기사로 다뤘던 제목이 "전교조 마녀사냥"이었다. 이 단체의 출발부터가 순탄치 않았을 정도로 권력자나 보수단체의 공격 중심에 언제나 상위권을 차지하는 단체다. 누가 정권을 잡던 전교조는 권력의 탄압에서 벗어나지 못했었지만, 2mb과 그 무리배가 정권을 잡음으로써 그들에 대한 탄압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다. 시사 인이 "전교조 마녀사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심층취재를 할 정도로 지금 전교조는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 메이저 언론인 조중동을 비롯한 소위 보수단체들이 가세함으로써, 정권, 언론, 보수단체의 공공의 적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출범부터 있어왔던 탄압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사면초가의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다. 나도 무조건 전교조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2mb정권과 그 무리배, 조중동, 보수단체들 보다야 도덕적으로 순결하고 더 정직한 집단이 전교조라고 생각한다. 돈 밖에 모르는 잡것들 보다야, 그래도 진정으로 아이들과 교육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존경 받고 인정받아야 할 세상임에도 돈에 투표하는 쓰레기 근성의 국민들이 그들의 진정성을 알수 있겠는가?

 

 혹자는 이런 말을 한다. 한국에서 학부모가 된다는 것은 교육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이라고. 그래서 대한국민 모두는 교육에 관심이 많아서 다들 전문가 수준이라고. 그럴까? 웃기는 것은 그 학부모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한국의 교육을 생각하기 보다는 자신의 자식들의 교육을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내 자식을 좋은 학교에 보낼까라는 고민으로 시작한 그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은 점수 획득법을 추구하고 어떻하면 줄을 잘 서서 학벌사회의 상위층에 진입하냐는 것이다. 좋은 사교육을 찾아가고, 좋은 특목고를 찾아가고, 지금은 국제중을 찾아서 좀비들 처럼 방황한다. 이것이 교육이라고 보는 졸열한 시각을 가지고 부모들과 국민들이 교육의 전문가라고 일반화 해버린다.

 

 교육에 교자도 모르고 단지 점수를 잘 받는 법이나, 학교 서열이 높은 곳만 줄줄이 꿰고 있을 뿐인 자들에게는. 그래서 그들에게 경쟁이라는 것을 꼭 필요한 것이다. 경쟁에서 우위에 서야 자신의 아이들이 우리사회의 2~3%의 괴물(우석훈 저 "괴물의 탄생"참조하시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경쟁이라는 것 또한 재미있는 것이, 사람이 가지는 다양성을 가지고 다양한 분야에서의 경쟁이 아니라 단 학벌과 점수 경쟁만을 강요한다. 그 경쟁에서 실패한 사람은 낙오자라는 낙인을 쉽게 찍어버린다. 반면에 그들은 그런 경쟁에서 상위에 차지한 아이들이 글로벌시대에 맞는 인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김승기 박사의 논문에 따르면 미국 명문대에 입학한 한국학생의 44%가 중도 하차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김 박사는 한인 학생의 중퇴율이 높은 것은 지나친 학업 위주의 교육방식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리더십은 논리와 합리성이 적절히 결합해야 하는데 한인 학생들은 논리에 치중돼 있다”며 “한인 학생들은 사회 적응력이 떨어지고 도전과 실패를 모르기 때문에 합리성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점수 잘 따는 법이나 좋은 학교 가는 법만을 추구하는 이들 중에 미국적 교육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라고 폄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들이 학벌과 점수로 줄 세우는 것이 글로벌 인재를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던 점에서 본다면 모순적인 모습을 보인다. 미국은 대학경쟁력에서 세계최고일 뿐만 아니라 각국의 글로벌 인재들의 집합소다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만들어내면서 글로벌 인재를 만들어야 하고, 점수 경쟁이 우선이라고 말하는 이들의 행태는 모순적이다. 그런 모순적인 모습은 결국에 그들은 교육의 전문가가 아니라 학벌과 점수의 숭배자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점수 잘 따는 법, 학벌 있는 학교에 들어가는 법을 아는 것이 교육의 전문가로 치부해버린다. 그로 인해 일어나는 것이 교육에 대한 철학의 강력한 충돌이 발생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아이들을 생각하는 전교조 교사들이 말하는 교육과 점수와 학벌의 노예들이 말하는 교육이란 평행선을 달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학생의 인권, 존엄성과 학벌, 점수의 대립에서 승리하는 것은 학벌과 점수의 추종자들이었다. 2~3%를 차지하는 괴물들의 논리와 기득권들이 조중동이라는 매개체에 의해 무지한 국민들에게 그대로 세뇌 시켜왔다. 결국에 경제적 동물이라는 인간이 자신들의 이익과 반대되는 투표를 행해지는 결과가 바로 그 세뇌의 효과가 얼마나 잘 먹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돈과 물질의 논리가 통하는 세상에서 당연히 인권과 존엄성이라는 가치는 대단한 이상향일 뿐으로 치부되고, 학부모들에게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벌고 출세할 수 있느냐가 교육의 목적이 되어 버린 것이다. 교육이란 결국에 돈과 출세를 위한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래서 학벌과 점수의 노예들이 교육의 전문가로 치부되어 버리는 이유는 그것이 돈과 출세를 위한 교육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결국에 이런 가치의 충돌로 인해서 교육의 전문가에 대한 평가가 바뀌게 되었고, 전교조는 교육의 전문가가 아니라 교육 파탄자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된 것이다. 돈과 물질 밖에 모르고 교육을 경쟁과 점수로만 아는 집단이 득세를 하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교육은 점점 더 황폐화 되고 있는 상황의 책임은 교육현장의 종사자에게 몰아붙이고, 교육정책의 집행자요 간섭자인 학벌과 점수의 노예는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해 버림으로써 악순환의 고리와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마치 전교조만 사라지면 교육이 살아 날 것이라는 환상이 이런 상황을 더 부추긴다. 그럼으로써 마지막 교육의 지킴이로 남아 있는 전교조는 점점 와해 될 것이고, 교육의 붕괴는 지금보다 더 겉잡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진 전교조에 대한 공격이 친북이라는 딱지가 붙은 것이다. 2007년인가 전교조의 통일교육자료를 두고 몇 명의 교사가 기소되어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언론에서 검찰의 기소 사실이 크게 보도 됨으로써 무죄추정의 원칙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부족한 개한민국의 국민들에게 전교조=빨갱이라는 인식이 쉽게 주입되는 결과가 발생한 것이다. 만약 유죄가 된다면 커다란 기사로 이 사실을 알릴 것이고, 아니면 재판에서 무죄라는 판결을 받아도 조중동이라는 쓰레기 집단은 거의 보도를 하지 않거나 작은 기사 몇 줄로 처리해버릴 것이고, 이로 인해 이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전교조=빨갱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국가보안법 상의 찬양 고무죄라는 웃기지도 않는 죄명부터가 쓰레기 매국노 집단들의 이념논쟁의 도구이자 무기인 상태에서 전교조의 통일교육에 대한 철학자체가 이해 받을 수 없는 최악의 죄악인 것이다. 개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후진적인지를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세상에 어떤 나라가 개인의 생각과 선호 그리고 사상의 검증을 하고 처벌한단 말인가? 독일의 나치추종자들이 히틀러를 찬양하고 좋아한다고 해서 처벌 받았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는지? Kkk단이라고 불리는 백인우월주의자들이 그런 생각을 한다고 처벌 받았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는가? 그런 사람들이 행한 폭력적 행위와 범죄에 대한 처벌을 했을지언정 그렇게 생각한다고 처벌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적이 없다. 그런데 유독 개한민국에서는 공산주의에 대한 선호나 개인의 생각을 빨갱이라는 색깔을 씌워서 처벌하려 한다. 이런 쓰레기 같은 인식이 공평하게 적용된다면 그나마 욕을 덜 먹을 텐데, 일본에 대한 찬양을 끝임 없이하는 친일파와 매국노 집단인 뉴또라이들은 왜 가만히 두는 것일까? 북한이라는 주적과 일본은 다르다라고 말하는 쓰레기가 있겠지만, 국가보안법이라는 것은 국가의 안보와 보안을 지키는 것이라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면 한국을 침략했던 일본에 나라에도 똑같이 적용시켜야 될 것이 아닌가? 한국전쟁만 아픈 기억이고 일제침략기는 즐거운 기억인가? 뉴또라이들과 친일 매국노들에게는 즐거운 기억이겠지만…...

 

 그런데 이것을 선동하는 것이 조중동이라는 쓰레기들이다. 얼마 전에 공군사관학교 한 생도가 장교부적합을 이유로 퇴교조치를 당했는데 조중동 쓰레기 신문은 그 생도 홈페이지의 "자본론"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는 것들을 내세워 이념적으로 편향되어 있어서 퇴교조치를 당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그 생도는 빨갱이라서 퇴교조치를 당한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공사 관계자들의 말에 의하면 "자본론"에 대한 것이 교육과정에 있으며, 그 생도의 이념적 성향의 문제로 퇴교조치 당한 것이 아니라 장교로써 갖추어야 할 자질이 부족해서 퇴교조치 당한 것이라고 한다. 결국에 공사 관계자의 증언에 대한 언론보도는 일부 소수의 언론에서 작게 보도됨으로써 이 문제의 본질은 완전히 숨겨버리고 보수 단체들이 전교조와 같은 진보 단체들을 위한 공격거리가 된 것이다.

 

 결국에 전교조는 출범부터 있어왔던 정권으로의 공격에 더해서, 2mb와 그 무리배와 철학을 같이하는 점수와 학벌의 노예들, 그리고 쓰레기 보수집단의 이념공격에 완전히 포위당하면서 심각한 마녀사냥의 상태에 놓여있다. 정권의 관변단체들은 전교조가 많은 학교의 서울대 진학율이 낮다는 허위사실을 마구 유포하고(시사인의 조사에 의하면 학군이 서울대 진학율을 좌우할 뿐 전교주의 숫자와는 무관하다고 한다. 그 밖에도 조중동의 전교조에 대한 기사를 사실확인을 통해서 무엇이 질실이고 거짓인지도 보여준다.), 전교조의 명단이 마구 유포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조중동의 집요한 전교조 공격기사는 꾸준히 양상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로 인해 생산된 전교조에 대한 국민들의 증오가 결국에는 서울시 교육감선거에서 전교조와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전교조의 지원을 받는 후보자로 낙인 찍힌 한 후보는 반 전교조표가 집결하면서 결국에 낙방하고 말았다. 거기에 보수교사노조가 2개 더 생겨서,교총과 함께 반 전교조전선을 형성한다고 하니 전교조의 앞길은 아주 험난해 보인다. 여기에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 밖에 없어서, 미안하기만 하다. 힘내라 전교조!